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5월 22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됐을 때 미국 언론은 트럼프가 깬 여러 가지 금기나 관행에 주목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자유무역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미국이란 나라가 건국되고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한 이래 오랫동안 미국의 주요 정치인들은 자유무역에 대체로 찬성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자유무역을 대놓고 비판했습니다. 자유무역 때문에 미국인이 일자리를 잃었다, 미국인이 누려야 할 혜택을 줄여 다른 나라 좋은 일만 시키는 게 자유무역이라는 등 직설적인 “트럼프식 화법”을 동원해 하루가 멀다하고 거친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주요 정당의 대통령 후보 가운데 2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자유무역에 반대하는 후보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트럼프는 많은 사람의 예상을 깨고 당선됐습니다. 그리고 집권 4년 동안 약속한 대로 자유무역으로 불공정한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는 나라인 중국과 관세 전쟁을 벌였습니다. 관세를 올린 효과를 두고는 해석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트럼프는 공약을 지키려 한다는 이미지를 얻었습니다.
2020년 트럼프는 조 바이든에게 선거에서 패합니다. 새로 백악관에 들어선 바이든 대통령은 전임 정부가 추진한 정책을 모조리 되돌리고 무효로 만들 것 같았습니다. 그런 경우가 없지 않지만, 의외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 사실상 그대로 유지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중국과의 무역 정책입니다. 바이든은 트럼프 못지않게 중국이 불공정한 무역 관행을 통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있다며, “중국은 사기꾼”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화법이야 물론 다르지만, 중국과의 무역 적자를 비롯해 둘이 지적하는 문제는 결이 매우 비슷합니다.
전문 번역: 두 번째 ‘차이나 쇼크’에 대비하는 미국 [크루그먼 칼럼]
뉴욕시립대학교(CUNY)의 교수이자, 뉴욕타임스에 칼럼을 쓰는 폴 크루그먼이 이 문제에 관해 글을 썼습니다. 크루그먼은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는 산업 정책의 핵심을 잘 정리했습니다. 오늘은 바이든과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정책이 어디가 비슷하고, 어디가 다른지 살펴보고, 칼럼에서 언급된 (두 번째) 차이나 쇼크가 미칠 영향을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트럼프의 무역 정책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뒤로 중국은 명실상부 ‘전 세계의 공장’이 됩니다. 미국 소비자들도 값싼 중국산 제품을 살 수 있게 됐습니다. 제조업, 특히 첨단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경공업이나 생활용품을 만드는 데 비교우위는 미국보다 아무래도 인건비가 싼 중국에 있습니다. 중국이 더 많은 제품을 만들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팔면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 소비자들은 혜택을 봅니다. 미국 노동자들은 이제 경쟁력이 더 높은 서비스업이나 첨단 산업 분야에서 일자리를 찾으면 됩니다.
교과서의 경제학이 현실에서 통하지 않는 예는 수없이 많은데, 여기서도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값싼 중국산 제품이 미국 시장에 들어온 데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실제로 소비자들은 싼값에 물건을 살 수 있게 됐죠. 그러나 중국산 제품과 경쟁하는 공장들이 문을 닫고 줄줄이 도산하면서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이들이 다른 분야에서 일자리를 찾기가 말처럼 쉽지 않은 게 문제였습니다. 미국은 정부도, 기업도 노동자의 재교육이나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는 데 관심이 없는 데다 중국산 제품과의 경쟁에서 밀려 공장이 문을 닫고 온 마을의 경제가 사실상 붕괴하는 현상이 지역적으로 편중돼 나타났습니다. MIT의 데이비드 오터 교수가 공저자와 함께 지적한 ‘차이나 쇼크’가 왔습니다.
트럼프는 이를 되돌리기 위해 중국산 수입품에 대대적인 관세를 매기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집권 후 여러 차례 관세를 올렸습니다. 중국이 여기에 예상대로 거세게 반발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경제 규모가 큰 두 나라 사이에 관세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트럼프는 관세를 올려 무엇을 얻고자 했을까요? 공약대로 중국이 빼앗아간 일자리를 미국으로 되돌려오는 게 목표였다면, 관세 전쟁은 만족할 만한 결과를 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트럼프는 2018년 중국산 세탁기에 관세를 부과합니다. 중국산 세탁기를 만들어도 미국에서 비싸게 팔아야 하니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 차라리 미국에서 세탁기를 생산하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을 내리게 유도한 거죠. 연구에 따르면, 이 관세 덕분에 미국에 제조업 일자리가 수천 개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일자리가 늘어나는 긍정적인 효과만 있던 건 아닙니다. 소비자들은 이제 세탁기를 더 비싸게 주고 사야 합니다. 싸게 살 수 있던 중국산 세탁기는 관세 때문에 값이 오르고, 미국에서 만든 세탁기나 다른 제품은 원래 중국산보다 비쌀 테니까요. 즉, 관세의 부담은 소비자에게 전가됩니다. 수천 개의 일자리가 늘어났지만, 일자리 한 개당 미국 소비자들이 추가로 부담한 비용이 82만 달러에 이른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미국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가져오기 위한 정책 치고 효율성은 매우 낮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분석은 그런데, 정치적인 면을 같이 고려하면 또 얘기가 달라집니다. 무엇보다 “트럼프는 약속을 지키는 후보”, 최소한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후보”라는 이미지를 굳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오랫동안 주류 경제학자와 워싱턴의 엘리트 기득권들이 소비자가격이 내려가는 걸 보라며 자유무역을 찬양하는 사이 우리 동네를 먹여 살리던 공장이 문을 닫아 이웃 모두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곳을 생각해 봅시다.
