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4월 15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로스 더우댓(Ross Douthat)은 지난해 말 대한민국은 사라지고 있는가?라는 칼럼을 쓴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입니다. 제목만으로도 당연히 한국에서 큰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던 글인데, 많은 선진국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저출생 경향이 유난히 두드러지는 나라가 한국이다 보니, 이를 소재로 삼아 글을 썼던 거죠.
원래는 저출생이나 육아, 가족에 관한 주제보다 주로 종교와 철학에 관한 주제로 글을 써온 더우댓은 2009년 보수 논객이던 빌 크리스톨의 자리를 이어받아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기명 필진에 합류했습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수정란도 생명체이므로, 임신 중절을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여러 차례 글로 쓴 적 있는 더우댓은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중에는 보수적인 성향으로 분류됩니다.
저출생 현상이 서구 사회를 비롯한 많은 선진국에서 나타나다 보니, 기저에 자리한 문화적, 구조적인 원인을 분석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글이 종종 올라오는데, 지난 5일에 더우댓이 새로 칼럼을 한 편 썼습니다. 그보다 나흘 전에 뉴욕타임스가 이탈리아 북부의 모범 사례를 소개하며 쓴 기사를 소재로 삼아 쓴 칼럼입니다.
전문 번역: 스마트폰을 저출생 극복에 활용하자는 역발상, 그거 말이 되나요?
모범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과 함께 (전국 평균보다) 높은 출산율로 평가하는 성공이 정책 덕분이라고 섣불리 예단하거나 확대 해석해선 안 되는 점을 두루 짚은 더우댓은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스마트폰 시대, 좀 더 넓게 보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화면에 파묻혀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종의 풍속을 문제로 꼽습니다.
스마트폰이라는 들고 다니기 편한 기기, 내 관심을 얻고 나를 플랫폼에 붙들어 놓으려는 소셜미디어나 많은 콘텐츠들, 그 기저에 있는 추천 알고리듬까지 분명 하나하나 문제가 많아 보이는 요소이긴 하지만, 사실 저출생의 원인이 스마트폰이라고 콕 집을 만큼 인과관계가 뚜렷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더우댓도 사견임을 전제하지 않았을까 싶고요.
스마트폰과 저출생 사이에 인과적인 연결 고리가 뚜렷하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지, 오늘날 우리의 스마트폰 사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스마트폰의 문제를 지적한 조너선 하이트의 책과 연구는 얼마 전에 소개한 칼럼에서도 언급됐습니다. 자녀를 과잉보호하려는 완벽주의 성향의 X세대 부모들의 교육관에 소셜미디어를 통해 또래 집단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게 되는 덫의 굴레에 빠진 10대 청소년의 상황이 겹친 결과, 10대 청소년의 정신건강이 급격히 나빠졌고, 특히 여성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급증했습니다.
하이트는 더우댓이 저출생과 스마트폰 사이에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고 주장한 것보다 몇 배 더 확신에 찬 어조로 미국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이 악화한 데는 소셜미디어의 책임이 매우 크다고 단언합니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사람들을 서로 더 많이 연결해 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를 화면 밖으로 몰아내 더 외롭게 만들었다는 지적을 새겨 들어야 합니다.
결국 문화를 바꾸지 못한다면 도루묵
스마트폰에 중독된 풍속도 결국은 아이를 낳고 기를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하는 문화의 단면일 수 있습니다. 저출생 대책으로 세운 정책이 잘못됐거나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저의 문화 전반이 문제의 원인일 거라는 더우댓의 지적과 통찰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가져와서 젊은 부부 통장에 돈을 넣어줘도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돈이 없어서 아이를 안 낳거나 못 낳는다는 분석은 기껏해야 절반만 맞고, 나머지 절반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저출생이 심각한 문제라는 데 여론이 대체로 동의하기 때문에 예산을 확보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 관건은 이 예산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쓰느냐입니다. 그러려면 당장 시급한 지원도 물론 해야겠지만, 구조적인, 문화적인 걸림돌을 치우는 데도 돈을 잘 써야 합니다. 구체적인 걸림돌은 나라마다, 사회적으로, 문화권마다, 또 시대에 따라 다를 겁니다. 젊은 부부가 아이를 낳고 기르는 출산과 육아의 과정을 면밀히 따라가 보기만 해도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기업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새로 구상할 때 이를 사용할 고객이 되어 물건을 써보고 서비스를 이용해 보면서 불편한 점, 개선해야 할 점을 찾아내는 것처럼 정부도 탁상공론에 그치지 않는 현실적인, 실질적인 정책을 세워야 합니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일도 훨씬 더디고, 어렵지만 중요합니다. 위의 문단에서 출산과 육아의 주체를 저도 모르게 “젊은 부부”로 한정했는데, 젊은 사람만 아이를 낳는 것도 아니고, 결혼한 부부가 아니면 아이를 낳지 말라는 법도 없는데도 그렇게 쓴 건 무의식 중에 드러난 제 편견의 발로입니다. ‘정상적인 부부’가 아니면 출산과 육아에 도전하는 걸 장려하지 않는 사회는 그 자체로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데 걸림돌일 수 있습니다.
한 사회가 아이를 낳아 키우기 좋은 사회여야 하고, 아이를 기르고 싶은 환경이 마련돼야 합니다. 그러지 못한다면 아무리 많은 예산을 쏟아부어 여기저기 지원을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궁극적으로 아이를 반겨주고 함께 키워주는 사회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예산은 허투루 쓰일 것이고, 모든 게 도루묵이 되고 말 겁니다. 다양한 이유로 파괴되고 파편화된 공동체를 복원하는 데 예산을 쓰고, 육아의 책임을 부모에게만 맡길 게 아니라 마을이, 사회가, 정부가 뒤를 튼튼히 받쳐줘야 합니다. 돈도 돈이지만, 제도적으로 육아의 짐을 나눠서 지고, 문화적으로도 아이들을 배제하지 않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합니다.
총선 의제에 포함되지 못해 유감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건 어디까지나 오늘의 칼럼을 보고 떠올린 제 의견입니다. 누구나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열린 사회를 지향하는 민주주의 사회라면 서로 견해가 다른 이들이 치열하게 토론하고 생각을 조율해 가며 자원을 배분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를 위해 존재하는 대표적인 제도가 선거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지난 10일 대한민국은 총선을 통해 국회의원 300명을 새로 뽑았습니다.
아쉬운 건 한국에 대해 한국인보다 잘 알지 못하는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도 걱정하며 글의 소재로 쓴 한국 사회의 저출생 문제가 이번 총선 의제에선 사실상 배제됐다는 점입니다. 유권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정당들이 우리 사회의 인식과 문화를 어떻게 바꿔서 심각한 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비전을 내놓고 경쟁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을까요? 물론 현실적인 제약이 한둘이 아니었을 겁니다. 정치인, 정당인으로서 선거를 치러보지 않고서는 짐작하기 어려운 고충도 많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또 다음 선거까지 기다리기엔, 그리고 아마도 다음번에도 또 이 문제보다 훨씬 덜 중요한 정쟁에 매몰돼 기회를 놓치기엔 한국 사회의 저출생 문제는 너무 심각합니다.
칼럼에서 소개한 기사에 사례로 등장한 이탈리아는 유럽연합 국가들 가운데 출산율이 낮아 국가 차원에서 비상이 걸렸습니다. 그런 이탈리아의 2021년 합계출산율이 1.25입니다. 우리는 이미 늦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것부터 바꿔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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