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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페@스프] 전례 없는 흥행 돌풍의 벌써 ‘레전드’…그런데 프로 되니까 수익 증발했다?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5월 29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미국은 다들 아시다시피 프로 스포츠의 천국입니다. 스포츠 산업의 규모는 다른 나라와 비교가 안 될 만큼 압도적으로 크고, 주요 종목에서 최고의 선수들이 소속된 구단은 대개 미국 리그에 있습니다. 재밌는 건 미국의 프로스포츠 리그들이 자본주의의 속성과 공산주의의 속성을 절묘하게 결합해 놓았다는 점입니다. 이는 미국 다음으로 규모가 큰 스포츠 리그인 유럽의 축구 리그들과 비교해 보면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자본주의, 공산주의 속성을 한두 문장으로 정리하기란 쉽지 않지만, 그래도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미국에서 프로 구단을 경영하는 일은 철저히 “돈을 벌기 위한” 일입니다. 돈이 다는 아닐지 몰라도, 돈을 벌지 못하면 금방 도태될 겁니다. 그래서 스포츠 구단은 뭐든 비쌉니다. 경기를 “직관”할 때 푯값도 비싸고, 방송사나 스트리밍 서비스와 맺는 중계권료는 매번 계약을 갱신할 때마다 천정부지로 치솟습니다. 그런데도 입찰은 매번 치열하고, 그렇게 따낸 중계권료를 감당하기 위해 기업들에서 받는 광고비도 덩달아 비싸지지만, 광고주들은 줄을 섰습니다.

이렇게 “돈이면 다 되는” 자본주의 속성으로 무장한 스포츠 리그지만, “돈이 아무리 많아도 함부로 못 하게” 해둔 게 또 상당히 많습니다. 스포츠 팬이라면 이미 다 아실 제도들을 예로 들어볼까요?

선수들의 연봉에 상한을 두는 샐러리캡이 대표적입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비싼 선수를 마구 사 모으면 어떤 식으로든 제재를 받습니다. 신인 드래프트 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럽 축구에서는 지난 시즌에 성적이 안 좋은 팀들은 하부 리그로 강등됩니다. 보통 심각한 재정적 타격을 받죠. 미국 리그에서는 지난 시즌 성적이 안 좋으면 반대로 올해 더 좋은 선수 자원으로 진용을 새로 꾸려 반등할 수 있게 상위권 팀들이 양보해 줍니다. 시즌 중에는 경쟁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다같이 잘 되는 게 중요한, 한 리그에 속한 가족 같은 프랜차이즈이기 때문입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경쟁” 같은 자본주의를 수식하는 말이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제도입니다.

미국 프로스포츠 중에도 압도적으로 인기가 많은 미식축구리그 NFL은 중계권료 계약을 구단이 단독으로 맺지 못합니다. 리그 차원에서 받은 중계권료는 어떻게 배분할까요? 정확히 32로 나눠서 모든 구단에 동등하게 지급합니다. 이른바 빅마켓, 스몰마켓 팀이 엄연히 있지만, 그렇게 중계권료를 동등하게 ‘배급’하는 걸 공산주의적이라고 부른다면 너무할까요? 적어도 자본주의 속성만으로는 미국 프로 스포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미국은 소위 선진국 가운데 노동조합 조직률이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주요 프로스포츠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은 대개 선수 노조에 속해 있습니다. 이른바 “연봉 대박”을 터뜨리는 슈퍼스타들도 즐비하지만, 단체협약을 통해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의 최저임금이나 다양한 복지를 보장하는 점은 이색적입니다.

미국 스포츠에서 또 하나 독특한 제도가 있다면, 바로 전체 스포츠 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대학 스포츠의 존재입니다. 전미대학체육협회(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를 뜻하는 약자 NCAA는 스포츠를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낯선 용어가 아닙니다. NCAA는 단지 프로스포츠 선수를 꿈꾸는 유망주들의 등용문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 대단히 인기가 많고 규모도 매우 큰 스포츠 리그입니다. 특히 프로 구단은 미국 전역에 리그별로 30여 개 있는 게 보통인데, 대학은 (몇 단계 디비전이 있지만) 보통 200개 가까운 팀이 경쟁하며, 동문이 소속감을 찾는 대단히 큰 구심점 역할을 해서 또 중요합니다.

