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소로스(George Soros)의 철학 – 그리고 그 철학의 치명적 단점(1/3)
2018년 7월 17일  |  By:   |  경제, 세계, 칼럼  |  No Comment

워싱턴 대학교의 대니얼 베스너(Daniel Bessner)가 가디언에 기고한 글입니다.

5월 말, 로잰 바(Roseanne Barr)가 인종차별적인 트위터 발언으로 ABC 네트워크의 TV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바로 그 날, 바는 첼시 클린턴(Chelsea Clinton)이 조지 소로스의 조카와 결혼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로잰 바는 트위터에 “첼시 소로스 클린턴”이라는 표현을 직접 써서 상대방을 자극했습니다. 겉도는 언쟁이 오고 간 후 첼시 클린턴은 로잰 바에게 소로스가 개방사회연구소(Open Society Foundation)를 통해 추진하는 자선 사업을 존경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로잰 바가 한 답변은 최악이었습니다. 그녀는 우파 언론인들이 반복하는 잘못된 주장을 되풀이했습니다.

잘못된 정보를 말한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조지 소로스가 나치고, 그가 유대인 친구 2명을 나치 포로수용소에 집어넣었으며, 그들의 재산을 훔쳤다는 걸 알고 있나요? 하긴,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죠 그렇지않나요 첼시?

몇몇 보수 인사는 바의 트윗을 바로 인용했습니다. 그 중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Donald Trump Jr.)도 있었습니다. 이 사실은 별로 놀랍지 않습니다. 극우파들 사이에서 소로스는 클린턴 가 만큼이나 적이 많습니다. 그의 말투는 특이해서 조롱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전 공화당 의원 한명은 “소로스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 만으로도 정치에 관심이 많은 시민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인다” 라고 까지 언급했습니다. 그는 소로스를 “뒤에 숨어 있는 사악한 사람” 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반유대주의 이미지는 소로스를 오랫동안 괴롭혀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그 이미지는 거의 제임스 본드 영화의 악역 수준으로 악화되었습니다. 소로스는 전 세계에 잘 알려진 재벌이지만 막상 미국을 진보수주의 쓰레기가 넘치는 나라로 만들려고 한다는 브레이트바트(Breitbart)의 지나친 주장에 극단적이지 않은 중도 보수주의자들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소로스는 수많은 비난의 대상이 되지만, 실제로 소로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신기할 만큼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정치적인 논쟁에 무관심한 대부분의 억만장자와는 다르게 소로스는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로스는 민감한 현실의 문제와 떨어진 채 살아가는 일반적인 재벌이 아닌, 사회에 과감한 질문을 제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일관성 있는 사상가입니다. 그는 인종차별, 소득불균형, 미국의 제국주의, 그리고 무너지는 현대 자본주의를 개혁하여 세계를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 리더입니다. 그는 세계 경제 및 자국 경제에서 시장주의 한계, 그리고 미국의 한계가 무엇인지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컨대, 그는 실력주의 문화가 만든 최고의 인재 중 한 명입니다.

소로스가 비난을 받는다는 사실은 그래서 더욱 놀랍습니다. 소로스의 실패는 그의 실패가 아닌, 그가 속한 계층 전체의 실패입니다. 그가 추구하는 세계관의 실패입니다. 소로스가 전후 런던에서 은행원으로 일할 때부터 소로스는 자본주의와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의 필연적 연관성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그의 민주당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사회는 자유로운(하지만 규제가 필요한) 시장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소로스가 믿었던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관계는 틀렸습니다. 냉전 시대가 지나고 지난 몇십 년 간 자본주의는 신뢰, 공감, 그리고 연민과 같은 가치를 와해하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사회는 이러한 가치에 기반해야 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극소수에게 부를 집중하여 이러한 가치들을 훼손합니다.

평온했던 1990년대에 몇몇 사람들은 세계자본주의 유토피아가 곧 도래할 것이고 이 시스템이 세계 역사의 종착지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한 멍청한 상속자가 미국을 이끌면서 그의 가족을 챙기고, 평화롭고 번영한 세계를 위한 “진보적 국제 질서”를 망가트리고 있습니다. 소로스는 극단적인 자본주의의 한계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부유층의 한 사람으로서 소로스는 그가 바라는 세계를 이룩하는데 필요한 근본적인 개혁까지는 할 수 없었습니다. 소로스가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도와준 바로 그 시스템과 세계시민주의는 공존할 수 없습니다.

소로스의 일생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1930년 부다페스트의 중산층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의 원래 이름은 슈바르츠 죄르지(György Schwartz)입니다(그의 아버지는 유대인 탄압을 피하기 위해 1936년 성을 바꿨습니다.) 평화로운 유년기를 보내던 소로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강제로 기독교를 믿었으며 이름을 바꾸고 살았습니다. 이 시기에 헝가리에 살던 전체 유대인중 3분의 2가 사망했지만, 소로스와 그의 가족은 기적적으로 생존했습니다. 공산주의로 돌아선 헝가리에서 답답함을 느낀 소로스는 1947년 영국으로 이주합니다. 소로스는 런던정치경제대학교(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에서 학위를 마쳤으며 그곳에서 오스트리아 출신 칼 포퍼(Karl Popper)를 만납니다. 훗날 칼 포퍼는 소로스의 최고의 대화 상대이자 지적 영감을 주는 인물이 됩니다.

1956년 소로스는 뉴욕으로 와 금융전문가로서의 인생을 시작합니다. 10년 동안 월가에서 여러 직업을 경험한 소로스는 퀀텀펀드(Quantum Fund)를 창립합니다. 퀀텀펀드는 역사적으로 가장 성공한 헤지펀드 중 하나입니다. 퀀텀펀드가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자, 소로스는 전설적인 투자가로서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특히, 1992년 11월 영국 파운드화가 독일 마르크화보다 과대평가 된 점을 이용해 10억 달러 넘게 벌고 영국은행을 파산시킨 사건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소로스는 세계 최고 부자 중 한 명입니다. 그리고 빌 게이츠(Bill Gates)와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와 함께 미국에서 가장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자선사업가입니다. 하지만 게이츠, 저커버그와는 달리 소로스는 학문적 철학(academic philosophy)으로부터 영감을 받아왔습니다. 소로스의 사상가이자 자선사업가로서, 포퍼의 명저 “개방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을 통해 잘 알려진 개방사회라는 개념을 추구하고자 했습니다. 포퍼에 따르면, 개방사회는 이성적인 교류를 보장하는 반면, 폐쇄사회는 시민보다 종교적, 정치적, 혹은 경제적 권위가 우선합니다.

1987년 이후 소로스는 14개의 책을 집필하였고 몇 편의 글을 뉴욕 리뷰 오브 북스(New York Review of Books),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 등에 기고하였습니다. 소로스가 쓴 글들을 보면, 1990년대 왕성하게 활동했던 다른 중도좌파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소로스의 철학 중심에는 국제주의(internationalism)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소로스는 인류의 현재 목표는 국가 중심이 아닌 자유, 평등, 번영과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하나의 전 세계적 공동체를 이룩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는 이러한 전 세계적 개방사회를 만들어야만 기후변화, 핵무기 양산과 같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라리아를 박멸하는 일과 같이 개별적 난제를 하나하나 해결하는데 주력하는 게이츠와는 달리 소로스는 정치와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려고 합니다. 반유대주의와 반이슬람주의, 그리고 외국인 혐오주의를 표방한 우파가 우세한 오늘날 정세에서 그의 이상향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지켜보아야 할 것입니다.

소로스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남은 일생을 노력할 것입니다.

(가디언, Daniel Bass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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