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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를 낳았어요?: 반출생주의(anti-natalism) 철학에 대하여

인도 뭄바이에 사는 27살 남성 라파엘 사무엘 씨가 자신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자신을 세상에 낳았다는 이유로 부모를 고소했다는 뉴스가 많은 논란으로 이어졌습니다.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않은 태아의 동의를 얻을 방법이 사실상 없지만, 어쨌든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이 자신의 선택은 아니었음을 분명히 하고 싶었다는 사무엘 씨의 주장에 터무니없는 억지를 부린다는 비판과 비난의 목소리가 대부분인 가운데 오늘은 반대로 사무엘 씨의 신념으로 보이는 반출생주의(反出生主義, anti-natalism)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반출생주의란 말 그대로 사람이 세상에 나는 것 자체를 반대하고 부정하는 철학으로, 부모라고 해도 자식을 영문도 모르는 채 세상에 나오게 할 권한이 없다는 주장으로 이어집니다. 엉뚱하고 기괴한 철학 같지만, 실제로 유명한 철학자 가운데 진지하게 이런 주장을 편 이들이 있습니다.

아마 가장 유명한 이를 꼽으라면 케이프타운 대학교 철학과의 데이비드 베나타르(David Benatar) 교수일 겁니다. 철학과 학과장이기도 한 베나타르 교수는 지난 2006년에 <나지 않는 편이 나았다: 세상에 존재하게 되는 것의 해로움>이란 제목의 책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베나타르는 스스로 철학자라고 하지만,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해 학교 안에서도 논란이 많은 인물이며, 쿼츠와의 인터뷰에서는 아프리카의 철학을 통째로 무시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2012년 <뉴요커>가 반출생주의를 자세히 다룬 적이 있는데, 이 글도 베나타르 교수의 핵심 논지를 다뤘습니다. 그 논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전으로 물려줄 수 있는 질병을 앓고 있거나 경제적으로 찢어지게 가난하게 사는 부부라면 아이를 낳아도 그 아이가 고통 속에 힘겹게 살아갈 것이 뻔하므로 아이를 낳지 않는 쪽이 낫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부유하거나 유전적인 질병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부부나 연인이라면? 그 아이가 행복하게 자랄 가능성이 더 크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아이를 낳는 것이 도덕적 의무까지는 아닙니다.

베나타르는 이 논리를 아이들이 이 세상에 난 결과 겪게 되는 모든 고통과 행복에 확장해 적용해 봅니다. 그러면 아이가 태어났다면 겪었을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건 부모에게 도덕적인 책임을 물을 일이 아니지만, 반대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겪는 아이들에 대한 책임은 신중하지 못했던, 무책임했던 부모에게 물을 수 있게 됩니다.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겁니다. 뉴요커는 베나타르의 저서에서 다음 구절을 발췌, 인용했습니다.

즉, 내 생각에는 대체로 좋았지만 나쁜 것이 아주 조금 섞여 있는 삶, 대체로 행복했다고 해도 어느 순간에라도 불행하고 끔찍했던 삶이란 결국, 아예 태어나지 않는 것만 못하다.

뉴요커는 지난 2017년 베나타르 교수의 주장을 한 번 더 다뤘는데, 이번에는 삶이 왜 나쁘다고 생각하는지 반출생주의의 근거를 좀 더 다각도로 조명했습니다. 삶은 싫은 일의 연속입니다. 날씨는 너무 덥거나 너무 춥고, 늘 화장실에 가고 싶고, 뭐를 하든 줄 서서 기다려야 하고, 불편하고 거추장스럽거나 화나는 일투성입니다. 베나타르는 우리에게 삶이 얼마나 끔찍한지 억지로 과소평가하는 성향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이 결코 축복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죽음이 손쉬운 해결책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죽음은 나쁜 것이니 태어난 이상 계속 사는 편이 낫다고 베나타르는 주장합니다. 다만 삶이라는 것이 애초에 시작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답하는 거죠. 삶은 나쁘지만, 그렇다고 죽음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애초에 삶과 죽음 가운데 선택하지 않는 편이 가장 좋은데, 그러려면 처음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될 일입니다. 베나타르가 삶의 모든 부분을 부정하고 끔찍하게 여기는 염세주의자도 아닙니다.