NCAA는 대학생 선수들을 아직 돈을 버는 프로 선수이기 전에 학생 신분임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NCAA와 대학들이 스포츠팀을 통해 버는 막대한 수익을 선수들에게 지급하지 않는 게 부당하다는 소송도 있었습니다. 법원은 대학들이 선수들에게 무려 280억 달러를 보상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전문 번역: “이미 최고인 스타 대접이 고작? 걸맞은 연봉을 지급하라”

 

미국 프로 스포츠의 특징에 관해 잔뜩 살펴본 이유는 올해 어쩌면 미국 프로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현상’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케이틀린 클라크를 둘러싼 이야기가 위에서 소개한 여러 특징과 다 조금씩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학사 일정이 가을에 시작해서 매년 이맘때인 5월 말이면 끝나죠. NCAA도 대부분 종목이 봄에 플레이오프나 결승을 치릅니다. NCAA 가운데 가장 인기가 많은 종목은 농구인데, 농구 플레이오프를 일컫는 “3월의 광란(March Madness)”에서 올해는 남자부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남자부보다도 여자부가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졸업반의 에이스 슈터 케이틀린 클라크 때문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차원이 다른 선수”로 주목받던 클라크는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 팀인 아이오와 대학교에 입학해 1학년 때부터 주전을 꿰차며 농구계를 평정했습니다. 이미 첫 해 리그 전체 득점 1위를 차지했죠. 3점슛 라인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데서 높은 정확도로 슛을 던져서 수비수를 곤혹스럽게 하는 선수들은 남자 농구에서는 많이 나왔지만, 여자 선수 중에는 클라크가 독보적입니다. (아이오와 대학교의 팀 이름이 매의 눈을 뜻하는 호크아이(Hawkeye)고, 홈구장 가운데는 커다란 매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데, 매의 부리(beak) 부분에서 3점슛을 꽂아 넣는 건 클라크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습니다.)

심지어 어렸을 땐 개인 기량만 뛰어난 선수였는데, 팀 플레이와 리더십을 몸에 익힌 뒤에는 20대 초반의 나이에 이미 위대한 선수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아이오와 대학교가 좋은 팀이긴 하지만, 매년 우승을 다툴 만한 강호는 아니었는데, 클라크는 2년 연속 팀을 기어이 결승에 올려놓았습니다.

작년에는 루이지애나 주립대(LSU)에 막혀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고, 올해도 무패 가도를 달리던 사우스 캐롤라이나대학교에 끝내 패하며 클라크의 “라스트 댄스”는 우승이란 결실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클라크는 여자 대학농구 역사상 전례가 없는 흥행 열풍을 일으켰습니다. 모두의 관심은 여자 대학농구 열풍을 여자 농구 전반으로 이어갈 수 있을지로 이어졌습니다.

 

프로가 되는 순간 수익이 증발하는 슈퍼스타

3,951점. 케이틀린 클라크의 대학농구 통산 득점 기록입니다. 남자 선수를 포함해 역대 최다 득점 1위입니다. 실력만 뛰어난 게 아닙니다. 열광하는 팬들, 특히 어린 소녀 팬들에게 팬서비스까지 잘 해서 클라크의 인기는 이미 전체 스포츠 스타 중에 비교해야 할 만큼 엄청납니다.

클라크가 뛰는 경기는 전국 어디서든 매진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암표 가격도 수십만 원을 호가했죠. 여자 대학농구 중계권료도 몇 년 전보다 몇 배 높은 6,500만 달러로 치솟았습니다. 클라크 외에도 훌륭한 선수들이 많이 나와 재밌는 경기도 많아지고 전반적으로 경쟁이 치열해진 점도 있지만, 인기의 상당 부분은 클라크 없이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클라크 정도의 선수가 남자였다면, NCAA 무대에서 “라스트 댄스”는 아마 없었을 겁니다. 당연합니다. 실력이 출중한 선수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혹은 대학교에서 1, 2년만 뛰고 신인 드래프트 요건을 충족하자마자 프로 무대에 도전하기 때문입니다. NCAA 선수들도 광고 계약 등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2021년에 나오긴 했지만, 여전히 남자 농구의 경우 프로 선수가 돼 NBA에서 뛰는 순간 벌 수 있는 돈이 자릿수가 달라집니다.

