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
각국 정부가 탄소 감축에 대해 명확한 태도를 취한다면 금융 시장의 혼란을 줄일 수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금융규제 당국은 기후 변화가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에 미치는 위협을 경고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럽중앙은행(ECB, European Central Bank)은 지난 7월 기후변화 대응 전략을 발표한 데 이어 기후변화에 대비한 행동 지침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영국 중앙은행(Bank of England)의 마크 카니 전 총재는 이미 2015년에 기후 변화가 불러올 금융 위기를 경고했습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Commodity Futures Trading Commission)는 지난해 “기후 변화가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해치는 주요한 위험”이라는 200쪽 분량의 방대한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미국 민주당의 진보적인 정치인들은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제롬 파월 연방 준비제도(Federal Reserve) 의장을 연임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파월 의장이 기후 위기에 맞서기 위해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다는 점이 이유였습니다.
과연 기후 리스크가 금융 시스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요? 각국 중앙은행과 기관들이 기후 리스크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속속 공개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연구에서 기후 변화가 금융 시스템을 붕괴시킨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만,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합니다. 각국 정부가 탄소세, 에너지 효율 기준 등으로 탄소를 줄이기 위해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고 목표를 달성하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들 정부는 금융 기관이 금융 시스템의 기후변화 리스크를 충분히 준비할 시간을 줘야 합니다.
기후변화는 세 가지 경로를 통해 금융 시스템에 영향을 미칩니다. 첫 번째 경로는 규제 당국이 “전환 위험(transition risk)”이라고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정부가 강력한 기후 변화 규제를 추진할 때 나타납니다. 이 경우, 경제의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자본은 탄소를 과다하게 배출하는 업종에서 저탄소 업종으로 이동합니다. 이 과정에서 오염을 유발하는 기업들이 채무 불이행 위험에 직면하고, 주가가 폭락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두 번째 경로는 금융 회사들이 기온 상승의 위험에 노출되는 것입니다. 모든 자연재해를 기후변화의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지만, 규제기관들이 모인 금융안정위원회(FSB, Financial Stability Board)는 자연재해로 인한 세계 경제의 손실이 1980년대 2,140억 달러(260조 원)에서 2010년대에는 1조 6,200억 달러(1,940조 원)까지 대폭 증가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전 세계 보험회사들이 이런 막대한 비용을 부담해야 합니다. (물론 보험사들은 장기적으로 보험료를 인상해 고객들에게 비용을 전가합니다.)
세 번째 경로는 기후변화로 인한 경제적 충격이 금융 시스템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이 경로는 측정하기 어렵습니다. 녹색 금융 네트워크(Network for Greening the Financial System)는 기온이 3도 오르면 세계 GDP가 입는 손실이 연구에 따라 2~25%로 매우 다양하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기후변화가 국제 분쟁이나 대규모 이주를 불러온다면, 가장 비관적인 추정치보다 더 큰 손실을 유발할 것입니다.
