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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페@스프] 선거제 허점 악용해도 견제할 방법, 저기도 없네?!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4월 17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미국 대선에 관해 이야기할 때마다 반드시 언급되는 단골 소재가 바로 선거인단(electoral college)입니다. 우리나라처럼 대통령제를 채택한 나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제도라서 더욱 그렇습니다. 투표권이 있는 유권자들의 표를 더해 가장 많은 표를 받은 후보가 당선되면 간단할 텐데, 미국은 굳이 선거인단이라는 절차를 한 번 더 거쳐서 대통령을 뽑는 방식을 건국 이후 250년 가까이 유지하고 있습니다.

선거인단이 유권자의 뜻을 한 번 걸러내 대통령을 뽑기 때문에 미국 대선을 “간접선거”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간접선거를 “유권자가 직접 지도자를 뽑지 않고, 유권자가 뽑은 누군가가 지도자를 뽑는 선거”로 정의한다면, 미국 대선은 간접선거로 분류하기 어렵습니다. 주마다 양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미국 유권자들이 오는 11월 받아 들 투표용지에는 조 바이든과 도널드 트럼프를 비롯한 대통령 후보 이름이 있을 겁니다. 유권자가 대통령을 직접 뽑는 셈입니다. 단지 표를 집계하는 방식이 다른 나라들과 좀 다를 뿐입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려면 미국이란 나라의 특징을 몇 가지 이해해야 합니다. 미국은 50개 주가 모여 연방을 이룬 연방제 국가라는 점, 그리고 보통법 전통을 따르는 관습법 국가라는 점이 그렇습니다. 1791년 제정된 미국 수정헌법 10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헌법에 의하여 미국 연방에 위임되지 아니하였거나, 각 주에 금지되지 않은 권력은 각 주나 국민이 보유한다.

보통 세계 최고 권력자를 꼽으라 하면 미국 대통령을 첫 손에 꼽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미국의 국방력을 비롯한 국력과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생각하면 이런 통념을 틀렸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국내적으로 보면 미국 대통령(연방 정부)의 권력과 권한은 곳곳에서 제약을 받습니다. 대표적인 게 위에 소개한 수정헌법 10조입니다. 대통령은 물론 국내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지만, 대통령의 결정을 견제하거나 뒤집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꽤 많습니다.

같은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선거 제도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와 미국의 대통령제는 차이가 큰데, 가장 큰 차이는 중앙 선거관리위원회의 존재 여부일 겁니다. 우리나라는 중앙 선관위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관장하는 역할을 진두지휘합니다. 각 지방 선관위는 중앙 선관위의 산하 조직이죠. 그런데 미국은 중앙 선관위가 없습니다. 그런 조직도 없고,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대통령을 포함해 연방 정부를 구성하는 데 선거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 선거를 관장하는 건 어디까지나 주 정부의 일입니다. 주마다 있는 주무부(Department of State of the State)가 주의 사무를 총괄하는데, 주무부의 일 중에 제일 중요한 일이 선거 관리입니다. 연방 정부(미국)의 사무를 총괄하는 부처는 국무부(Department of State of the U.S.)인데, 국무부는 우리나라로 치면 외교부가 하는 일을 합니다.

미국 대선에서 표를 집계하는 방식이 다른 나라들과 다르다고 설명드린 건 선거인단 제도 때문입니다. 미국에선 538명 선거인단 과반의 표를 얻은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선거인단은 주별로 나뉘어 배정되는데, 선거인단을 누구로 어떻게 꾸릴지 정하는 원칙을 관장하는 것이 주무부, 즉 주 정부의 소관입니다. 연방 선거법 어디에도 주 정부가 선거인단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꾸려서 수도로 보내야 하는지 정해놓지 않았습니다. 그런 법을 제정하려 했어도 수정헌법 10조 위반이기 때문에 어딘가에서 막혔을 겁니다.

