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대학교의 대니얼 베스너(Daniel Bessner)가 7월 6일 가디언지에 기고한 글입니다.
조지 소로스(George Soros)의 철학 – 그리고 그의 철학의 치명적 단점(1/3)
소로스는 1979년 충분히 많은 돈을 벌었다고 판단하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자선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개방사회펀드(Open Society Fund)를 창립했고, 개방사회펀드는 곧 다국적 기관으로 발전했습니다. 소로스는 남아프리카에서 아파르트헤이드(apartheid)로 인해 공부하기 어려운 흑인 학생들을 위한 장학재단에도 투자했지만, 그는 주로 공산주의가 만연한 동유럽권 국가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80년대가 끝날 무렵 그는 헝가리, 폴란드, 체코, 불가리아, 그리고 구소련에 재단을 설립하였습니다. 소로스는 공산주의 동유럽 국가들이 폐쇄사회의 전형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소로스는 그가 이 나라를 자본의 힘으로 개방적인 사회로 바꿀 수 있다면, 그는 자본이 어떻게 군사적 개입이나 정치적 전복 없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정치적 억압을 극복할 수 있는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984년 소로스는 헝가리에 첫 해외 재단을 설립하였고, 이 재단의 활동이 이 시기에 그가 했던 활동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후 수십 년 간 그는 헝가리 지식인들에게 장학금을 주었고 그들을 미국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제록스 복사기를 도서관과 학교에 기부하였고 극장, 도서관, 지식인, 예술인, 실험학교 등에 기부금을 전달했습니다. 그의 1990년 저서인 “소련 체제를 개방하기 위하여(Opening the Soviet System)”에서 소로스는 그의 재단이 헝가리에서 문화적, 사회적 활동을 위한 자금을 마련함으로써 독단적 이념의 독점(monopoly of dogma)을 없애는 데 기여했다고 적었습니다. 소로스는 이 활동이 헝가리에서 공산주의를 붕괴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소로스가 독단적 이념이라는 단어를 쓸 때 그는 매우 중요한 두 가지 믿음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첫째, 소로스는 이념과 사상이 경제 체제보다 훨씬 더 시민의 삶을 규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습니다. 둘째, 소로스는 인류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강한 믿음이 있습니다. 소로스에 따르면, 폐쇄사회를 만든 독단적 이념이 강요하는 사고방식이 그 사회가 역사의 흐름을 따라 변화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오히려, 실제 환경이 변함에 따라, 폐쇄사회에 있는 시민들은 설득력을 상실한 독단적 사상을 강제로 따라야 합니다. 이 독단적 이념이 주변 현실과 너무나도 맞지 않게 되었을 때 보통 혁명이 일어납니다. 이와 달래 개방사회는 현실과 이념의 간격이 지나치게 벌어지면 쉽게 방향을 수정할 수 있습니다.
그가 구소련의 붕괴를 지켜보면서, 그는 폐쇄사회가 붕괴하는 이 시점에서 그의 재단의 역할이 무엇인지 깊게 고민했습니다. 구소련의 붕괴 직전 소로스는 그의 책 “소련 체제를 개방하기 위하여(Opening the Soviet System)”의 개정 본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에서 소로스는 재단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합니다. 그는 반공산주의 혁명을 지지하는 영속적인 기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동유럽의 개방사회에 이제 진입한 시민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릴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중앙유럽대학교(Central European University, CEU)가 이 노력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중앙유럽대학교는 부다페스트에 1991년 설립되었습니다. 소로스가 기부한 이 대학교는 새로운 변화의 시기에 있는 유럽을 지원하면서, 새로운 유럽을 이끌 인재를 양성하고자 하였습니다.
소로스는 어떻게 하면 개방사회가 그 개방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마셜 플랜(Marshall Plan)의 시기에 살았습니다. 그는 전후 런던에서 미국의 인도적 지원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이때 지치고 붕괴한 사회는 막대한 해외 지원 없이 재기할 수 없음을 목격했습니다. 해외 지원만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념이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물질적인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소로스는 오직 서방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x Ex Machina, 문학 작품에서 결말을 짓거나 갈등을 풀기 위해 뜬금없는 사건을 일으키는 플롯 장치)”만이 동유럽을 영원히 민주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소로스에 따르면, 전체주의 시스템에서 평생 살아온 사람들은 그들의 열망을 현실화하기 위해 외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소로스는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이 동유럽에 충분한 금전적 지원을 해야 하고, 유럽 시장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며, 문화와 교육 측면에서 서양 및 동양 국가들과 교류를 할 수 있게끔, “다원적 사회(pluralistic society)에 어울리는” 관계를 만들 수 있게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소로스는 동유럽에 다원적 사회의 초석이 다져지면, 서유럽은 동유럽을 아우르는 하나의 범유럽사회를 형성하여 유럽을 장기적으로 안정적으로 통합해야 한다고 공언했습니다.
