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란틱, Yoni Appelbaum)
오늘 6일,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자들을 수도 워싱턴 D.C.에 모았습니다. 백악관 앞에 모인 지지자들 앞에 선 대통령은 늘 해오던 거짓말을 또 했습니다. 자신이 11월 선거에서 이겼고, 자신의 승리를 찬탈해가려는 세력에 맞서 필요하다면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선동이었습니다. 백악관 앞에 모인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곧바로 행동에 나섰습니다. 미국 연방정부 기관, 건물이 모여있는 내셔널 몰(National Mall)로 향했죠. 거기엔 의사당(Capitol Hill)도 있었습니다. 경찰이 쳐놓은 저지선과 바리케이드를 뚫고 의사당 건물로 쳐들어간 이들 가운데는 대형 남부연합기(Confederate flag)를 든 이도 있었습니다. 폭도들은 별 제지도 받지 않고 의사당 건물을 점거했고, 대통령 선거 결과(선거인단의 투표 결과)를 확정하기 위해 의사당에 모여있던 의원들은 황급히 피신했습니다.
4년 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한 서약의 골자는 자신의 능력을 다 바쳐 미국 헌법을 지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바로 대통령에게 주어진 가장 큰 의무이자 책임이죠.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헌법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2019년 12월 18일에 하원은 뒤늦게, 하지만 마침내 헌법이 하원에 부여한 권한을 이용해 트럼프 대통령을 탄핵했죠. 탄핵 사유는 권력 남용과 의회를 방해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상원의 다수를 차지하던 공화당 의원 대부분은 헌법이 준 권한보다 당리당략을 따랐습니다. 대통령이 헌법을 명백히 어겼으므로 탄핵한 하원의 결정이 옳다고 지지한 공화당 상원의원은 딱 한 명, 밋 롬니(Mitt Romney)뿐이었습니다.
오늘 트럼프 대통령은 4년 전 취임식에서 한 서약을 또 어겼습니다. 그 결과는 특히 처참했습니다. 어쩌면 오늘의 일은 그동안 공화당 의원들이 막무가내로 구는 대통령을 제지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며 사실상 동조해온 결과가 극적으로 나타난 것일지도 모릅니다. 대통령이 시민을 대표하는 입법기관인 의원들이 모이는 의사당 건물을 공격하라고 직접 선동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트럼프의 임기는 바로 끝난 셈입니다. 아니, 하원은 당장 트럼프를 다시 탄핵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원도 반드시 트럼프를 제거하는 데 동의해야 할 겁니다. 탄핵당하면 트럼프는 다시는 공직에 선출될 수 없게 됩니다.
1868년 2월 21일은 금요일, 해가 진 뒤 워싱턴 D.C.에선 미국의 두 번째 내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던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집니다. 의회와 관계가 껄끄럽던 앤드루 존슨 대통령이 에드윈 스탠튼(Edwin Stanton) 전쟁장관(Secretary of War)을 경질하고, 그 자리에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로렌조 토마스(Lorenzo Thomas) 장군을 전격 임명해버린 겁니다.
* 존슨 대통령은 1864년 공화당과 손을 잡고 국민연방당(National Union)을 만들어 링컨의 러닝메이트로 출마, 부통령직을 수행하다 1865년에 링컨 대통령이 암살되면서 대통령직을 이어받았습니다. 민주당, 남부 출신으로 본인이 노예 소유주이기도 했던 존슨은 남북전쟁이 끝난 뒤 재건기(Reconstruction Era)에 남부 연합에 속한 주들을 서둘러 연방에 복귀시키려고 했던 인물입니다. 노예제는 폐지됐지만, 해방 노예를 시민으로 인정하는 건 주정부가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남부 주들과 달리 해방 노예에게 전부 다 미국 시민권을 주도록 연방이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급진적인 공화당 의원들이 여전히 의회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의회는 존슨 대통령과 사사건건 마찰을 빚었습니다.
