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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본디 배타적인가

포퓰리즘에 기대어 사는 정치인들이 애지중지하는 선 가운데 하나가 우리편과 저쪽편을 가르는 선입니다. 외부인을 타자화하고 필요하면 이들의 위협을 생생하게 묘사해 적(敵)으로 만들어야 우리편을 열광시키고 지지를 받을 수 있다 보니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진화심리학자와 사회심리학자들은 우리편에 속하지 않는 이들 -남, 저쪽편, 경쟁자, 타자, 외부인, 적-을 믿지 못하는 경향이 인간의 뿌리 깊은 본성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이에 관한 고전적인 실험으로 1970년 폴란드 태생의 심리학자 헨리 타즈펠이 한 실험을 들 수 있습니다. 타즈펠은 10대 남학생들이 자신이 속한 ‘우리 집단’에는 소속감과 충성심을, 반대로 ‘상대방 집단’에 대해서는 근거 없는 편견을 무척 빨리 형성한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심지어 우리와 상대방을 나눈 기준이 좋아하는 추상예술가가 누구인지와 같이 상당히 자의적인 기준인데도 그랬습니다. 기준을 조금만 바꾸면 지금 저쪽 편에 속한 사람이 얼마든지 우리편이 될 수도 있었다는 뜻입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도 인종이 같거나 같은 언어를 쓰는 또래 친구들과 더 어울리고 싶어 한다는 최근 연구도 있습니다.

‘우리 집단’에 우호적인 경향이 진화의 산물이라는 주장은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우리 선조들이 다른 부족, 다른 집단과 생존을 위해 경쟁하면서 이런 성향이 자연스럽게 인류의 몸에 뱄다고 설명합니다. (‘우리 집단’에 충성심이 높고 헌신적인 구성원이 많을수록 생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번식에도 유리했을 거라는 설명입니다) 침팬지 사이에서 혈연으로 엮인 사촌과 대가족끼리 편을 이뤄 다른 집단과 영토를 두고 전쟁을 벌인다는 관찰 결과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물론 침팬지의 무리 생활을 토대로 인간의 행동을 유추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실제로 사람들은 다른 집단을 반드시 편견을 가지고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대립하기만 하지 않습니다. 과학자들이 오랫동안 간과해온 희망적인 점도 있죠. 최근 “진화인류학”에 실린 워싱턴주립대학교 앤 파이저와 하버드대학교 마틴 서벡의 연구도 바로 이 부분을 짚어냈습니다. 이들은 다른 영장류와 비교했을 때 인간의 행동은 오히려 너무나 특이하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외부인을 향한 우리의 태도는 상당히 유연한 편입니다. 낯선 것, 다른 것을 인간 만큼 오래 참아내고 기다려주는 동물도 없습니다. 다른 집단의 구성원을 곧바로 공격하지 않을뿐더러 편견 없이 볼 줄 아는 것도 인간만의 특징입니다. 분명 우리의 먼 조상들은 침팬지처럼 무리 지어 상대편과 경쟁하며 필요하면 상대 집단을 공격하고 죽이기도 했을 겁니다.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인간은 다른 영장류, 돌고래, 코끼리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동물(social animals)입니다. 사회적 동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 가운데 하나가 집단을 이뤘다가 또 흩어지고 다른 이들과 다른 기준으로 또 뭉치기를 반복하는 핵분열-융합(fission-fusion)과 같은 사회를 이룬다는 점입니다.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인간의 조상들이 꾸리는 집단의 모습만 보더라도 각양각색입니다. 큰 집단을 이룰 때도 있고, 소규모로 뭉칠 때도 있으며, 집단 간의 경계라는 것도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먹을거리가 풍부한 환경에서는 작은 무리들이 한데 뭉쳐 더 큰 무리를 이뤄 생활하다가 반대로 먹을거리가 부족해지면 다시 소규모 집단으로 나뉘어 각기 다른 곳으로 흩어져 먹을거리를 찾아 나서곤 했습니다. 낯선 이를 대할 때 무조건 적대적이지 않고 평화적으로 섞이는 다른 경우도 얼마든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어느 무리에서 한 명이 정찰을 나서 다른 무리가 어디서 어느 동물을 사냥하거나 먹을거리를 어떻게 조달하는지 살펴보는 행위도 다른 동물은 하지 않는 행위입니다. 이런 정찰 행위는 서로 다른 무리를 다시 합치게 될 때 서로 나쁜 의도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 신뢰의 밑거름이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무리를 합치게 되면 짝짓기할 수 있는 상대방의 풀이 넓어지는 것도 중요한 요인이었을 겁니다.