사람들은 소로스의 선견지명을 대체로 무시했습니다. 1990년대부터 소로스는 동유럽권 국가에 도둑정치(kleptocracy)와 초민족주의(hypernationalism)가 성행하는 이유는 서유럽 국가들이 이 중요한 시기에 명확한 비전과 정치적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995년 소로스는 “민주주의는 가치의 부재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국가들은 자기 자신의 이권이 위협받지 않는 이상 어떠한 고통도 감당할 의지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고 말했습니다.
소로스의 눈에는 서방 국가들이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과업을 이루는데 실패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나아가 이 과정에서 무기력함과 근시안적인 가치관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정치적 의지만 부족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서구의 막대한 자본은 실제로 동유럽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이 자금은 주로 사기업으로 공급되었고 민주주의를 지탱하는데 중요한 기관이나 사람들에게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 자금은 집권당과 반민주주의 세력이 득세하는 데 쓰였습니다. 소로스는 이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간파하고 있었지만, 자본주의의 본질인 이윤추구 행동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훼손하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소로스는 누구보다도 자본주의를 잘 이용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 단점을 알아차리기 어려웠습니다.
냉전 이후 소로스는 세계개방사회를 달성하는데 어떤 국제적 문제가 있는지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남동 아시아 주변 국가들의 화폐가치가 폭락하면서 시작된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이후 소로스는 개방사회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두 가지 위협에 대해서 책을 집필했습니다. 그 두 가지 문제는 초글로벌화(hyperglobalisation)와 시장근본주의(market fundamentalism)입니다. 이 두가지 문제 모두 사회주의 붕괴 이후 세계를 지배하는 사상이 되었습니다.
소로스는 냉전 이후 역사와 세계 금융시장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본인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통제되지 않은 세계자본주의는 세 가지 이유로 개방사회를 제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첫째, 자본은 세금을 피하고자 어디로든 이동하기 때문에 서구 국가에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었어야 할 자금이 결국 해외로 유출되었습니다. 둘째, 전 세계의 채권자들은 별다른 규제 없이 활동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건전하지 않은 투자행위(unsound lending practices)”를 하여 국제 금융시장의 안정성이 떨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현실들이 국내 및 국외에서 불평등을 초래했습니다. 그 결과 소로스는 사람들이 세계 시스템 안에서 공존하지 못하고 좌절하여 시스템에 반대하는 극단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소로스는 대부분의 다른 중도좌파 지식인들보다도 훨씬 이전에 1990년대, 2000년대에 규제 없는 “신경제(new economy)”의 문제점들을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본주의의 이념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면, 미국은 결국 민주주의에 저해가 되는 정책을 실행하고 국내 및 국외의 안정성을 떨어트리리라는 것이라는 것을 다른 진보주의자들보다 더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소로스의 의견에 따르면, 자본주의를 살리는 유일한 방법은 국제 금융 시장을 강력히 규제할 수 있는 “범 세계적 정치 의사결정 기구(global system of political decision-making)”를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1998년부터 소로스는 바로 미국이 이러한 국제 협업에 반대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시기부터 미국은 국제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에 가입하는 것을 거부했고, 대인 지뢰 설치를 금지하는 오타와 협약(Ottawa treaty)에 가입하지 않았으며, 필요하면 일방적인 무역 제재를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소로스는 아직도 미국의 정치인들이 바로 자국의 이익을 위해 민주주의 연합을 이끌어 개방사회를 추구하고 국제적 개방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국제법과 국제기관의 역량을 강화하는데 힘쓸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로스의 기대와는 다르게 미국의 기득권은 점점 국제주의의 형성에 반대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은 다른 국가를 위해 군대를 파견하기를 꺼리기 시작했고,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이 보장되지 않는 국제활동을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로스는 이 현상을 막을 방안을 생각해내지 못했습니다. 소로스의 생각으로는 이 현상은 매우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사고방식이 역사의 흐름에 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소로스는 “태도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정책의 변화가 가능하다”라고 선언하고는 이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초엘리트라는 그의 신분, 그리고 역사는 항상 올바른 방향으로 전진한다는 강한 믿음 때문에 소로스는 국제주의를 이룩하는 데 방해가 되는 이념적 장애물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가디언, Daniel Bessner)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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