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 소개하는 글은 10월 1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올해 미국 대선 레이스에서 두 정당의 후보 도널드 트럼프와 카멀라 해리스를 제외하고 가장 눈에 띄는 인물, 가장 많은 언론의 조명을 받는 인물은 단연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입니다.
머스크는 공식적으로는 트럼프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지난 7월 13일 총격 사건 직후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고, 이후 트럼프의 대통령 선거는 물론이고 상원과 하원 선거에 나선 여러 공화당 후보에게도 많은 돈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머스크가 정확히 얼마를 후원했는지는 미국 선거위원회 홈페이지에 아직 정확한 액수가 업데이트되지 않아서 알 수 없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머스크는 이미 올해 초부터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하기로 마음먹은 것으로 보이고, 트럼프가 총에 맞기 전인 5월에 트럼프와 공화당 후보를 지원하는 슈퍼팩, 아메리카 팩(America PAC)의 설립을 주도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7월에 머스크가 아메리카 팩에 매달 4,500만 달러를 기부하기로 약정했다고 보도했지만, 머스크는 보도 내용을 사실이 아니라며 부인했고, 아직 머스크가 어디에 얼마나 돈을 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머스크가 트럼프와 공화당 후보에게 상당한 돈을 내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사업가 출신답게 ‘거래를 확실하게 하는’ 트럼프가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머스크를 정부 부처, 기관을 감독하는 특별위원회의 수장으로 임명하겠다고 한 것까지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트럼프가 당선되면 머스크는 논공행상의 첫 번째 수상자 중에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머스크는 무엇을 바라고 많은 돈을 쾌척한 걸까요? 미국 정부 부처와 산하 기관들은 테슬라와 스페이스 X 등 머스크의 회사들에 매력적인 조달 계약을 수주할 수 있는 잠재적인 거래처일 겁니다. 그렇긴 해도 4년 전엔 (적극적이지는 않았지만) 조 바이든을 지지했던 머스크가 짧은 시간에 열성적인 트럼프 지지자가 된 이유를 경영상의 이득이나 사업상 편의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머스크는 테슬라 주가의 등락에 따라서 세계 최대 부자 순위 1, 2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정도의 부자입니다. 머스크에게는 역대 최대 규모의 선거 후원금이라도 ‘얼마 안 되는 푼돈’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돈이 이유 가운데 없진 않겠지만, 돈이 전부는 아닐 겁니다. 그렇다면, 머스크는 정말 무엇을 바라는 걸까요?
페이스북의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인 크리스 휴즈가 뉴욕타임스 칼럼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았습니다. 물론 머스크나 마크 안드리센, 벤 호로비츠 같은 부자들이 직접 이유를 밝힌 적은 없으므로 어디까지나 휴즈의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부자들의 사고 체계를 이해하는 데는 휴즈처럼 부자가 직접 해주는 설명이 정확할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문 번역: 일론 머스크 같은 사람들이 트럼프를 사랑하는 진짜 이유
부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정부의) 규제
부자들이 트럼프 캠페인에 선거 자금을 쾌척하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우선 부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과 가장 싫어하는 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벤자민 페이지, 래리 바텔, 제이슨 시라이트 교수가 쓴 논문을 보면, 부자 중에도 돈이 많아질수록 다들 더 싫어하는 게 있는데, 그게 바로 정부의 규제입니다.
부자들은 정부 규제를 왜 싫어할까요? 돈을 더 벌 수 있는 기회를 정부가 방해하거나 빼앗아 간다고 생각해서 그럴 수 있습니다. 기업이 자유롭게 활동하게 내버려두면 세상은 알아서 잘 굴러가고 똑똑한 사람들이 더 크게 성공할 수 있을 텐데, 똑똑하지 않은 정부가 그걸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산이 늘어날수록 규제 완화를 좋아하는(=규제를 싫어하는) 성향이 커진다.
언론인 카라 스위셔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갑니다. 머스크처럼 출중한 능력에 피나는 노력을 더해 자수성가로 큰 성공을 거둔 사람도 주변에 온통 ‘예스맨’으로 둘러싸여 지내다 보면, 자신이 마치 세상의 진리를 꿰뚫어 보는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집니다. 어느덧 머스크는 자신을 향한 정당한 비판마저 ‘내가 거둔 성공을 시기하는 이들의 몰지각한 음해’ 정도로 치부해 버립니다. 이제 머스크 정도 되면 규제가 싫은 부자의 자연스러운 성향을 넘어 (실력도 없으면서) 자신을 비판하는 이들의 콧대를 꺾어버리는 게 일종의 사명이 됩니다.
