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uasion, 야샤 멍크(Yascha Mounk))
코로나19 백신은 누구부터 맞아야 할까?
이 질문은 쉬운 질문이 아니다. 여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측면이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도덕철학자들끼리도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다. 나 역시 윤리학과 정치철학을 연구하는 사람이지만, 내게 이런 결정을 내려야 할 의무가 없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도덕철학자들이 오랫동안 합의해온 기본 원칙들은 존재한다.
첫 번째 원칙은 평등을 위해 모든 이의 삶의 수준을 낮추는 것을 일컫는 ‘하향 평준화(leveling down)’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굶주리는데 다른 누군가는 배가 불러 더 먹지 못하는 상황은 분명 공평하지 않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을 굶주리게 만들어 불공평을 해소하는 것은 더 확실한 잘못이다. 두 번째 원칙은 의료 자원을 분배하면서 인종이나 민족과 같은 귀속적 특성(ascriptive characteristics)을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피부색을 바탕으로 어떤 환자를 다른 환자보다 우선 치료하는 일을 대부분 철학자는 – 물론 보통 미국인들 또한 – 반대할 것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지금 이 두 가지 원칙을 사회 정의의 이름으로 위반하고 있다.
CDC는 “사회 정의”의 이름으로 노인들보다 필수 노동자에게 먼저 백신을 맞혀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 권고는 자신들이 제시한 모델에서조차도 더 많은 사망자를 낳는 결정이며, 내가 지금까지 본 공공기관의 결정 중 가장 도덕적으로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수많은 비판이 일자 그들은 권고를 수정했다. 물론 수정된 권고는 이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앞서 말한 두 가지 원칙을 위반하고 있으며 그 결과 죽을 필요가 없는 수많은 이들이 사망할 가능성이 아직도 남아있다.
미국의 각 주가 앞으로 CDC의 권고를 따를지 말지를 결정할 것이므로, 백신의 공정한 분배를 둘러싼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또한, 지난 며칠 동안의 이 싸움은 지난 수년간 미국이 보여준 가장 우려스러운 문제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 것임을 알 수 있다. 바로 진보 진영의 중요한 철학적 원칙에 대한 공격을 대학 캠퍼스가 아니라 국가의 가장 중요하고 힘 있는 기관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그 결과 때문에 CDC와 뉴욕타임스 같은 기관을 신뢰하기 점점 더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지난 11월 23일, CDC의 전염병 전문가인 캐슬린 둘링은 백신 순서를 정하기 위한 미국 예방접종 자문위원회(ACIP)에서 이렇게 발표했다. 거의 모든 선진국의 접종 순서와 다르게, 둘링은 비록 노인들이 코로나로 사망할 가능성이 더 높음에도 불구하고, 은행원이나 영화 촬영 스태프, 교사, 마트 계산원에 이르는 다양한 직종의 8700만 필수 직업군이 노인들보다 백신을 먼저 맞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위원회는 이 권고를 만장일치로 받아들였다.
둘링은 그 발표에서 8700만 명의 “필수 노동자”와 65세 이상의 노인 중 누가 먼저 백신을 맞아야 하는지를 실현 가능성, 과학, 윤리의 세 가지 기준으로 비교했다. CDC의 자체 평가에 따르면, 실현 가능성에서 노인은 더 높은 점수를 얻었다. 이는 누가 필수 노동자인지를 결정하는 것과 이들 필수 노동자에게 백신을 접종시키는 것이 모두 간단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당연하다. 나이를 기준으로 백신을 맞히는 것은 훨씬 간단한 일이다. 곧, 실현 가능성에서 노인은 필수노동자보다 더 앞선다.
“과학”의 측면에서도 결과는 동일하다. 그 발표에서 인정하는 것처럼 코로나로 인한 사망률은 나이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CDC의 모델에서, 필수노동자들이 노인보다 먼저 백신을 맞을 경우 전체 사망자는 0.5%에서 6.5%까지 올라간다. 이는 수천 명의 미국인이 불필요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발표는 과학의 기준에서 노인이 더 중요하다고 결론짓지 않았다. 캐슬린 둘링은 필수 노동자를 먼저 접종할 경우 수천 명이 더 사망하는 “미세한(minimal)”차이가 있다는, 내가 지금까지 공문서에서 본 문장 중 가장 황당한 표현을 썼다.
이를 통해 둘링은 자신이 원하는 결론을 “윤리” 기준에서 이끌어낸다. 그는 붉은 글씨로 이 부분을 강조했다. “65세 이상에서 소수 인종이나 소수 민족의 비율은 더 줄어든다.” 이는 미국의 노인들이 주로 백인이므로, 백신을 먼저 맞혀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이를 바탕으로 위원회는 필수 노동자에는 다양한 인종 그룹이 속했다는 점에서 노인들보다 세 배 높은 점수를 주었고, 전체 결론을 바꾸었다. 이 결론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사망한다는 사실이 윤리적 기준에서 노인들에게 가점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위원회가 이런 권고문 초안을 발표한 이후 어떤 역학자나 보건 담당자도 이들의 논리나 결론을 비판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제이넵 투펙치(Zeynep Tufecki), 매트 이글레시아스(Matt Yglesias), 네이트 실버(Nate Silver)와 같은 언론인들이 이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물론 나도 이들과 의견을 같이한다.)