우리편, 우리 부족에 충성하고 다른 부족과 상대방을 배척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반대로 무리를 이뤄 협력하고 주변 환경을 길들여 함께 번영하는 길을 찾는 사회적 동물의 습성도 분명 진화를 통해 인간이 체득한 본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는 분명히 얽혀 있습니다. 한여름 런던의 공원을 떠올려 봅시다. 모처럼 햇볕이 좋은 날,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부터 책 읽는 사람, 공을 차고 노는 아이들, 유모차에 잠든 아이와 오후의 한때를 즐기는 부모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함께 어울리는 본성이 없다면 나올 수 없는 장면일 겁니다. 물론 따사로운 햇볕이 오랫동안 내리쬘 리 없는 런던의 날씨처럼 함께 있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이 없지 않을 겁니다. 공원이라는 장소 탓에 다른 때보다 ‘나만의 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낮아진 상태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어쨌든 사람들은 좁은 공간에 무척 조밀하게 모였는데도 상황을 즐깁니다.

파이저와 서벡은 인간이 특히 같은 종에게 대단히 관대하고 쉽게 공격하는 대신 참고 견디며 공존하는 법을 익히는 쪽으로 진화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로 파이저와 서벡은 다른 영장류보다 훨씬 더 큰 인간의 뇌와 상대적으로 높은 번식력을 꼽았습니다. 이 두 가지 특징이 합쳐진 결과 인간은 먹을거리를 찾는 대단히 독특한 전략을 개발했습니다. 바로 먹을거리를 포함한 자원이 부족해질 때 다른 집단과 무리를 합침으로써 무리를 유지하는 전략입니다. 다른 어떤 영장류나 사회적 동물도 채택하지 않는 이 전략은 특히 어떤 환경에 처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쓸모있는 전략이었습니다. 파이저는 그래서 인간이 원래 평화를 사랑하는 동물은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지금은 물론이고 예전에도 인간이 싸우는 걸 싫어하거나 평화적인 동물이어서 그런 전략을 개발한 것이 아닙니다. 대신 ‘우리가 가진 자원을 활용해 필요한 식량과 자원을 얻을 수 없을 때’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다른 무리, 다른 부족의 사람들에게 기대며 이들의 낯선 점을 참아내고 협력하는 법을 하나의 전략으로 체화한 겁니다.

파이저와 서벡은 ‘나와 다른 낯선 것을 참아내는’ 인간의 본성을 연구한 만큼 비교 대상으로 관찰하고 연구할 영장류를 고를 때도 서로 싸우고 상대방을 몰살하기도 하는 침팬지 대신 좀 더 서로 돕고 공존하는 영장류를 택했습니다. 그를 통해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유추해보는 편이 더 적절하다고 믿었죠. 이들이 찾아낸 영장류는 난쟁이침팬지로도 불리는 보노보(bonobos)였습니다. 보노보 사회에서도 서로 다른 무리끼리 합치는 일이 일어났고, 서로 식량을 나누거나 털을 다듬어주기도 하는 모습이 관찰됐습니다.

보노보 사회도 다른 무리의 구성원에게 무조건 친절하거나 늘 협력하고 참아냈던 건 아닙니다. 서로 다른 무리가 만나게 되면 다른 무리의 구성원과 갈등도 빚어지고 아예 싸움이 격해져 몇몇은 무리를 이탈해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보노보 사회에서도 인간 사회와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무리를 때로 배척하고 공격하지만, 또 참아주고 협력하기도 하는 유연성이 발견됐습니다.