스탠튼 장관은 대통령의 독단적인 인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버팁니다. 전쟁부 밖에 무장한 경비대를 배치했죠. 북부 연맹(Union) 소속으로 참전했던 군인들이 주축을 이룬 미군 육해군인회(The Grand Army of the Republic)는 스탠튼 장관을 지지했습니다. 즉시 회원들을 소집해 사복을 입고 워싱턴 D.C. 곳곳을 순찰하기 시작합니다. 육해군인회는 여차하면 전시에 준하는 동원령을 전국에 내릴 계획도 세웠습니다. 당시 신문은 “스탠튼 장관을 폭력적으로 축출하면 육해군인회 용사들이 즉각 워싱턴에 모여 그를 다시 복직시킬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과 인터뷰한 북군 참전용사들도 남부 연합이 전쟁의 패배에 승복하지 않는 행동을 하면 곧바로 다시 싸울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스탠튼 장관은 무력 대신 법을 통해 저항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먼저 상원의 지지를 구했죠. 상원은 그날 밤 곧바로 스탠튼 장관의 경질이 부당하다는 결의안을 29:6으로 통과시킵니다. 그리고 스탠튼은 이튿날 아침 존슨 대통령이 임명한 토마스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급받아 토마스 장군을 체포합니다. 토마스는 보석금 5천 달러를 내고 풀려났습니다. 이렇게 전쟁장관 경질을 둘러싼 갈등이 일단락되는 듯했는데, 토요일 낮에 하원에서 더 큰 사건이 터집니다. 하원 재건위원회가 존슨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겁니다.
존슨 대통령은 이미 쿠데타가 일어날까 두려워 수도를 방위하는 군대를 지휘하는 장군들을 모두 백악관으로 불러모았습니다. 존슨 대통령은 장군들에게 수도 근처에 배치된 흑인 부대(U.S. Colored Troops)를 아마도 자신에게 동조할 가능성이 커 보이는 백인 병사들로 바꿔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지휘관들은 대통령이 직접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리지 못하도록 의회가 법을 바꿨기 때문에 존슨 대통령의 명령을 따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부대의 배치나 군사 지휘에 관한 모든 명령은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을 거쳐야 했고, 그랜트 장군은 스탠튼 장관의 지휘를 받습니다. 대통령에게 아직 군 통수권이 없던 겁니다.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갖은 소문이 돕니다. 메릴랜드 주지사가 존슨 대통령에게 주 민병대를 파견하겠다고 제안했다, 미주리주가 자원자로 꾸린 10만 용병 부대를 보낸다, 존슨 대통령이 장관을 일방적으로 교체하면서까지 전쟁부를 장악하려 한 건 연방 정부에 비축해둔 무기로 자기 지지자들을 무장시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려는 계획이었다는 소문도 있었죠.
하원에도 물론 존슨 대통령을 지지하는 의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지금 상황에서 대통령을 탄핵하거나 직접 축출해버리는 건 헌법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주장했죠. 민주당 제임스 브룩스(뉴욕) 의원은 “탄핵소추안이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려는 목적이라면, 이는 결국 우리가 만든 정부 제도를 우리 손으로 전복, 파괴하는 꼴”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의회의 민주당 의원들은 이 문제를 법원의 판결에 맡기자고 당론을 정했습니다. 그러지 않고 강대 강으로 맞서면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판단한 거죠. 강성 민주당 성향의 신문 보스턴 포스트는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지금은 명백한 혁명 전야다. 다시 무기를 드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이 날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되면 그 피해는 섬터 요새(Fort Sumter)에서 시작된 전쟁(남북전쟁)보다 훨씬 더 참혹할 것이다.”
그러나 수정헌법 14조를 제정하는 데 관여한 존 빙엄(오하이오, 공화) 의원은 보스턴 포스트의 경고를 일축했습니다. 지금 문제가 되는 건 “대통령이 헌법이나 법 위에 군림하도록 허락하느냐 마느냐”일 뿐이라고 정리했습니다. 대통령이 헌법을 어겨 탄핵당할 만한 사유가 있는지 아닌지 판단하는 권한은 헌법이 오직 하원에만 부여한 권한인데, 이를 법원의 판단에 맡기는 건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빙엄 의원은 탄핵이 공공의 질서에 위협이 아니며, 오히려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헌법이 마련한 장치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민주당은 탄핵이 폭력 사태로 이어질 거다, 반대로 공화당은 폭력 사태는 막을 수 있으며, 헌법을 무시한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 주말 내내 맞섭니다. 그리고 월요일, 하원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을 탄핵했습니다.
