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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페@스프] ‘영어 울렁증’ 사라지는데도 외국어 공부는 왜 해야 하냐 묻는다면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7월 30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한국에서 외국어 공부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물론 여기서 외국어란 영어, 넓게 봐야 두어 개에 불과한 ‘유용한 제2외국어’를 지칭하겠지만, 한국인의 외국어 배우기 열정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겁니다. 한 달 교습비가 200만 원을 훌쩍 넘어서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 이른바 ‘영어 유치원’이 해마다 늘어나 2023년 3월 기준 원생 수가 4만 명이 넘어섰고, 초중고생 대상 사교육 시장에서도 영어 학습 비용은 부동의 1위를 차지합니다.

많은 기업에서 입사 조건과 진급 자격으로 공인 영어 성적을 요구하니, 취준생이나 직장인에게 영어는 생존 도구나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생활 속에서, 또는 업무를 위해 어떤 영어가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 없이 모두가 영어 공부에 큰돈과 시간을 쏟고 있는 현실에 허탈함을 느끼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초중고 12년 내내 영어를 배우고 토익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다 해도 실제 언어 구사 능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많은 이들이 경험으로 알고 있기도 하고요.

전문 번역: 번역기가 다 번역해주는데… 외국어 공부는 이제 무용지물일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미국인의 외국어 공부 예찬이 조금은 신선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21일 자 뉴욕타임스에는 평생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는 한 민항기 조종사의 외국어 사랑이 실렸습니다. 현지 홈스테이 연수를 통해 일본어를 처음 접한 필자는 대학 때도 꾸준히 일본어 수업을 수강했고, 지금도 새로운 기술이 제공하는 각종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꾸준히 공부를 이어나가는 중입니다.

모어가 한국어인 사람이 보기엔 세계 어디서든 문제없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영어 원어민이 무엇하러 외국어를, 그것도 영어와는 너무 달라 배우기도 어렵고 특정 국가 밖에서는 잘 통용되지도 않는 언어를 평생 공부하고 있을까 싶죠. 하지만 필자에게 외국어 공부는 지평을 넓혀주고, 경험의 깊이를 더해줄 뿐 아니라 뇌 건강과 노화 방지에도 도움을 주는 인생의 즐거움입니다.

제게도 얼마 전 영어 원어민의 삶을 살짝 체험하면서, 동시에 외국어 공부의 ‘초심’을 떠올린 경험이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동남아시아에 있는 한 휴양지로 놀러 갔을 때의 일인데, 호텔 로비에서 짧은 영어로 주고받는 기능적인 대화를 기대하던 우리 앞에 한국어를 구사하는 젊은 직원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케이팝을 좋아해서 대학에서도 한국어를 전공했다면서 한국 손님이 오면 한국어를 써볼 기회가 생겨서 즐겁다고 말했습니다.

“어머님은 저쪽 소파에 앉아서 잠깐 기다려 주시고요, 체크인은 이쪽에서 도와드릴게요”와 같은 유창한 한국어를 듣고 있자니 비행의 피로와 낯선 여행지에서의 긴장감도 금세 사그라들었습니다. ‘영국인이나 미국인은 세계 어딜 가도 기본적으로 이런 경험을 기대하겠구나’ 싶어 새삼 부럽기도 했지만, 원어민과 대화할 기회에 눈을 반짝이던 청년을 보며 외국어를 처음 배우던 때도 떠올랐습니다.

알파벳을 떼고 나서 ‘바나나’의 철자가 왜 ‘banana’인지 깨달은 순간의 짜릿함, 외국 영화를 보다가 처음으로 대사 한 줄을 통으로 알아들었을 때의 기쁨, 번역판으로만 알고 있던 소설의 원제목을 접했을 때의 경이로움, 입국심사 부스에서 내가 연습해 온 말을 공항 직원이 과연 알아들을지 긴장하며 기대하던 마음 같은 것들요. 시험 합격과 생계를 위해서 외국어를 공부하고, ‘실용적이지 않은’ 제2외국어는 뇌 용량이 아까워 삭제하며 보냈던 시간 속에서 잊어버렸던 즐거움이 되살아나는 듯했습니다.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통번역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세상입니다. 세계 공용어를 구사하는 미국인 사이에서나, 한류 붐으로 새로운 지위를 획득한 한국어를 모어로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나 외국어 공부에 대한 회의론이 등장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겠죠. 이미 외국어로 통상적인 업무 이메일을 작성하거나 여행지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일은 과거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될 만큼 쉬워졌습니다. 기술 발전의 속도는 앞으로도 점점 더 빨라질 테고요.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외국어를 공부해야 하는 시대가 지나갔다는 것은 곧 외국어 공부가 마침내 순수한 즐거움의 영역이 되었다는 의미일지도 모릅니다. 더는 외국어를 익힐 ‘필요’가 없다 해도, 각기 다른 언어의 차이점을 찾아내고 번역기가 간과하는 미묘한 뉘앙스를 발굴하기를 즐기며 외국어 공부를 해외 문학 작품 감상과 문화권 체험까지 확장하는 데서 즐거움을 찾는 이들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운동을 즐기는 사람이 있고, 식도락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이 있듯이, 외국어 공부도 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즐거움의 영역이라면 토익 점수를 얻기 위해 공부하던 때와는 사뭇 다른 마음으로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요? 외국어 공부에 대한 시각이 과거와는 전혀 달라질 날이 생각보다 빨리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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