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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자본주의, 더 나은 회복을 위하여 (1/2)

(포린 어페어스, Mariana Mazzuc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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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 정부는 3조 달러(3,250조 원)가 넘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금융 시스템에 쏟아부었습니다. 신용경색을 막고 세계 경제가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실제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실물 경제 대신에 금융 부문에 대부분의 자금을 투입했습니다. 각국 정부는 위기에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대형 투자은행을 구제했고, 경제가 회복되자 정부 지원으로 살아남은 금융기관들이 회복의 과실을 누렸습니다. 납세자인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나아진 점이 없었죠. 위기 이전과 다를 바 없이 부실하고, 불평등이 만연한, 탄소배출이 심각한 경제가 이어졌습니다. “위기는 곧 좋은 기회”라는 정책 분야의 유명한 격언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교훈은 지난 금융위기에서는 전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기회가 왔습니다. 많은 국가가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과 경제봉쇄 조치로 휘청이는 바로 지금입니다. 각국은 바이러스로 인한 보건 위기와 뒤를 이은 경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경기부양책을 내놓았고, 바이러스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규정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위해 자금을 투입했습니다. 이러한 조치가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시장 실패와 위기에 대한 최후의 보루로서 돈을 뿌리는 개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정부는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시장 실패를 해결하고 바람직한 시장을 적극적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아쉽게도 세계는 이미 2008년에 좋은 기회를 한번 놓쳤습니다. 그러나 다른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맞닥뜨린 위기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단순히 경제 성장을 북돋는 것을 넘을 수 있습니다. 각국은 성장의 방향을 적절히 조정해 더 나은 경제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기업을 도와주는 대신에, 공익을 추구하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을 조건으로 구제금융을 시행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에 대한 보편적인 접근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탄소 배출을 줄이지 않거나 조세회피처에서 세금을 회피하는 기업들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정부는 위험을 사회화했지만, 보상은 사유화했습니다. 국민은 난장판을 정리하는 데 세금을 냈지만, 정작 위기가 끝나면 보상은 대기업과 투자자에게 돌아갔습니다. 수많은 기업은 어려움에 부닥쳐 필요할 때만 정부의 도움을 요청하고, 정작 문제가 해결되고 호황이 찾아오면 정부는 뒤로 빠지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는 새로운 방식으로 위기에 대응해 그동안의 불균형을 바로잡을 좋은 기회입니다. 기업에 구제금융을 대가로 공익을 위한 활동을 요구하고, 전통적으로 민간 기업들만 누렸던 성공의 열매를 국민들과 함께 나눠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정부가 게임의 규칙을 바꾸지 않은 채 목전의 위기만 해결하는 데 급급하다면, 위기 뒤에 찾아오는 성장은 포용적이지도 않고,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장기적인 성장 기회를 추구하는 기업들에 도움이 되지도 않습니다. 정부의 개입은 헛된 낭비로 끝나고, 이번에 놓친 기회가 새로운 위기를 부채질할 것입니다.

 

 

녹슨 시스템

선진국은 코로나 팬데믹 전부터 경제 구조의 문제에 시달려 왔습니다. 우선, 금융 자본이 금융 부문 내에서만 돌면서 장기 성장의 기반을 잠식했습니다. 금융 회사가 얻은 이익이 인프라, 혁신 생태계 등 생산적인 부문에 투입되지 않고, 은행, 보험사, 부동산 등 금융 부문에 재투자된 것이죠. 예를 들어, 영국의 모든 은행이 대출한 금액 중 10%만이 비금융 부문에 투자됐고, 나머지 90%는 부동산과 금융자산으로 쏠렸습니다. 선진국에서 1970년 전체 대출의 35%를 차지했던 부동산 대출은 2007년 60%까지 상승했습니다. 최근의 금융시스템은 부채를 늘리고, 투기적 버블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거품이 터지면 은행과 금융기관들은 정부의 구제금융만 쳐다보게 되겠죠.