사람 만큼은 아니더라도 같은 종끼리 서로 돕고 뭉치는 습성은 다른 영장류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타마린 원숭이(Tamarin monkeys)는 서로 다른 무리 출신인데도 집단을 이뤄 식량을 함께 찾았습니다. 개코원숭이(baboons)는 무리의 구성원을 섞지는 않지만, 여러 무리가 한데 뭉쳐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어두운 밤에 포식자들의 습격을 막기 위해 일종의 불침번을 설 땝니다. 그러고 보면 야외에서 캠핑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동떨어진 데 텐트를 치지 않고, 달빛 아래 옹기종기 모여 텐트를 치는 것과 개코원숭이 수백 마리가 밤이면 낭떠러지 근처에 모여 포식자들의 사냥에 대비하고 수상한 낌새가 나타나면 서로 알려주는 경보 체계를 가동하는 것이 비슷한 본성에서 나온 행동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영장류들이 서로 싸우고 공격하는 성향을 볼 때 이를 진화의 산물로 여기듯이 서로 도우며 다른 걸 참아내는 영장류와 인간의 모습을 볼 때도 평화롭게 공존할 때 얻을 수 있던 이득 때문에 그런 습성을 발달시켜온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인간은 지도자의 자질을 평가할 때도 서로 다른 걸 참아내고 포용하며 협력을 이끌어내는 능력을 높이 삽니다. 여러 집단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혹은 인맥이 좋은 사람을 칭하는 ‘well-connected’라는 단어를 생각해봅시다. 이는 당장 먹을거리가 떨어졌는데 우리 부족이 가진 자원으로는 식량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부족의 지도자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을 겁니다.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이런 자질이 지도자의 덕목으로 더 중요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파이저와 서벡은 19세기 북태평양 연안의 원주민 부족인 연안 샐리시(Coast Salish)족에 대한 연구를 근거로 들었습니다. 연안 샐리시족은 근처의 다른 부족과 가장 많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남성을 부족의 지도자로 뽑았습니다. 흔히 사냥에 나서거나 다른 부족과 전투를 벌일 때 가장 필요한 것이 강력한 힘을 지닌 전사일 거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전쟁이 벌어지면 당연히 그렇겠지만, 늘 다른 부족과 싸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롭게 공존하는 시간이 오히려 더 많다 보니 정작 필요한 덕목은 싸움을 잘하는 것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싸울 일을 만들지 않는 능력이었습니다. 전투력 높은 전사보다 유능한 외교관이나 협력할 줄 아는 사람이 지도자로 적합했던 겁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리더십의 유형을 명망을 바탕으로 한 리더십(prestige-based leadership)과 힘을 바탕으로 한 리더십(dominance-oriented leadership)으로 나눴습니다. 전자가 기술이나 전문적인 지식을 나누고 협력함으로써 무리를 이끌어나가는 능력이라면 후자는 힘으로 상대방을 제압하고 두려움을 이용해 다른 이의 위에 군림하며 무리를 이끌어나가는 능력입니다.

파이저와 서벡은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외부 집단과 협력해야 하거나 다름을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것이 특히 중요했을 때일수록 집단 간 협력을 장려하고 강조하는 제도가 생겨난다고 지적합니다. 외부인에게 잘못된 행동을 해선 안 된다는 집단의 내부 규정을 로 들 수 있는데, 외부인을 속일 경우 그에 대한 제재와 처벌을 내부 집단의 규정에 근거해 집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집단과 협력하는 데 방해가 된다면 ‘우리편’의 행동이 결국 우리 집단에 해를 끼친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편에는 무조건 충성을, 경쟁하는 상대편에는 무조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가정한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제도입니다. 오늘날에도 다른 나라와 관계를 훼손할 수 있을 만한 일을 저지른 우리나라 국민을 우리가 직접 제재하고 처벌하기도 합니다.

토마스 홉스는 17세기 인간 사회를 관찰한 뒤, 인간의 자연 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로 묘사했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원래 남을 배척하고 싸우기 좋아하기 때문에 원래 그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 보태졌죠. 역사학자 에리카 로레인 밀람(Erika Lorraine Milam)은 지난해 이온에 쓴 글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추적한다며 인류의 오랜 선조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근거로 들 때 나타나는 문제를 신랄하게 지적했습니다. 그 문제란 바로 대단히 극단적인 사례를 입맛에 맞게 고른 뒤 단순한 결론을 내려버리기 쉽다는 점이었습니다. 인간이 본디 우리편에 더 우호적이고 다른 이들, 남에게는 덜 친절하다는 건 분명 틀린 말이 아닙니다. 때론 끔찍한 폭력을 동원해 경쟁하던 같은 종족을 몰아내기도 했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지 않습니다. 그렇더라도 이번 연구는 우리 인간에게 또 다른 중요한 본성이 있다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바로 나와 다른 것, 우리에게 낯선 것도 참고 견디는 능력, 성향 또한 인간의 본성이라는 점입니다. 이를 통해 인간이 힘을 합치고 협력할 수 있는 대상이 결코 다른 인간 무리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온, Christian Jarr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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