50개 주 대부분이 선거인단을 배정할 때 ‘승자독식’ 방식을 따릅니다. 주별로 득표를 집계해서 한 표라도 더 많이 받은 후보가 그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을 독차지하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민주당과 공화당이 각각 사전에 우리 당이 이기면 누구를 선거인단으로 꾸릴지 명단을 제출합니다. 마치 우리나라 총선의 비례대표 후보 명부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예를 들어 선거인단이 20명 배정된 주라면 민주당이 20명, 공화당이 20명을 각각 정해놓고 선거를 치러서 민주당이 이기면 민주당이 정한 20명이 주를 대표하는 선거인단이 되고, 공화당이 이기면 공화당이 제출한 선거인단 20명이 워싱턴 D.C.로 갑니다. 주마다 선거인단 명부를 주무부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주도 있고, 그렇지 않은 주도 있습니다. 주마다 규정이 다른 경우가 너무 많아서 일괄적으로 어떻다고 설명할 수 없는 것 또한, 연방제 국가 미국의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아무튼 주 정부의 권한이 막강하기 때문에 대통령을 뽑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선거인단 제도를 운영하는 것도 결국, 주 정부의 몫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또한, 미국의 사법 체계는 보통법(common law) 전통을 따릅니다. 보통법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자세히 법조문에 써넣는 대륙법 전통과 반대로 상식과 관습을 존중하고, 법조문보다 법원의 판결, 즉 판례를 중시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대륙법 전통을 따르는 우리나라 사법 체계와 비교해 보면 법조문과 규정 자체가 훨씬 느슨한데, 문제가 생기면 그때 법원에서 잘잘못을 다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즉, 주 정부가 선거인단을 어떻게 구성하는지도 법이 정하기보다 관습을 따르는 것이 미국 민주주의를 운영하는 ‘최선의 방식’입니다. (적어도 미국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올해 대선에서 꽤 오래 유지돼 온 현행 선거인단 배분 방식에 작은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50개 주 대부분이 선거인단을 승자독식으로 배정한다고 했는데, 정확히 말하면 메인주와 네브래스카주를 뺀 48개 주가 승자독식 방식을 따릅니다. 그런데 네브래스카주가 이번 선거에서 그동안 (하원) 선거구별로 선거인단을 나눠 배정하던 방식을 버리고, 대다수 주와 마찬가지로 승자독식 방식을 채택하려 하자,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자멜 부이가 이에 관해 칼럼을 썼습니다.

전문 번역: 정치인들이 ‘과거의 전통’을 들먹일 때 기억해야 할 것

 

네브래스카주 정부의 움직임 이면에는 올해 대선을 앞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중요한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바로 선거 규칙을 최대한 자기한테 유리하게 바꾸고, 선거 관리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겁니다. 지난 2020년 선거에서 심판(선관위, 특히 주요 경합주 주무부)이 자신에게 불리한 판정을 잇따라 내린 것을 결정적인 패인으로 여기고 있는 트럼프는 이번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운동장을 자기 쪽으로 기울이고 있습니다. (트럼프 측에선 자신에게 불리하게, 불공정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맞추는 일이라고 설명할 겁니다.)

아무튼 네브래스카주에서는 이변이 없는 한 공화당 후보가 표를 더 많이 받습니다. 주지사도, 선거구가 따로 없는 상원의원도 모두 공화당 출신이고, 주 정부, 주 의회도 공화당 손아귀에 있습니다. 각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의 숫자는 그 주의 상원 의석 수(모든 주가 똑같이 2명)에 하원 의석 수(인구에 비례해 10년마다 재조정)를 더한 숫자와 같은데, 네브래스카주는 5명의 선거인단을 상원 의석 수에 해당하는 2명은 전체 득표 결과에 따라, 나머지 3명은 지역구별로 표를 집계해 배정했습니다. 원칙적으로 5명이 4:1 또는 3:2로 나뉠 수 있는, 승자독식 규정에 예외가 날 수 있는 방식이고, 실제로 2020년 선거에서도 조 바이든이 도시 인구가 많은 2번 지역구의 선거인단 1명을 가져갔습니다. 워런 버핏이 사는 오마하가 2번 지역구에 있습니다.

미국 정치가 양당제를 따르므로, 선거인단을 나눠 가지는 건 철저히 제로섬 게임입니다. 우리 당이 빼앗긴 선거인단은 반드시 상대 당의 표가 되고, 반대로 상대편의 표를 빼앗아 오면 우리 표가 늘어납니다. 경쟁이 치열한 선거일수록 선거인단 한 명 한 명이 아쉬운데, 제도적으로 내 선거인단을 한 명 더 확보할 수 있는 움직임을 마다할 후보는 없을 겁니다.

네브래스카주 정부 공화당 인사들의 이런 시도는 노골적으로 자기편을 밀어주는 일이라고 손가락질받기도 하지만,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철저히 합법적인 일입니다. 앞서 길게 설명한 수정헌법 10조에 보통법 전통이 이를 보장합니다. 민주당은 물론이고, 자멜 부이와 같은 진보 성향 논객들도 공화당의 ‘꼼수’를 도덕적으로 비난하겠지만, 선거에서 트럼프가 이긴다면 이른바 “정치적으로 모든 게 다 용서되는” 상황이 마련될 겁니다.

