미국에서 집은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수정헌법 4조의 가장 핵심적인 영역에 놓여있습니다. 다시 말해, 개인은 자신의 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사생활 보호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미국법은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공권력이 개인의 주거지까지 확장되어야 할 경우 영장청구를 우선 요구하고 있습니다. 만약 경찰관이 영장없이 집을 수색하기 원한다면, 거주자의 동의를 꼭 받아야만 합니다. 또한, 같은 집에 살고 있는 한 거주자가 수색 요청에 동의했다 하더라도, 다른 거주자가 그 동의에 반대하고 나선다면, 반대자의 의견이 동의자에 우선한다는 판결이 항상 내려져 왔습니다. 그만큼 사생활 보호는 가장 높은 수준으로 보호되는 헌법상의 기본 권리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만약 경찰이 가택수색을 반대하는 용의자를 다른 적법한 절차를 통해 체포하고, 용의자의 동의없이 나머지 거주자의 동의만으로 가택 수색을 진행했다면 이것은 사생활 침해에 해당되는 행위일까요 아니면 적절한 공권력의 행사라고 볼 수 있을까요?
2009년 로스앤젤레스의 경찰은 범죄 조직과 연관되는 폭행 및 강도 사건을 조사 중에 용의 선상에 오른 한 인물이 인근 아파트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는 목격자의 진술을 확보했습니다. 그 진술에 따라, 경찰은 그 집을 방문하여 현관에 노크를 했고, 한 여성이 현관으로 나와 그들을 응대했죠. 그녀의 얼굴에는 생긴지 얼마 안되보이는 상처가 있었고, 그녀의 손과 셔츠에는 아직 마르지도 않은 피가 묻어있었습니다. 그리고 경찰은 그녀의 뒷편으로 용의자가 집 안에 있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체포영장이 없었던 경찰은 용의자에게 집 바깥으로 나와달라고 요청했고, 영장없이 주택에 무단 침입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는 용의자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그들이 목격한 여성의 상처와 혈흔, 그리고 그 여성과 용의자가 동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토대로 가정폭력혐의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 받았고, 이를 토대로 용의자 월터 페르난데즈(Walter Fernandez)를 체포하기에 이르릅니다. 한 시간 뒤, 경찰은 다시 페르난데즈의 집으로 찾아가 페르난데즈의 여자친구에게 가택수색을 요청했고, 그녀는 이를 승락했습니다. 경찰은 뒤이은 수색과정에서 강도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총과 총알, 그리고 칼을 발견했습니다.
이 증거들은 페르난데즈의 폭행 및 강도 혐의를 증명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로 사용되었고, 그는 14년행을 구형받았습니다. 하지만 페르난데즈는 불법적인 수색과정을 통해 입수된 증거는 독과수 원칙에 따라 법정 증거로 채택 될 수 없다는 이유로 항소를 제기했고, 항소심에서 캘리포니아 법정은 경찰의 수색과정에 어떠한 불법적인 행동도 없었다고 판단을 내리며 이를 기각했습니다. 페르난데즈가 체포되고 난 이후의 유일한 거주자는 그의 여자친구 뿐이며, 따라서 여자친구의 동의를 통해 진행된 수색과정은 적법하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법원의 해석은 사생활을 보호 받을 수 있는 국민의 기본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입니다. 경찰은 필요하다면, 그리고 상당한 증거가 존재한다면, 언제든지 수색영장을 발부 받을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증거인멸의 가능성이 높거나 아주 급박한 상황이라고 판단되는 예외적 상황에서는 영장없는 가택 수색도 허용되어 있지요. 따라서 이번 판결은, 공공의 안전을 위해 경찰이 적법적으로 사용가능한 충분한 수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택 수색을 동의할 수도 반대할 수도 없는 용의자의 구금 상황을 악용하여 진행한 수색 역시 적법한 수사노력의 일환이라 부가적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사생활 보호를 위해 제한된 상황 속에서만 허용되어야 할 경찰의 공권력 행사가 오남용 될 수 있는 선례를 남길 것입니다. 따라서, 범죄 여부와는 상관없이, 국민의 일원으로서 페르난데즈의 사생활은 보호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모두의 사생활을 공권력 남용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입니다. (N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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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 수준에서 사생활보호가 논의 된다는것은 굉장한것 같네요 이미 체포 되어있는 사람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지..
"체포된 원인이 폭력 및 강도 혐의와는 상관없는 가정폭력이었고, 이 체포를 통해 폭력 및 강도 혐의를 밝혀내기 위한 수색을 반대하지 못한 상황이 되었으니, 수색을 반대할 수 있는 권리를 자발적으로 포기한 것이 아니다. 고로, 그 권리는 철저하게 보호되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논리적 사고가 흘러가는 거지요. 이처럼 팩트를 분절해서 생각하고, 그에 맞는 개별적인 리즈닝을 펼치는 것이, 상황적/정황적 판단을 주로 내리는 대한민국 정서와는 아직 거리감이 있는게 사실입니다. 얼핏 보면, 체포 됬는데 뭘 동의까지... 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거든요. NYT editor board가 대법원 판사와 같은 수준의 리즈닝을 펼치고 있는 것이 저한테는 너무 놀라운 사실로 다가오더라구요. 곧 있으면 이 사건의 결과가 캘리포니아 대법원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대법원 판사가 판결을 뒤집을지, 아니면 항소심의 결과를 재확인하게 될지, 기회가 되면 또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