삶이 무조건 다 끔찍하고 나쁜 건 아니다. 반대로 죽음도 모든 측면에서 다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삶이든 죽음이든 대체로 핵심적인 부분에서는 끔찍한 일이다. 삶과 죽음 두 가지만 생각하면 우리는 어떻게 해도 고통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인 셈이다.

반출생주의를 극단으로 몰고 가면 인류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결과가 나옵니다. 하지만 베나타르 같은 반출생주의자들은 인류의 멸종을 그리 끔찍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결국, 인간은 소름 끼칠 만큼 끔찍한 존재로, 다른 사람은 물론 자기 자신에게도 끊임없는 고통을 가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반출생주의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에 인간이 끼칠 수 있는 도덕적 영향력을 고민합니다. 자연히 현대 철학에서 가장 근본적인 논쟁 주제 가운데 하나인 비동일성 문제(nonidentity problem)에 봉착하게 됩니다. 비동일성 문제란 힘겹고 고통받는 환경이라도 다음 세대를 태어나게 하는 편이 나은지, 아니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낳지 못할 거라면 태어나지 않게 하는 편이 나은지에 관한 고민입니다. 힘겹게 살아갈 운명의 굴레를 지우기 싫어서 환경이 나아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른 아이를 낳는다면 같은 부모가 낳았더라도 두 존재의 정체성(identity)은 같지 않다고 볼 수 있으므로 비동일성 문제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비동일성 문제에 명쾌한 답을 내리기 어려운 만큼 반출생주의도 그저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치부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우리가 모든 삶은 가치 있는 것이고, 가능한 한 많은 아이가 잠재력을 꽃피우고 삶을 살 수 있도록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면 문제가 해결될까요? 이번에는 무조건 사람을 많이 낳고 보자는 식의 결론에 다다를 겁니다. 이런 무책임한 번식 지상주의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여전히 삶에 가치가 있고, 그 가치를 극대화하는 환경과 제도를 만들어가야 한다면 중간 어느 즘에서 선을 그어야 하는데, 문제는 기준이 될 만한 철학적 원칙이 마땅치 않다는 데 있습니다.

철학자 데렉 파핏(Derek Parfit)은 이른바 당혹스러운 결론(repugnant conclusion)에 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 설명은 스탠포드 백과사전에도 실렸습니다)

인구가 계속 급증해 100억 명이 넘고, 이들이 모두 가치 있는 삶, 수준 높은 삶을 살고 있다고 가정해도 여전히 다른 모든 조건이 같다면 새로 태어나서 삶을 사는 것이 어떻게든 가치 있을 다음 세대의 숫자는 사실상 무한대에 가까울 것이다.

다시 말해 반출생주의를 거부하고 모든 삶은 가치가 있으므로 다음 세대를 낳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주장한다면 어디까지 그 주장이 일리가 있고, 어느 선을 넘어가면 (이제 인구가 너무 많으니) 더는 아이를 낳지 않아야 하는지 기준을 세울 근거가 없습니다.

반출생주의와 비동일성 문제, 당혹스러운 결론 등 여러 주장은 하나같이 논리적으로 일리가 있지만, 그 논리만 따라가다 보면 극단적인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실제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는 부모들이 진지하게 고려하기에는 너무 근본적인 문제이긴 하죠. 다만 “태어나게 해달라고 빈 적도 없는데 왜 나를 세상에 낳아서 이 고생을 하게 만들어!”라며 분노에 차 있는 청소년들은 그런 생각이 실제로 엄연한 철학으로 승화해있다는 점은 알고 반항해도 될 겁니다.

(쿼츠, Olivia Goldh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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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퍼민트에서 주로 세계, 스포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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