두 번째 문제는 다수의 대기업이 단기 수익에 급급해 중장기 투자를 등한시하는 것입니다. 분기 수익과 주가에 매몰된 최고경영자와 이사진은 자사주를 매입해 주가를 끌어올리며 주주에게 보상했고, 자신들의 급여이기도 한 스톡옵션의 가치를 높였습니다. 지난 10년간, 포천이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은 3조 달러(3,300조 원)가 넘는 자사주를 매입했습니다. 자사주 매입이 늘어나면서 임금, 근로자 훈련, 연구개발 투자로 돌아갈 몫이 줄어들었습니다.

정부가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도 뼈아픕니다. 뻔히 보이는 시장실패가 나타난 뒤에야 정부가 개입했고, 정책은 너무 늦은 데다가 부실했습니다. 정부가 사회의 가치를 공동으로 창출하는 파트너가 아니라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단순한 해결사 역할을 할 때, 공공의 적극적 자금 지원은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 프로그램, 교육, 보건의료 전 분야에서 자금이 부족한 상황이 나타났습니다.

 

위태로운 공공-민간 관계

이러한 실패가 겹치면서 결국 경제적, 전 지구적 대위기를 불러왔습니다. 금융위기는 부동산과 금융권에 대한 과도한 신용 유입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실물 경제를 부양하고 지속가능 성장 부문에 투입돼야 하는 자본이 자산 버블과 가계 부채를 부풀리는 쪽으로만 쏠렸기 때문입니다. 반면,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장기 투자가 부진했기 때문에 지구 온난화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UN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UN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은 기후위기를 되돌릴 수 있는 시간이 10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경고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미국 정부는 주로 화석연료 기업에 연간 200억 달러(22조 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EU의 보조금은 연간 약 650억 달러(72조 원)나 됩니다. 정책 당국은 기껏해야 탄소세나 녹색투자 실명제와 같은 인센티브나 만지작거릴 뿐, 10년 내 들이닥칠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해 꼭 필요한 화석연료 금지조치는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는 이런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팬데믹 기간 전 세계는 온통 발등에 떨어진 보건 위기를 해결하기 급급했고, 앞으로 들이닥칠 기후위기와 금융위기에는 신경 쓰지 못했습니다. 경제봉쇄 조치에 따라 비정규직 프리랜서의 서비스로 이뤄지는, 이른바 “임시직 경제(gig eonomy)” 분야의 노동자들이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들 중 대다수는 예금은 물론, 직장 의료보험, 병가 등 고용 혜택을 받지 못한 채 고난의 시기를 버텨야 합니다. 더불어 지난 2008년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이었던 기업 부채는 늘어나기만 합니다. 팬데믹으로 급감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들이 막대한 대출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상당수의 기업이 위기를 헤쳐나갈 장기 전략 없이 주주 가치를 위해 단기 이익에 매몰된 경영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한편 팬데믹은 공공과 민간의 균형이 심각하게 무너졌다는 것을 드러냈습니다. 미국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은 연간 400억 달러(44조 원)를 연구개발에 지원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도 큰 금액을 쏟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약 회사는 미국 국민들의 세금으로 보조금을 받으면서도, 국민을 위해 적정한 가격의 치료제나 백신을 제공할 의무는 지지 않습니다. 제약회사 길리어드(Gilead)는 7,050만 달러(770억 원)의 연방정부 보조금을 받아 코로나19 치료제인 렘데시비르를 개발했지만, 지난 6월 미국의 환자들에게 약값으로 3,120달러(340만 원)를 받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것은 대형 제약사들의 전형적인 행태입니다. 한 연구는 미국 식품의약국(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이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승인한 210개의 약에 국립보건원의 자금이 지원됐다는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도 미국의 약값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수준입니다. 제약 회사는 특허를 악용해 공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다른 기업들이 피하기 어려운 광범위한 영역에 걸치는 특허를 출원해 경쟁을 제한합니다. 그중 일부 특허는 개발 극초기의 기술에 해당하기 때문에, 연구의 결과뿐만 아니라 연구를 수행하는 도구까지 전적으로 한 기업의 소유로 인정합니다.

 

정부는 오랜 기간 위험을 사회화하고, 보상을 사유화해 왔습니다.

