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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페@스프] 인공지능의 시대, 우리가 찾아가야 할 균형점은 어디쯤일까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10월 9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며칠 전 MIT 경제학과 대런 아세모글루 교수의 대중 강연에 다녀왔습니다. 우리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과학자 중 한 명이자, 정치와 경제, 시장과 제도, 기술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가장 날카롭게 분석하는 학자로 꼽히는 아세모글루는 최근 “권력과 진보(Power and Progress)”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이번 강연에서도 주로 새 책 이야기를 했습니다. 책 표지에 쓰여 있는 부제가 “기술과 번영을 둘러싼 천년의 쟁투”입니다. 그만큼 방대한 시기에 일어난 수많은 일들을 다룬 책이라서 혹시 강연 내용이 너무 복잡하거나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세모글루 교수는 가장 먼저 왜 지금 이 책을 썼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거기에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을 비롯한 새로운 기술이 인간의 노동, 시장 제도, 권력 구조 등 우리의 삶 전반에 미칠 영향이 매우 클 것이 점점 자명해지는 상황에서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고 거기서 교훈과 통찰을 얻고자 했다는 답을 내놓았습니다.

아세모글루 교수가 천착한 문제 가운데는 자동화 등 기술의 변화가 우리에게 미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새로운 기술과 인간이 제로섬 게임을 벌이지 않고 공존하는 방법에 관한 연구도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관련해 비슷한 질문을 받은 아세모글루 교수는 “자동화와 비슷한 관점에서 보자면, 챗GPT를 비롯한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사람의 몫을 빼앗아 가게 두는 대신 인간의 노동을 돕고 생산성을 높이는 데 힘을 합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말이야 물론 좋은데, 과연 현실에서 그렇게 인간과 기계가 이상적으로 공존하는 게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과거에 새로운 기술이 시장과 사회에 도입됐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연구하고 살펴보는 건 좋은데, 지금 우리 앞에 닥친 인공지능이란 기술은 어쩌면 차원이 다른 기술 변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데 집에 돌아와 이번 주에 스브스프리미엄에 소개하기로 한 뉴욕타임스 칼럼을 읽어 보니, 어쩌면 이 쉽지 않은 질문에 답을 주는, 혹은 최소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사건이 최근에 벌어진 것 같습니다. 바로 할리우드 작가들의 파업이었습니다.

전문 번역: 할리우드 작가 파업과 A.I. 시대의 노사 관계

 

할리우드 유수의 영화, 드라마 제작사, 방송사, 콘텐츠 플랫폼과 계약을 맺고 대본, 각본, 극본을 쓰는 작가들이 순전히 챗GPT를 비롯한 인공지능의 등장에 위기의식을 느껴 파업에 나선 건 아닙니다. 모든 파업이 그렇듯 미국작가조합의 파업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얽혀 있습니다. 오늘은 우선 이번 파업의 주요 쟁점을 간략히 살펴보고, 리트윈 교수가 칼럼에서 지적한 인공지능에 관해 작가조합과 제작사가 합의한 내용에 관해 좀 더 짚어보겠습니다.

미국작가조합의 조합원 11,500명에게는 인공지능의 도래도 문제였지만, 당장 더 심각한 문제는 바뀌어 버린 콘텐츠 시장의 구조였습니다. 예전에는 성공한 TV 드라마를 쓴 작가들은 드라마 시청률이 높게 나오면 추가로 상여금을 받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또 드라마가 성공해 새로운 시즌을 제작하면 많은 계약금을 받는 건 물론 드라마가 DVD로 판매되거나 해외 시장에 판권을 팔 때마다 계약서에 정해둔 대로 두둑한 보너스를 챙길 수 있었죠.

그런데 아시다시피 요즘은 전통적인 지상파 TV가 드라마나 쇼를 보는 주요 경로가 아닙니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죠. 미국에선 넷플릭스나 디즈니, HBO 등이 대표적이고, 기존 케이블 채널들도 자체 콘텐츠 플랫폼을 강화해 맞서고 있습니다. 스트리밍 플랫폼은 정확한 시청률을 공개하지 않으며, 작가들은 정해진 금액 외에 추가로 돈을 벌기 어려워졌습니다. 해외 판권 계약에 따른 보너스도 사라지고,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더 빨리 더 많은 작품을 더 싸게 양산하라는 압박에 시달리게 됐습니다. 작가조합은 이런 구조적인 변화가 불러온 문제에 우선 대처해야 했습니다. 인공지능 문제는 물론 중요하긴 했지만, 가장 우선순위는 아니었습니다.