우리는 당연히 어떠한 소수 민족도 그들의 인종 때문에 백신 접종에서 제외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하지만 23살의 라틴계 우버 운전사가 그저 피부가 조금 더 짙다는 사실 때문에 백신을 먼저 맞아야 하며 코로나로 사망할 확률이 훨씬 높은 80세의 은퇴자 백인이 피부가 조금 더 하얗다는 사실 때문에 백신을 나중에 맞게 되는 것은 미국의 공공기관이 어이없는 방식으로 인종차별을 자행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현실은 더 황당하다. 나이대에 따른 백인의 비율이 그 정도로 큰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나이에 따라 코로나로 고생하는 비율의 차이는 매우 크다. 필수노동자에게 백신을 먼저 맞힐 경우 전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백신 접종률은 높아질지 몰라도 젊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필수 노동자가 나이 든 아프리카계 미국인보다 먼저 백신을 맞게 됨으로써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사망자 수도 더 늘어나게 된다.
곧 CDC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백신 접종률을 아주 조금 더 높이기 위해 최종적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사망자 수가 늘어나는 방법을 권고한 셈이다. 평등의 이름으로 필수 노동자를 우선시하면서 “하향 평준화 금지”의 원칙을 대놓고 위반한 결과 모든 인종 그룹에서 더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게 되었다.
권고문에 대한 비판이 나올 때도 대부분의 역학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사람들의 비판은 무시할 수준을 넘어섰다. 이미 만장일치로 결론 난 내용에 마지막 도장을 찍기 위해 모인 위원회는 논쟁을 피하고자 마지막 순간 권고문을 바꾸었다. 이제 그들은 좀 더 복잡한 순서를 만들었다. 우선 의료진이 먼저 백신을 맞고, 74세 이상 노인과 필수 일선 노동자(essential frontline workers)가 그다음 순서로 같이 백신을 맞으며, 그다음 64세 이상의 노인과 나머지 필수 노동자가 백신을 맞는 것이다.
지금까지 코로나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74세 이상이었기 때문에 이 권고는 분명히 더 나아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두 가지 이유에서 여전히 이들은 사회 정의의 제단에 사람들의 목숨을 바치고 있다. 우선 74세 이상의 노인들이 필수 일선 노동자들과 같이 백신을 맞게 되면서 이들의 접종 시기는 충분히 늦춰지고, 더 많은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 둘째, 65~74세 노인들은 이들보다 코로나로 인한 위험도가 훨씬 낮은 3천만 명의 필수 일선 노동자가 백신을 다 맞은 다음에야 백신을 맞게 된다.
이 새로운 권고에서 노인들의 우선순위를 낮추는 것이 얼마나 많은 사망자를 만들어내게 될까? CDC는 그 숫자를 말하지 않았다. 새로운 발표 자료에서 둘링은 여전히 그 차이가 나이를 기준으로 한 방법보다 “미세한” 정도로 더 많은 사망자를 낼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번 자료에서는 구체적인 숫자를 말하지 않았다. 지난 20일, 11대1의 다수결로 통과한 권고문에는 이들의 권고문을 따를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망할지에 대한 예측이 빠져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미국의 대학가에서는 종종 전국 뉴스에 올라올 사건들이 벌어졌다. 특정한 학생 집단이 유명인의 강연을 막거나 행사를 보이콧할 때 사람들은 이들의 행동을 그저 가볍게 비웃었다. “대학의 운동가들은 늘 그렇지 뭐.” “이들이 실제 세상에 영향을 미칠 리는 없어.”
하지만 그런 생각이 커다란 실수였음이 이제는 명백해졌다. 대학에서 시작된 그런 운동은 이제 구글에서 CDC에 이르는 주요 기업과 기관을 장악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무언가가 사회정의의 이름으로 주장되면 그것이 아무리 황당한 것이라도 다수의 전문가가 여기에 반대하기를 두려워하게 됐다는 점이다. 바로 수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윤리적”이라는 이유로 더 사망하게 만든 이번 권고문이 그런 사실을 보여준다.
누가 백신을 먼저 맞아야 하는지에 대한 미국의 이런 어설픈 접근은 무엇보다도 소위 과도한 ‘깨어 있음(wokeness)’이 큰 문제가 아니며 사회적으로 중요한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이제는 버려야 함을 알게 해준다. 하지만 내가 이 사태를 통해 더 뼈아프게 느끼게 된 사실은 따로 있다.
기본적으로, 나는 사람들의 선의와 지성을 믿으며 여러 중요 기관을 신뢰한다. 사회적 신뢰가 급격히 낮아지고 있으며 정부 또한 점점 더 불신의 대상이 된 이 시기에도 나는 핵심 기관들은 최선의 결정을 내리고 있으리라 믿으려 애썼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신문에서 하는 말이나 국가의 보건을 책임지는 단체의 의견은 그대로 믿을 수 있다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점점 더 그러한 믿음을 잃어가고 있다. 나는 여전히 주요 신문에 기사를 쓰는 언론인과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 대부분이 각자 자신의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들은 분명 선의를 가지고 일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세상에 대한 이들의 이야기를, 내가 직접 그 사건을 조사하지 않고는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이번 CDC의 권고문을 주류 언론들이 어떻게 보도했는지는 내가 이러한 불신을 가지게 된 이유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어, 뉴욕타임스는 CDC가 마지막 순간 그들의 권고문을 바꾸게 된 배경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뉴욕타임스를 신뢰하는 독자들은 한 정부의 중요 기관이 사람들의 거센 비판을 받기 전까지는 자신들의 심하게 반진보적(illiberal)이고 위험한 이데올로기를 위해 수천 명의 미국인을 희생시키려 했다는 사실을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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