빅테크 기업도 이와 비슷하게 부당한 행태를 보였습니다. 실리콘밸리는 리스크가 큰 기술 개발에 대한 미국 정부의 투자가 이룬 결실입니다. 미국 국립 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은 지금의 구글을 있게 한 검색 알고리즘 개발에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미국 해군은 우버에 없어서는 안 될 GPS 기술 개발을 지원했으며, 미 국방부 산하 국방고등연구기획청(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은 인터넷, 터치스크린, 시리, 그리고 아이폰의 모든 핵심 부품 개발을 후원했습니다. 기술 개발에 세금을 투자했기 때문에 납세자인 미국 국민이 기술 개발의 리스크를 공동으로 부담한 셈이 됩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테크 기업은 이렇게 개발한 기술을 사유화하고 지원받은 세금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지불하지 않았죠. 그러고는 뻔뻔하게도 대중의 사생활 보호를 위한 규제에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실리콘밸리의 민간 기업이 인공지능을 비롯해 수많은 중요한 기술을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러한 경우도 대부분의 원천기술은 높은 리스크를 감수한 공공투자로부터 탄생했습니다. 이에 대한 정부의 합당한 조치가 없다면, 공공 투자에 힘입어 개발하는 기술의 결실이 또다시 민간 기업의 손으로 흘러갈 것입니다. 공공 투자로 개발한 기술은 자금을 댔던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도록 국가가 관리해야 하며, 때에 따라서는 국가가 소유할 필요도 있습니다. 팬데믹으로 학교의 대면 수업이 원격 수업으로 전환됐지만, 전체 학생 중 일부만이 원격수업에 필요한 인터넷과 전자기기를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넷 접근권은 일부 구성원만이 누리는 특권이 아니라, 모두가 정당하게 누리는 권리여야 합니다.

 

가치에 대한 새로운 생각

이 모든 것은 공공과 민간의 바람직한 연계가 실패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입니다.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경제학의 본질적인 문제를 다뤄야 합니다. 바로 가치에 대한 잘못된 개념입니다. 근대 경제학은 한 재화의 가치(value)를 책정된 가격(price)으로 평가합니다. 프랑수아 케네(François Quesnay), 애덤 스미스(Adam Smith),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와 같은 초기 경제학자들이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 견해입니다. 이들은 재화의 본질적인 가치를 가격이 아니라 생산 과정에 근거해 평가했습니다.

현대의 가치 개념은 경제를 구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가치를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조직의 운영, 경제활동 평가, 우선순위 선정, 정부 평가, 국가자산 산정 등이 달라지는 것이죠. 예를 들어, 공교육은 시장에서 가격을 매겨 거래되지 않기 때문에 국가 GDP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교사의 임금에 지불한 금액은 GDP에 반영됩니다. 이 경우 공공 투자가 아니라, 공공 지출이라고 표현하게 됩니다. 2009년 골드만 삭스의 CEO였던 로이드 블랭크페인(Lloyd Blankfein)이 구제금융 100억 달러(11조 원)를 받으면서 주장했던 “골드만삭스 직원들은 세계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다”는 말도 이와 같은 논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가치의 척도가 재화의 가격이라고 가정하면, 골드만삭스 직원 1인당 임금이 세계에서 가장 높기 때문에 생산성이 최고여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죠.

잘못된 현실을 바꾸려면 이 질문에 대한 새로운 답을 내놓아야 합니다. 가치란 무엇일까요? 단순히 기업뿐만 아니라 노동자, 공공기관을 포함한 경제 전반의 다양한 주체들이 투자와 창의성을 창조한다는 인식이 기본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민간 부문이 혁신과 가치 창출의 원천이라고 여겼고, 따라서 혁신에 따른 이익도 당연히 민간 기업이 누려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약품, 인터넷, 나노기술, 원자력, 재생에너지를 비롯한 새로운 혁신은 수많은 노동자, 공공 인프라, 공공기관의 노력과 위험을 무릅쓴 정부의 천문학적 투자에 힘입어 개발됐습니다. 다양한 경제 주체들의 공동 노력이 바탕이 된 만큼, 혁신에 기여한 모든 사람과 기관이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고, 혁신의 경제적 보상을 평등하게 나눠야 합니다. 공공과 민간이 상생하는 파트너십은 가치가 공동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는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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