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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내 도서 검열, 기준은 무엇일까

마이클 타폴라 씨는 수감 중에 읽은 책들이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말합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책 제목은 “불법인간: 한 미등록 이민자의 소견(Illegal: Reflections of an Undocumneted Immigrants)”입니다. 그는 “인간이 누군가가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하나의 행위로 축소되는 과정에 대한 책이었다”며 “밀입국을 했다는 이유로 한 인간이 걷고 말하고 숨쉬는 불법 행위로 취급받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타폴라 씨가 출소한 직후인 2019년 1월, 일리노이 교정 당국은 이 책을 포함한 200여 권의 책을 교도소 내 대학 프로그램의 도서관에서 금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인종적인 의도를 가진” 자료들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전문가들은 미 전역 교정시설에서 자행되고 있는 자의적인 도서 검열의 사례라고 입을 모읍니다. 이와 같은 도서 검열은 수감자들의 교육에 또 하나의 걸림돌로 작용하죠. “수감자들에게 다시 사회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희망과 이유를 주는 책, 참여하고 미래를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자료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일리노이대 어바나샴페인에서 수감자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Education Justice Project)을 운영하고 있는 레베카 긴스버그의 말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비영리단체 펜 아메리카(PEN America)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교도소의 도서 검열은 “미국 역사상 가장 대대적인 금서 정책”입니다. 각 주마다 정책이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규제가 자의적이고 광범위하며 불투명하고 의미있는 검토를 거치지 않는 실정입니다. 일례로 캔자스 주는 경찰의 총에 친구를 잃은 10대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베스트셀러 “당신이 남긴 증오(The Hate U Give)”와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토니 모리슨의 “가장 푸른 눈(The Bluest Eye)”을 교도소 내 금서로 지정하면서, 아돌프 히틀러의 “나의 투쟁”은 허용하고 있죠.  텍사스 교정 당국은 퓰리처 상 수상작인 앨리스 워커의 “컬러 퍼플(Color Purple)”을, 뉴햄프셔 주는 앨리스 시볼드의 “러블리 본즈(The Lovely Bones)”를, 플로리다 주는 아랍어, 일본어, 수화를 배울 수 있는 교재들을 금서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비영리 연구기관 랜드 코퍼레이션(RAND Corporation)의 2013년 보고서에 따르면 감옥에서 받는 교육이 재범 가능성을 낮춘다고 합니다. 교도소 내 교육에 1달러를 쓸 때마다, 납세자들은 교정 시설 유지 비용 5달러를 아낄 수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내용입니다.

펜실베니아 교정국의 정책 책임자인 다이애나 우드사이드는 교도소 내 특정 도서를 금지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라고 설명합니다. “맨손으로 사람 목 조르는 방법 따위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기사가 남성 잡지에 실린 적도 있고, 수갑 풀기와 같이 수감자들을 겨냥한 글을 실은 책들도 있으니까요.” 우드사이드는 도서의 적합성 여부를 판단하는데 크게 두 가지 기준이 있다고 말합니다. “교도소 운영의 안전에 잠재적인 위협이 되는가”와 “음란물을 포함하고 있는가”가 그 기준이죠.

물론 우드사이드 역시 어떤 책들은 이 기준을 명백하게 위반하고 있지만, 애매한 영역이 크다는 점도 인정합니다. 펜실베니아 교정 당국에 골칫거리를 안겨주는 애매한 영역 가운데 하나는 바로 누드를 포함하고 있는 그래픽 노블, 특히 일본 “망가”입니다. “성적인 만족”을 주기 위한 도서들은 금지한다는 것이 원칙이지만 만화의 경우는 애매하다는 것이죠.

레베카 긴스버그는 재소자 교육 프로그램에서 금지된 도서 목록에 인종 문제나 흑인 역사 관련 책들이 많았다고 지적합니다. “대다수 흑인 남성인 재소자들에게 교정 당국이 자신들의 삶에 지속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상기시키는 처사입니다.”  펜 아메리카 역시 교정 당국이 교도소 내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이유로  인종 문제나 사법 정의에 대한 책들을 금지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재소자 교육 프로그램을 직접 이수한 마이클 타폴라 씨의 생각은 다릅니다. 인종 문제나 사법 정의에 대한 책들을 통해 대규모 수감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런 구조에 맞설 방법은 범법이 아니라 특정한 존재로 가능성이 제한된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죠. 출소 이후 타폴라 씨는 시카고 남부에서 청년들을 돕는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미 도서관협회 지적자유국의 책임자인 데보라 캘드웰-스톤은 타폴라 씨의 사연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즉 교도소 내 도서 검열이 단순히 재소자 교육에 걸림돌이 될 뿐 아니라 전과자의 인간성 회복과 사회 복귀에도 방해가 된다는 것이죠.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일리노이 교정 당국은 지난 여름, 재소자 교육 프로그램에서 금지했던 책들을 돌려놓기로 했습니다. 가을에는 교도소 내 도서 검토 정책을 바꾸어, 교도관 개인이 아닌 “중앙화된 위원회”가 도서들을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긍정적인 변화의 사례라고 평가합니다.  우드사이드처럼 교정 당국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보다 명확한 규정과 관련 연수의 기회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규정을 바꾸는 것은 쉽습니다. 정말 어려운 것은 교도소 내 문화를 바꾸는 일이죠.” (N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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