머스크가 아메리카 팩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자세히 분석한 기사를 보면, 머스크는 자신의 신념에 민주당보다 트럼프의 공화당이 더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머스크는 자신의 신념을 실력주의(meritocracy)와 표현의 자유(free speech) 두 가지로 압축해 설명합니다. 그런데 실력주의에 관해 착각에 빠진 머스크가 정당한 비판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언급하는 ‘머스크식 표현의 자유’는 많이 양보해도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머스크는 진보 진영과 소위 문화전쟁 이슈를 두고도 날선 공방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머스크의 딸인 비비안 제나 윌슨 씨가 트랜스젠더 시술을 받아 성을 바꿨고,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일론 머스크가 딸과 연을 끊었는데, 이후 딸이 인터뷰를 통해 아빠인 머스크를 가차 없이 비판하면서 둘 사이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남보다도 훨씬 못한 사이가 됐습니다.
부자들과 트럼프가 특히 더 죽이 잘 맞는 이유
공화당보다 규제를 더 많이, 촘촘히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민주당이 머스크는 점점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도 노조 설립, 코로나19 방역 수칙, 트위터 인수 과정에서 증권거래위원회의 감독 등 진보 진영은 사사건건 자신에게 딴지를 걸고 발목을 잡으려 했고, 그래서 머스크는 민주당이 더 싫어집니다. 이때 트럼프가 “세상의 모든 마녀사냥의 피해자들이여. 내가 당신을 대변하겠노라”며 나타납니다.
크리스 휴즈는 실리콘밸리의 엘리트들이 특히 트럼프와 자신을 동일시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들이 보기엔 트럼프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세상을 뒤흔들 엄청난 아이디어 때문에 부당하게 박해받는” 피해자라는 겁니다. 쓸데없는 규제를 풀어주고, 그런 부당한 박해를 주장하는 이들의 입을 다물게 해 줄 수 있다면 이들은 트럼프가 아니라 누구에게라도 후원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트럼프가 법을 어기고, 민주주의 규범을 헌신짝처럼 내던지며,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거짓말을 일삼아도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건 정부의 규제를 해제하는 일입니다. 그래야 이들이 마음껏 기술을 개발해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으니까요.
부자들은 트럼프에게 엄청난 액수의 돈을 몰아주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뿐 아니라 공화당이 상원과 하원에서 다수당을 차지해 트럼프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게 의회 선거에도 돈을 냅니다. 정치적 양극화가 언론 지형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상황에서 머스크는 트럼프를 위해 그야말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맞춤형 인터뷰를 X에서 진행했습니다. 트럼프는 자신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이었다며, 매우 만족해했습니다.
21세기 도금 시대를 꿈꾸는 게 아니라면…
머스크를 비롯한 부자들이 꿈꾸는 “규제 없는 세상”은 과연 좋은 세상일까요? 누구한테 묻느냐에 따라 다를 텐데, 트럼프에게 후원금 말고 표를 주는 대다수 유권자한테는 어떨까요?
휴즈는 이 문제에 관해서도 적절한 비유를 합니다. 자동차가 개발, 보급된 뒤 사람들의 안전과 목숨을 지키는 데는 도로교통법과 안전 규정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비행기가 개발, 보급된 뒤의 항공기 안전 규정도 마찬가지죠. 모든 규제를 쓸데없고, 심지어 나쁜 것으로 몰아가는 주장은 많은 사람에게 해로운, 위험한 주장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지금 있는 규제마저 약화하고 사라진다면, 미국은 19세기 후반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부가 극소수의 부자에게 아주 빠르게 축적되면서 갖은 문제를 일으킨 도금 시대로 돌아가고 말 겁니다. 보통 사람은 상상도 못 할 막대한 부를 쌓고 있는 부자들은 당연히 도금 시대를 그리워할 만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누구에게 투표하든 상관없이 도금 시대를 원치 않을 겁니다.
다만 해리스 캠프도 이 점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주당도 선거 자금 모금 경쟁에서 부자들에게 많이 기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에 돈을 내는 부자 중에는 상대적으로 규제를 필요악으로 보는 이들이 많지만, 일부 갑부 지지자 중에는 반독점 규제 기관인 연방거래위원회를 이끄는 리나 칸 위원장을 해임하겠다고 약속하면 후원금을 더 내겠다고 밝힌 이도 있습니다.
선거 자금 규모가 어마어마한 미국 선거에서 어느 선까지는 분명 돈이 표로 이어집니다. 특히 이번 선거처럼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선거에서 선거 자금은 승패를 결정지을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돈 많은 부자들이 선거에 돈을 쓰는 이유는 돈보다도 다른 데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들은 ‘누구한테도 간섭받지 않고 원하는 걸 마음껏 할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그런 세상이 어떻다고 판단할지, 이제 우리는 약 한 달 뒤에 미국 유권자들이 내놓는 답을 확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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