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금융 위기를 다룬 영화 “마진 콜(Margin Call)”에서 한 트레이더는 월스트리트의 한 건물 옥상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낭떠러지에 섰을 때 느끼는 감정은 떨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에요. 내가 뛰어내릴까봐 무서운 겁니다.” 자살이라는 개념은 사람들을 매혹시키곤 합니다. 한편으로는 끔찍하지만, 마음 속 가장 어두운 한 구석에서 끌림을 느끼기도 하죠. 자살은 가장 파괴적인 형태의 죽음입니다. 자녀의 자살은 부모에게 최악의 악몽이고 부모의 자살은 자녀에게 평생 갈 상처를 안기죠. 자살이 드러내는 것은 한 개인의 고통 뿐이 아니라 한 사회의 실패입니다. 사회가 어떤 이에게 더 이상 살아가기 힘든 곳이 되었다면, 그것은 구성원 모두의 책임일지도 모르니까요.
미국의 자살율은 2000년 이후 18% 증가했습니다. 이 비극적인 수치에는 정치적인 함의도 있습니다. 증가치가 대부분 경제적 호황에서 소외되고 경제 위기 당시에는 큰 타격을 입은 지역 출신의, 교육 수준이 낮은 중년 백인 남성들 사이에서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자살이라는 증상에 대하여, 어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해답으로 꼽았을지 모릅니다. 간과하고 넘어가서는 안 될 문제죠.
그러나 미국 외에 다른 지역을 보면 희망도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자살율은 2000년 이래 29% 감소했으니까요. 이는 20년 가까운 기간 동안 280만 명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이유를 하나로 추리기는 어렵습니다. 세계 각지 다양한 집단에서 다양한 속도로 자살율이 감소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 집단의 뚜렷한 감소 추세가 눈에 들어옵니다.
첫째는 중국과 인도의 젊은 여성입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청년보다는 노인, 여성보다는 남성들 사이에서 자살이 더 많은 것과는 달리 중국과 인도에서는 젊은 여성들의 자살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는데, 이 수치가 줄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중년 남성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이후 알콜 중독과 자살율이 치솟던 집단이었죠. 세 번째는 세계 전역의 노년층입니다. 노인층의 자살율은 여전히 다른 연령대보다 높지만, 2000년 이래 다른 집단의 자살율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왜 나타나고 있을까요? 도시화와 자유의 확산은 자살율 감소에 기여했습니다. 자살 시도를 했던 사람들이나 자살한 이들의 가족들은 아시아의 젊은 여성들이 남편의 폭력과 시가의 간섭에 절망해 죽음을 택했다고 증언했죠. 사람들이 도시로 이주하고 전통의 속박이 약해지자, 더 많은 여성들이 스스로 결혼 상대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삶의 질 개선으로 이어졌습니다. 제초제나 총과 같이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살 도구들로부터 멀어진 것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회적 안정 역시 하나의 요소입니다.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에 이은 사회적 혼란은 중년층의 수입과 사회적 지위의 붕괴를 가지고 왔죠. 실직자가 자살할 확률은 직장이 있는 사람에 비해 2.5배 가량 높습니다. 2007-8년의 금융 위기 당시에도 미국과 서유럽을 중심으로 자살 건수가 크게 증가한 바 있습니다. 금융 위기가 진정되고 고용률이 올라가면 자살율도 다시 떨어집니다. 노인층의 빈곤율이 감소한 것도 노인층 자살율의 감소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자살율 감소가 거대한 사회적 트렌드에만 기인한 것은 아닙니다. 정책의 역할도 있었죠. 1980년대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주류 생산과 유통을 제한하자 음주와 자살이 급감합니다.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면서 규제도 사라지자 음주와 자살은 다시 증가하죠. 2005년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비슷한 주류 규제책을 재도입하자, 수치는 다시 감소합니다.
자살 도구에 대한 접근을 막는 것도 의외로 효과적입니다. 놀랍게도 자살은 충동적인 경우가 많죠. 자살을 시도했던 젊은 중국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5분의 3은 2시간 이하로, 열 명 중 한 명은 1분 이하로 자살에 대해 생각한 후 실천에 옮겼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1937년부터 1971년 사이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에서 뛰어내렸다가 살아남은 515명의 94%가 1978년까지 살아있었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어떻게든 자살을 한 번 미룰 수만 있다면, 그것이 곧 삶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입니다.
자살 예방을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한국 정부가 2011년 맹독성 제초제 파라콰트의 사용을 금지한 이후, 자살율을 떨어졌지만 농업 생산에는 타격이 없었죠. 치명적인 약품은 소량으로만 구입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무엇보다 효과적인 것은 총에 대한 접근을 막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자살자의 절반이 총기를 사용하며, 미국의 자살율은 총기 규제가 엄격한 영국의 두 배 가량입니다. 국가 간 자살율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큰 요소는 바로 총기 보유율이죠.
언론도 기여할 부분이 있습니다. 자살은 전염성을 갖기 때문이죠. 2014년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사망했을 때, 그 자살 방식과 동기에 관한 언론 보도는 지나치게 자세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후 4개월에 걸쳐 비슷한 방식의 자살이 평균보다 1,800건 이상 더 일어난 것으로 계산했죠. 언론인들은 유명인의 자살과 관련한 비극을 전할 때 엄격한 기준을 따라야 합니다.
고통스러운 불치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처럼 일부의 경우에는 자살이 덜 끔찍한 옵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라면 엄격한 기준에 따라 의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매년 80만에 달하는 자살자 가운데 다수가 너무 성급하게 죽음을 택하고 있습니다. 의료 체계, 노동 시장 정책, 주류 및 총기, 맹독성 물질에 대한 규제가 개선된다면 살릴 수 있는 생명들입니다. 특히 다른 지역과 정반대의 추세를 보이고 있는 미국에서는 보고 느끼는 바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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