 

파업 성공 비결: 배우들의 연대

사측이 노동조합의 요구에 진심으로 공감해 파업이 해결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이번 작가조합의 파업도 그랬습니다. 조합원들이 펜을 놓고 거리로 나선 건 5월이었는데, 한동안 할리우드 스튜디오 연합은 파업을 사실상 무시하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부문의 다양한 노동자들이 조직적으로 협력해야 합니다. 작가 외에 드라마 감독과 PD 등 제작자, 그리고 배우들도 중요합니다. 감독들은 협회가 있기는 한데, 단결력이 높은 편은 아닙니다. 실제로 스튜디오 연합은 작가조합이 파업에 돌입하자, 재빨리 감독들과 새로운 계약을 맺고 연쇄 파업의 가능성을 차단했습니다. 배우들도 파업에 나서지 않으리란 전망이 우세했습니다. 그런데 7월 중순에 이 전망을 뒤엎고, 배우들이 파업 중이던 작가들과 연대를 선언하며 파업에 동참했습니다.

작가조합의 파업은 많은 주목을 받긴 했지만, 작가들이 펜을 놓는다고 곧바로 영화, 드라마 제작이 멈추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제작사들도 파업을 애써 외면할 수 있었죠. 그런데 배우들까지 파업에 동참하자, 말 그대로 할리우드는 개점휴업 상태가 됐습니다. 스튜디오 연합은 어떻게 해서든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하나의 생산물을 만드는 데 조직적으로 협력하는 서로 다른 노동자들의 연대가 빛을 발한 순간입니다.

협상 테이블은 꾸려졌지만, 협상은 한동안 지지부진했습니다. 그러나 9월 초까지 협상에 아무런 진전이 없자, 양측 모두 갈수록 더 큰 압박에 시달립니다. 작가들도 몇 달째 수입이 끊겼으니, 생계에 지장이 없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손해 규모만 놓고 보면 기획했던 새로운 드라마나 영화를 만들지 못하게 됐을 때 스튜디오들이 감당해야 할 손해 금액이 훨씬 더 컸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시간은 파업에 돌입한 노동자들의 편이었던 셈이죠. 결국, 디즈니, 워너브라더스, NBC 유니버설, 넷플릭스 등 주요 제작사들의 경영진이 작가조합의 요구사항을 직접 검토한 끝에 합의안이 나왔습니다. 작가조합의 승리는 결국, 우리가 소비하는 콘텐츠도 사람이, 노동자가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 사건입니다.

 

인공지능과 창의적인 노동

디지털 세상의 특징 중 하나는 콘텐츠나 제품을 복제하는 데 드는 비용이 0에 가깝다는 점입니다. 저작권을 설정해 그 비용을 인위적으로 높여 놓은 건 디지털 콘텐츠 생산에 든 막대한 비용을 보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무튼 제조업의 생산 양식을 그대로 적용해서 노동을 정의하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완성된 제품은 기술적으로 복제하기 쉽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예를 들어 드라마나 영화의 극본을 쓰는 행위, 즉 창의적인 노동은 쉽게 복제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챗GPT와 거대언어모델이 처음 선보였을 때는 창의적인 노동도 곧 기계가 대체하게 될 거란 말도 나왔지만, 적어도 그런 일이 당장 벌어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대신 생각해 볼 수 있는 새로운 균형이 바로 아세모글루 교수가 이야기한 기술과 인간의 협업입니다.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단순히 대체하는 게 아니라, 기계의 도움을 받아 전체적인 생산성이 높아지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죠.

뉴스페퍼민트가 스브스프리미엄에 번역과 해설을 올리는 것도 기계와 인간의 협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해설에 참고할 글 가운데 꼼꼼히 정독하지 않아도 되는 글은 기계번역을 이용해 번역된 글을 훑습니다. 다양한 관점과 분석을 참고해서 쓴 글일수록 좋은 해설이 된다면, 기계번역 덕분에 생산성 자체가 높아졌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영어보다 한국어로 글을 읽는 속도가 훨씬 빠르니 가능한 일이고, 뉴욕타임스 칼럼 번역은 당연히 저희가 직접 합니다. 앞으로 계속 더 좋아지겠지만, 아직은 기계번역한 글이 가독성이 높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인공지능은 분명 인류의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준비하고 대비해야 할 미래는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디스토피아일 필요는 없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인간과 기계가 가장 효과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 적당한 균형점을 찾아가는 길 위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ingppoo

뉴스페퍼민트에서 주로 세계, 스포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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