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PR의 연예, 대중문화 블로그 Monkey See에 글을 쓰는 린다 홈즈가 앤서니 보데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뒤 쓴 글입니다.
Enthusiast.
앤서니 보데인은 트위터 프로필의 자기 소개란에 딱 저 한 마디를 적어놓았습니다. (열정으로 가득한 사람, 매사에 열정적인 사람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저 말만큼 보데인을 잘 묘사할 수 있는 말도 없는 것 같습니다.)
셰프이자 음식 평론가, CNN의 대표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인 <미지의 세계(Parts Unknown)>의 진행자이자, 요리 경연 프로그램 <톱 셰프(Top Chef)>의 심사위원이자 늘 열정적이었던 앤서니 보데인이 6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보데인을 세상에 알린 것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레스토랑의 이면을 거침없는 필력으로 낱낱이 파헤친 그의 책 <키친 컨피덴셜>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쉐프>라는 제목으로 다시 묶어 출판) 혼신의 힘을 다해도 하루하루 버티기 쉽지 않을 만큼 고된 노동과 주방에 흐르는 긴장감, 욕설, 마약까지 그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혹은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어느 정도 성역으로 여겨지기도 했던 주방의 모습을 보데인은 솔직하게 그려냈고, 대담하게 폭로했습니다.
보데인이 다른 스타 셰프들과 가장 명백하게 달랐던 점은 자기가 만드는 요리와 자기 이름을 내건 식당의 꿈을 오래전에 접었다는 점입니다. 대신 그는 자기 입에 들어오는 요리와 음식, 문화와 정성에 천착했습니다.
특히 TV쇼에 나오는 보데인의 모습은 호기심이 끊이지 않는, 그야말로 무엇이든 다 궁금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손님으로 북적북적한 식당을 좋아했고, 전 세계 길거리 음식은 무조건 옳다고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저 오늘은 어떤 특이한 음식을 먹어봤다며 남들에게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을 가든 그곳의 사람들이 무엇을 즐겨 먹는지 이해하는 것이 그가 발 딛고 서 있는 곳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사람들이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만큼 좋아하며 자주 찾는 음식을 만드는 이들보다 그 지역과 그곳 사람들을 더 잘 소개해줄 수 있는 이는 없다고 믿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식도를 타고 넘어가 내 뱃속에 저장하는 음식보다 더 소중한 것도 없으며, 서로 나누어 먹고 내 손으로 직접 담아 먹는 음식만큼 하루하루를 지탱해주는 것도 또 없습니다. 지금 내 앞에 놓인 한 끼 식사보다 나라는 사람을 더 잘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이 또 있을까 생각해보면, 마땅히 떠오르는 후보가 없을 겁니다.
보데인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게 정돈된 주방에 카메라를 켜놓고 반들반들한 도마 위에 준비된 재료를 펼쳐놓은 뒤 과카몰레를 어떻게 만들면 좋다거나 집에서 먹을 만한 쌀국수를 만드는 법을 떠들지 않았습니다. 대신 보데인은 여행 전문 케이블 채널에서 그의 음식 프로를 시작했고, 이어 CNN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여행 채널이든 뉴스 전문 채널이든 처음에는 ‘난데없이 왠 음식 쇼람?’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이내 보데인이기에, 보데인이 진행하는 음식 프로이기에 그 채널에 더없이 잘 맞는다는 사실이 밝혀졌죠. 보데인은 전 세계를 여행하며 그곳 사람들을 만나 그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같이 먹고 소개하기에 TV쇼 진행자만큼 좋은 타이틀이 없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어디서 어떤 비법을 전수받고, 어떤 레시피를 익혀와 다시 식당을 열고 더 큰 성공을 거두겠다는 욕심은 전혀 없었죠. 매년 새로 세상을 배워가며 세상의 먹을거리와 문화, 사람들을 익혀가는 것 자체로도 그는 충분한 동력을 얻었습니다. 그는 또 그가 방문한 곳의 사람들이 처한 상황이 어떻든지간에 절대 그들을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분명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는데도 화면에는 동정이나 연민보다는 정당한 존중과 배려의 시선이 흐른 겁니다.