그런 지역 유권자들에게 트럼프는 그동안 아무도 관심도 기울이지 않던 문제에 신경을 쓰고 나의 어려움을 대변해주는 든든한 정치인으로 비쳤을 겁니다. 이런 유권자들이 20세기 중후반까지 제조업으로 번성하다가 지난 2~30년 사이 몰락한 중서부 러스트벨트 지역에 모여 있는데, 하필 그 가운데 미국 대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합주들이 많았습니다. 2016년 트럼프의 ‘깜짝 당선’은 차이나 쇼크의 영향을 받은 과거 제조업 종사자들의 ‘몰표’를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트럼프는 중국의 보복 관세로 수출길이 막혀 어려움을 겪는 농업 분야에 적잖은 보조금을 지급하면서까지 관세 전쟁 이슈를 정치적으로 십분 활용했습니다. 2020년에는 다른 이유로 선거에서 패했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같은 정책을 다시 부각해 표를 모으려 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를 지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의 최근 저서나 인터뷰를 봐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바이든의 무역 정책
트럼프가 중국과 벌인 전면적인 관세 전쟁이 경제적인 효과는 미미하더라도 정치적으로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다면, 바이든은 어떻게 트럼프와의 차별화를 시도했을까요?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가 도입한 관세를 전면 폐기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이 많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의 관세 대부분을 그대로 뒀으며, 특정 분야에서는 새로 관세를 부과했습니다. 최근 중국산 제품 가운데 반도체와 태양광 전지, 전기차 등에 관세를 새로 부과한다고 발표했죠. 결국, 2024년 대선에 나서는 두 주요 후보가 모두 자유무역을 무역 정책의 근간으로 삼지 않는 매우 기이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새로 부과하는 관세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미국이 전략적인 우위를 반드시 차지해야 한다고 믿는 분야에 집중됐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반도체와 태양광 전지, 전기차 등 청정 에너지 사업 분야가 대표적인데, 바이든은 중국이 이 분야에서 대대적인 국가 차원의 보조금을 지급해 산업을 육성하는 등 불공정 경쟁을 벌였으므로, 이를 바로잡기 위해 관세를 부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청정 에너지 산업 등을 전략적으로 육성해 중국과의 경쟁에서 지지않는 데 중점을 둡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해 청정 에너지 산업에 대한 다양한 보조금과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한 것과 맞물리는 계획입니다. 다만 바이든의 전략은 시행하기에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운 전제가 따릅니다. 즉, 청정 에너지 분야에서 미국산 제품이 기술적 우위를 잃지 않으면서도 중국산 제품보다 너무 비싸지 않게 생산돼야 경제적 효과를 볼 수 있는데,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가격이 올라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된다면 소비자들이 만족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이며, 소비자들이 5개월 뒤 대선에서는 곧 유권자라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는 요인입니다.
미국 시장이 닫힌다고 중국의 청정 에너지 산업이 쉽사리 몰락하지 않는 점도 변수입니다. 물론 세계에서 가장 큰 미국 시장으로의 판로가 막히면 중국 기업들은 타격을 받겠지만, 이미 상당 부분 확보한 기술과 가격 경쟁력에서의 우위를 잃지 않는다면 결국, 더 손해를 보는 쪽은 미국입니다. 미국산 태양광 전지나 전기차가 싸지도 않고, 기술적으로도 딱히 뛰어나지 않다면 모두가 출혈을 감내하다가도 결국, 백기를 드는 쪽은 미국이 될 수도 있습니다.
11월 선거를 앞둔 현직 대통령 바이든에게 더욱 부담스러운 건 좀처럼 꺾이지 않는 인플레이션입니다. 다른 모든 요인보다도 투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물가를 비롯한 경제 지표인데, 40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의 여파를 미국 사람들은 여전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청정 에너지 분야를 비롯해 산업 정책을 통해 육성하려던 산업이 뜻대로 되지 않고, 그 결과 물건값만 더 오른다면 바이든으로선 경제 정책도 실패하고, 유권자들의 표도 잃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 차이나 쇼크
폴 크루그먼은 두 번째 차이나 쇼크가 중국의 경제 위기에서 기인할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즉, 경제 전반의 생산성이 낮아져 수익도 줄었지만, 소비를 진작해 위기를 타개하기보다 계속해서 많은 생산품을 전 세계에 내다 파는 쪽을 택한 중국 공산당의 결정으로 인해 두 번째 차이나 쇼크가 올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는 중국이 발전된 기술을 통해 이룩한 태양광 전지나 전기차 등의 성과를 너무 무시한 분석일 수도 있습니다. 중국은 일대일로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 사이의 협력을 강화하고, 다양한 판로를 개척했습니다. 오히려 두 번째 차이나 쇼크는 청정 에너지 부문에서 미국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기지 못할 때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등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늘 동맹국과 함께 경쟁국인 중국을 압박하는 쪽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로선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항목에 부과하는 관세나 새로운 정책이 우리와 관련된 산업에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고 대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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