 

제도 자체의 선악을 나누기는 어렵지만…

미국 대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만한 제도적 변화도 아니고, 지엽적인 영향만 끼치고 말 수도 있는 일에 제 개인적인 의견은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원래 모든 정치 제도, 특히 선거 제도는 그 제도를 설계하고 바꾸는 데 참여한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각자 정치적인 셈법에 따라 타협을 거듭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선거인단 제도가 세상에 나온 구체적인 과정은 자멜 부이가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그보다 오늘은 좀 더 원론적인 차원의 이야기를 보태고 싶습니다. 즉, 절대적으로 선한 제도나 악한 제도는 잘 없다는 겁니다. 애초에 제도를 만들 때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얼마나 충실히 반영하고 조율했느냐에 따라 제도가 정당성을 인정받으면 오래갈 것이고, 그런 제도가 상대적으로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있겠습니다. 그러나 어떤 제도를 수정하고 개정하는 이유가 악법을 발본색원하는 작업이라면, 애초에 그런 제도가 태어나게 허용한 민주주의 시스템이 성숙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선거인단 제도는 건국의 아버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 문제를 둘러싼 각자의 셈법에 여러 우연이 겹쳐 탄생하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이후 250년 가까운 미국 역사에서 어쨌든 사라지지 않고 명맥을 유지해 왔으니, 생명력 있는 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관습법 전통이 강해 한 번 뿌리내린 제도가 잘 바뀌지 않는 특징이 미국 정치에 있기도 하지만, 세부적인 내용과 조항을 주마다 무수히 바꾸면서 변하는 시대상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것도 선거인단 제도가 아직도 남아 있는 비결일 수도 있습니다.

선거인단 제도는 지난 2016년에 정당성 측면에서 가장 큰 도전에 직면합니다. 미국 전체 유권자 득표와 선거인단의 표가 극적으로 갈렸기 때문입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힐러리 클린턴보다 300만 표 가까이 전체 표를 덜 받고도 주요 경합주에서 아슬아슬하게 승리하고 선거인단을 독차지한 제도 덕분에 선거인단 싸움에선 클린턴을 넉넉히 따돌렸습니다. 과연 선거인단이 표심을 제대로 반영하는 게 맞냐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지만, 그런 비판은 “지고 나서 규칙 탓한다”는 반론을 넘지 못하고, 선거인단 제도는 계속 살아남았습니다.

선거인단 제도의 정당성을 둘러싼 논쟁은 지난 2016년의 사례가 그랬듯 선거를 치른 뒤에 진 쪽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이긴 쪽이 이를 묵살하는 방식으로 흐를 가능성이 큽니다. 근본적으로 제도가 바뀔 가능성은 특히 미국에선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말입니다.

그보다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도널드 트럼프가 정치 제도 전반의 허점을 파고들어 이를 악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트럼프는 정치에 입문한 뒤 곧잘 관행을 무시하고 철저히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면 “부패한 기득권이 나를 시기하고 질투해서 견제하는 것”이라고 일축했죠. 그러나 그 정도가 암묵적으로 합의한 선거 절차에 관한 각종 불문율을 어기는 데 이르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트럼프는 이번에 재선에 나서며 각 주무부 주요 인사와 선거 관리 위원들을 최대한 자기편 사람들로 채우는 데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아무리 치열한 선거에서도 한쪽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선거 관리를 독식하려고 든 경우는 없었습니다. 2024년 미국 정치를 요약하면, 관습법 전통을 따르는 나라에서 관습을 일방적으로 무시해 버리는 권력자를 견제할 방도가 없어 난처해진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트럼프는 몇몇 불문율을 어기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정법을 어긴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아직 판결이 나기 전이지만, 사법 절차를 전부 다 자신을 향한 마녀사냥으로 몰아세우며, 지지자들을 향해 판사를 공격해 달라고 “좌표를 찍는” 트럼프는 선거에서 승리해도 패자에게 정치 보복을 하지 않는다는 미국 정치의 또 다른 불문율을 대놓고 어기는 중이기도 합니다. 제도 자체의 선악을 나누기는 어렵다고 하지만, 불문율과 관습이 다 무너지고 나면 오랫동안 유지돼 온 제도가 정당성을 잃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나면 남는 건 유례를 찾기 힘든 정치적인 혼란과 불확실성일 겁니다.

 

ingppoo

뉴스페퍼민트에서 주로 세계, 스포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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