뉴스 전문 채널이자 특히 국제 관계와 전 세계 곳곳의 분쟁 소식을 발빠르게 보도하는 것으로 유명한 CNN에서 우리는 사실 함께 손을 잡고 어울려 지낼 수 있는 인류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기에 <미지의 세계> 만한 프로그램이 또 있었을까요? 우리가 가본 적도 없는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도 사람이 살고 있고, 그 사람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울고 웃으며 매일 맛있는 것을 해 먹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직접 보여주는 것만큼 우리 안에 자리 잡은 막연한 편견을 걷어치우는 데 요긴한 것이 또 있을까요?
그렇다고 보데인을 새로운 것이라면 무조건 환영하고 좋은 말만 해주는 부드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입니다. 실제로 <톱 셰프>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한 보데인은 180도 다른, 엄격하기 그지없는 최고의 심사위원이었습니다. 그는 재기 넘치며 창의적인 심사평을 내놓곤 했는데, 한번은 바닷가재 요리가 잘못돼 식감이 영 마음에 들지 않자 이를 “인형 머리를 씹는 맛”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솔직히 우리 가운데 인형 머리를 먹어본 사람이 있을 리 없으니 정확히 그 맛이 무슨 맛인지 아는 사람이 있을 리 없지만, 사람들은 너도나도 보데인이 가려운 곳을 긁어주기라도 한 듯한 반응을 내놓았습니다. 아마도 (요리가 잘못된 탓에) 뻑뻑하고 어딘가 모르게 굳어 있으며, 가재다운 식감은 전혀 느낄 수 없는 맛을 표현하기에는 알맞은 단어 선택이었던 것이죠.
그는 실로 열정으로 가득한, 진짜 “Enthusiast”였습니다. 보데인의 열정은 그저 물불 안 가리고 외쳐대는 거칠고 노골적인 열정이라기보다 세심하면서도 세상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호기심에 바탕을 둔 마음에 더 가깝습니다. 더 많이 보고, 듣고, 이야기하며 배우고, 더 많이 직접 맛을 보고 함께 걸으며 직접 미지의 세계를 밟아보며 그곳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 그 정도를 보데인은 단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보데인이 1999년 <뉴요커>에 처음으로 쓴 칼럼 “외식하러 가시기 전에 이 글은 꼭 읽고 가세요”는 우리에게도 너무 잘 알려진 칼럼입니다. 고급 레스토랑의 주방이 얼마나 주먹구구로 돌아가며 위생적으로, 도덕적으로, 또 요리 자체에 관해서도 문제투성인지, 인격적으로 결함투성이 셰프는 또 얼마나 많고 약에 취해있는 이는 또 얼마나 많은지, 심지어 보데인 자신도 그런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까지 그는 거침이 없었습니다. 거침없는 문체와 날카로운 필력으로 레스토랑의 이면을 낱낱이 들춰내는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올라버린 보데인이 이내 행보를 바꿔 호기심의 대명사로 자리를 잡을 줄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존의 레스토랑 사업의 비슷한 문제를 들춰내는 작가 대신 희망과 연대를 찾아 끝없이 여행하고 호기심을 채워가는 열정 가득한 여행자가 됐습니다. 난생처음 가보는, 그곳 말은 한마디도 할 수 없는 곳에서 사람들이 맛있다고 알려주는 집을 어찌어찌 찾아가 그 가게 주인이 말아주는 국수 한 그릇에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일단 덮어놓고 비난하고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보다 끝없이 궁금해하고 감사할 줄 아는 태도를 갖춰야 합니다. 보데인이 그랬습니다. 지금껏 수많은 곳을 다녔지만, 오늘 만나는 사람과 오늘 먹게 될 음식에서 또 새로운 무언가를 배울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에 그는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탐험과 여행의 길 위에 있었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보데인을 떠올릴 때마다 가장 먼저 그리워질 것은 이토록 한없이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그의 자세일 겁니다. 때로는 독설에 가까운 혹평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였습니다. 자신도 인정했던 부분이죠. 하지만 세상을 향한 그의 시선은 단 한 번도 부정적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대신 오늘 그가 겪을 세상의 한 단면은 또 어떤 맛을 알려주고, 어떤 사람들과 부대끼며 어떤 삶의 교훈을 전해줄지 그는 늘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겪었던 사람, 음식, 맛, 문화는 어김없이 글과 화면, 그의 묘사와 설명으로 우리에게 전해졌죠. 우리 모두가 더불어 사는 데 꼭 필요한 그 교훈을 저는 잊지 않을 겁니다.
(NPR, Linda Hol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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