금융 시스템에 나타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대규모 전환 리스크가 갑작스럽게 발생해 경제적 피해가 확산하는 것입니다. 지난 2015년 카니 총재는 투자자들이 공황에 빠져 시장이 폭락하는 민스키 위기(Minsky Moment)가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습니다. 투자자들이 기후 정책의 급격한 조정을 예상해 자산을 팔아 치우고 리스크 비용을 광범위하게 재조정한다면, 자산 가격이 폭락하고 금리와 차입 비용이 커져 위기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전환 위험이 우려되는 자산의 잠재적인 가치는 매우 큽니다. 기후 관련 연구기관인 카본트래커(Carbon Tracker)는 세계적으로 주식 18조 달러(2경 1,500조 원), 채권 8조 달러(9,600조 원), 비상장 부채 30조 달러(3경 5,900조 원)가 탄소 과다배출 산업에 연결되어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는 2007년 당시 금융위기를 촉발한 기폭제가 됐던 1조 달러(1,200조 원) 수준의 담보부 채권보다 훨씬 큰 규모입니다. 해당 자산을 소유한 주체가 누구인지에 따라서도 손실의 영향이 달라집니다. 규제 당국은 대형 은행과 보험사 등 금융 시스템에 중요한 기관이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실시한 예비 스트레스 테스트는 주요 금융기관들이 기후 변화의 영향을 관리할 수 있으리라 평가했습니다. 지난 4월 프랑스 중앙은행(Banque de France)은 프랑스 은행들의 전환 위험이 낮은 수준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일부 지역에서는 심각한 가뭄과 홍수의 영향으로 보험사에 대한 보험 청구가 5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유럽중앙은행과 유럽 시스템 리스크 위원회(European Systemic Risk Board)도 비슷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온난화가 지속해 지구의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3.5도 이상 높아지는 경우 심각한 손실이 예상되지만, 유럽 지역의 은행들과 보험사들이 보유한 탄소 과다배출 분야 연계 자산이 제한적인 수준이기 때문에 대규모 금융 위기로 이어지지 않으리라 전망했습니다. 온난화가 심해지더라도 유럽 지역 은행들의 회사채 손실은 일반적인 스트레스 테스트의 절반 수준에 그치기 때문에 위기를 충분히 넘길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런 연구 결과는 지난 2018년 네덜란드 중앙은행(Dutch Central Bank)이 발표한 내용과 일치합니다. 네덜란드 중앙은행은 자국 금융 회사들이 전환 위험을 관리할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당시 발표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급격한 기후 정책의 변화가 재생에너지의 신속한 확산과 결합해 기업들에 “이중 충격”을 유발하고 심각한 불황을 일으킬지도 모른다고 예상했습니다. 이 경우 은행의 자본 비율은 4%P 하락한다고 추정했습니다. 비록 작지 않은 규모지만, 유럽중앙은행이 올해 실시한 스트레스 테스트의 기준은 통과하는 수준입니다.
과연 이런 스트레스 테스트가 현실적일까요? 카본트레커의 마크 캄파네일은 대부분 기관이 테스트에서 과거의 모델을 사용했다는 점을 들어 회의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만약 테스트에서 가정한 유가보다 훨씬 낮은 유가 기준으로 기업의 자산을 평가했다면, 자산의 평가 가치가 매우 낮아져 금융 당국이 우려하는 투자 심리의 공황 상태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겁니다. 스트레스 테스트에서 높은 유가를 가정했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패닉이 금융시장의 시스템 리스크를 일으키는 민스키 위기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죠.
반면, 테스트의 기준이 위기를 더 크게 반영하는 보수적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프랑스 중앙은행과 네덜란드 중앙은행은 금융기관들이 현재의 사업 모델과 대차대조표를 유지한다고 가정한 채 5년간 리스크를 측정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기후 변화가 일어나면 은행과 보험사는 이에 맞춰 리스크를 줄이는 방향으로 사업 모델을 바꿀 것입니다. 그래서 동일한 대차대조표를 가정한 것은 지나치게 보수적인 기준으로 보입니다. 프랑스 중앙은행은 금융기관들이 30년에 걸쳐 그들의 사업 모델을 현실에 맞춰 변경한다는 가정을 두고 두 번째 테스트를 시행했습니다. 당연히 이 경우에는 은행들이 화석 연료 부문에 대한 대출을 급격히 줄이고, 보험사들은 화석 연료 기업들의 보험료를 인상했습니다.
이번 스트레스 테스트는 금융기관에 변화에 적응할 시간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다시 말해, 예측 가능한 정부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프랑스 중앙은행은 정책이 지연되거나 급격하게 바뀌는 경우 신용이 크게 위축된다는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만약 정부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급진적인 정책을 꺼낼 수밖에 없는 막다른 골목에 부딪히는 것이 우리가 가장 피해야 할 최악의 상황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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