대법원 판결 덕분에 클라크는 NCAA 선수 가운데 가장 많은 돈을 버는 선수가 됐습니다. 이미 나이키, 게토레이, 스테이트팜 등 유명한 브랜드의 전속 광고 모델로 상당한 돈을 벌고 있죠. 그러나 클라크가 연봉으로 받을 수 있는 돈은 터무니없이 작습니다. 여자 농구는 프로 리그(WNBA)가 있긴 하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 매력이 훨씬 떨어집니다.

실제로 케이틀린 클라크는 많은 사람의 관심 속에 프로 선수가 됐고, 예상대로 지난해 성적에 따라 1순위로 신인 선수를 뽑을 권리(드래프트권)를 받은 인디애나 피버에 지명됐습니다.

클라크의 초봉은? 7만 6,535달러. 약 1억 원입니다. 당연히 1억 원이 작은 돈은 아니지만, 살아있는 전설로 평가받는 스포츠 선수가 미국 대졸 연봉의 평균을 조금 웃도는 돈을 받는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남자 선수의 경우, 즉 NBA 신인 선수의 초봉은 평균 1,200만 달러, 약 160억 원입니다. 이미 단체협약에 따라 정해진 액수인데, 샐러리캡에 따라 여자 선수의 경우 한 명이 받을 수 있는 최고 연봉도 20만 달러입니다. NBA 최고 스타 중 한 명인 스테판 커리의 연봉은 약 4,800만 달러입니다.

스포츠 선수들의 임금이 성별에 따라 매우 큰 차이가 나는 건 사실이지만, 이를 곧장 성별 임금 격차 문제로 치환하기 전에 살펴봐야 하는 점이 있습니다. 남자 리그와 여자 리그의 시장 규모 차이입니다. 글의 처음에 소개한 특징을 생각해 보면, 여자 선수들의 연봉이 낮은 건 자본주의 특성에 따라 그렇게 된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자부 리그의 인기가 남자부 리그와 비교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물론 여자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비약적으로 커지고 있긴 하지만, 또 농구의 경우 클라크가 이미 거기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시장 규모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고, 연봉이 차이나는 것도 당연합니다.

반대로 공산주의 특징은 어떻게 된 걸까요? WNBA에도 공산주의 특징이 분명히 있습니다. 신인 선수들이 받는 최소 연봉이 구단에 상관없이 정해져 있는 게 그렇습니다. 정리해 보자면, 클라크라는 슈퍼스타 개인으로 보자면 (50여 년 전 카림 압둘자바를 대우해 줬던 것처럼) 자본주의 속성에 따라 위대함을 돈(연봉)으로 직접 보상해 주는 편이 좋았겠지만, 현재 WNBA는 공산주의 속성에 따라 모든 선수가 어느 정도 균일하게 최소한의 연봉을 보장받는 제도만 택하고 있습니다.

WNBA 시즌은 지난 5월 14일 시작됐습니다. 클라크는 준수한 활약을 펼치고 있지만, 팀 성적은 부진해 (현재 1승 6패) 프로의 벽을 어느 정도 실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적과 인기는 별개로 보입니다. 인디애나 피버 경기를 보러 오는 관중이 급증했고, 클라크는 이미 수많은 광고와 협찬 계약을 추가로 체결하며 여자 농구 시장의 파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수많은 기록을 갈아치우고, 흥행을 앞장서 이끄는 등 케이틀린 클라크는 앞으로 여자 농구의 역사를 새로 쓸 것이 확실합니다. 다만 그 공로에 대한 경제적인 보상을 클라크가 연봉으로 받기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자본주의 속성이 작동하려면 시장 규모가 좀 더 커질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달 여자 대학농구 결승전을 생중계로 시청한 사람은 약 1천만 명이었습니다. WNBA 결승전의 시청자는 100만 명이 채 되지 않습니다. 클라크가 여자 농구 흥행의 역사도 어디까지 써갈지 기대됩니다.

ingppoo

뉴스페퍼민트에서 주로 세계, 스포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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