폭력 사태와 같은 직접적인 후폭풍은 없었습니다. 루이빌의 지역지 데일리 쿠리어는 “유혈사태 없이 문제가 해결됐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필라델피아 포스트는 “의회가 없었다면, 또 한 번 전쟁을 치러야 했을 것”이라며 의회의 결단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군대를 동원하고 총포를 주고받는 대신 두 정당은 변호사들을 대거 고용해 탄핵 관련 소송을 벌였습니다. 소송이 이어지면서 시민들 사이의 이견은 의회 안에서의 논쟁으로 이어졌고, 각 정파끼리 벌이는 정쟁도 의회에서 정해진 절차를 통해 이뤄졌습니다.
바로 이 점이 탄핵이라는 제도와 절차가 지닌 가장 소중한 가치일지도 모릅니다. 오늘날엔 보통 탄핵 사유를 두고 헌법을 어겼는지 그 해석에 논쟁의 초점이 맞춰지곤 하지만 말이죠. 탄핵이 있을 때마다 대개는 지지하는 정당이나 소속 정당에 따라 더 좋아하는 결과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특정 사건이나 항목에 관해서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는 너무 좁은 시각입니다. 탄핵이란 대통령이 법치의 원칙을 잘 지켰는지,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진 않는지, 더 많은 사람의 복리를 희생하면서까지 자신의 사익을 추구하지는 않는지를 두고 내린 결론에 따라 대통령을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입니다. 선거에서 뽑힌 대통령에겐 임기가 보장돼 있지만, 위의 요건에 해당돼 대통령이 임기를 채운다면 오히려 공화국에 위협이 될 때 의회가 발동할 수 있는 제도로 보장된 권한이 탄핵소추권입니다.
1868년 미국 의회는 탄핵이란 제도를 처음 시행해보면서 이런 점들을 고민했습니다. 이어 1974년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탄핵하려 했을 때도 비슷한 토론이 있었죠. 지금 우리가 마주한 질문도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일어난 일은 사실 헌법이 부여한 책임을 오랫동안 방기한 의회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취임 일성으로 한 서약을 수도 없이 어기고 헌법 알기를 우습게 여겼는데, 그걸 견제하고 제동을 걸라고 헌법이 부여한 권한과 제도를 의회는 제대로 쓰지 못했습니다. 트럼프가 백악관에서 지내는 하루하루가 우리 모두에겐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오직 자기밖에 모르는 어린애 같은 치기에 지지자들을 대책 없이 선동함으로써 온 나라에 끼치는 해악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의회는 지금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트럼프를 제거하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앞으로 어떤 대통령이라도 이런 식으로 행동해선 안 된다는 본보기를 분명히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탄핵은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는 헌법이 정한 제도이자, 폭도들이 자행한 폭력에 맞서 법치의 원칙에 따라 가할 수 있는 최고의 방책이 될 겁니다. 또한, 감정에 휩싸여 저지른 일을 미국이라는 나라가 정한 가장 중요한 원칙에 따라 처리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트럼프는 사실상 스스로 자기를 고소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내뱉은 말 하나하나가 두고두고 트럼프를 옥죌 겁니다. 1년 전에는 상원이 트럼프가 얼마나 헌법 위에 군림하려는 위험한 대통령인지 보지 못했다면, 그래서 하원이 통과시킨 탄핵안을 부결했다면, 오늘은 똑똑히 봤을 겁니다. 자신들이 일하는 의사당이 폭력으로 얼룩진 마당에 그 폭력을 선동한 트럼프에게 잘못이 없다고 하진 못할 겁니다.
트럼프는 반드시 탄핵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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