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성을 신뢰하는가? 아일랜드의 국민 투표가 던지고 있는 질문입니다. 예 또는 아니오로 나누어진 공론의 장에 중간 입장이 끼어들 자리는 없습니다. 오늘 아침 어머니는 “기분이 어떠니?”라고 말을 걸어오셨습니다. 희망과 저항, 분노를 느낀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여전히 제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는 큰 감정은 공포였죠. 제가 “낙태”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것은 일곱 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1992년은 이른바 “X의 사건”이 전국을 강타한 해였습니다. 아일랜드 사람이라면 뉴스를 접하지 않을 길이 없었죠. 어린 아이가 강간을 당해 임신을 했지만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임신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던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계기로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 몸이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이유로 교회와 국가의 통제 하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곤경에 처하고 싶지 않다면 아주 아주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그 후로 수 년이 흘렀습니다. 저는 “성스러운 남성들”이 주도하여 운영한 “매그덜린 세탁소(아일랜드 정부가 미혼모들을 강제 수용하고 노동력을 착취했던 기관을 일컫는 말-역주)”와 1980년대까지도 행해졌던 결합절개술(골반의 연골이나 인대, 뼈를 잘라내어 분만에 필요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수술로,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서 20세기 중반 이후 금지되었으나 가톨릭교의 영향으로 제왕절개술을 기피하는 아일랜드에서는 80년대까지 시행됨-역주)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여성을 억압해 온 것은 바로 그 “성스러운 남성들”이었죠. 여성들에게 수치심을 주입하고 어머니, 할머니의 트라우마까지 지고 살도록 강요한 이들입니다. 강간을 당해도 여성의 잘못, 임신 중에 위급한 상황이 발생해도 여성의 잘못이었죠. 이제 더 이상 국가가 여성을 감금하는 일은 없지만, 억압은 다른 방식으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너무나 날카로워서 온 몸의 피가 다 빠져나가도 죽기 직전까지는 눈치 챌 수 없는 덫과도 같은 억압이죠. 하지만 우리 여성들은 투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가 되어 낙태 금지 헌법조항 폐지를 외쳤고, 앞으로도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낙태 합법화 운동은 길고 힘든 길이었습니다. 잘못된 정보와 자극적인 이미지로 가득찬 낙태 반대 포스터들은 충격과 공포를 자아내기 위한 도구로, 아무리 보아도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격한 토론의 나날들 속에서 강간 피해자와 위급 상황에도 수술을 받을 수 없었던 커플들, 용감하게 자기 경험을 털어놓으면서도 경멸의 시선을 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는 매일 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나의 조국은 왜 이렇게 여성을 미워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함께 캠페인을 진행하며 온 몸을 바친 동료들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자긍심을 느꼈죠. 해외에 살다가 투표를 하기 위해 돌아온 사람들, 이번 국민투표가 일생에 한 번 뿐인 기회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로 자랑스러웠습니다. 전 세계 여성들의 연대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특히 이 문제가 아일랜드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고 목소리에 힘을 실어준 영국의 자매들은 큰 힘이 되었습니다. 800년 간 이어진 영국의 압제 속에서 “영국인은 나가라”고 외쳐온 아일랜드지만, 아일랜드 여성들이 정작 절박한 상황에 처했을 때 친절한 도움을 구할 수 있던 곳이 바로 영국이었죠.
“폐지 찬성” 배지를 단 동지들을 길에서 만나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서로 쑥스러운 듯 눈을 맞추며 미소를 보내곤 했죠. 거리 유세에서 만난 10대들의 열정은 제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었고, 이들에게는 감사하는 마음 뿐입니다.
초기에는 폐지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도 공감 능력을 발휘해보려고 애썼습니다. 아일랜드 국민들을 향해 수 십 년간 집중적으로 퍼부어진 메시지, 낙태는 잘못된 것이며 살인이라는 메시지에 길들여진 것일 뿐이라고 저 자신을 달랬죠. 하지만 여성을 걸어다니는 자궁 취급하는 사람들을 마주하면서 매번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임신을 중절해야만 내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제발 수술을 해달라고 애원하며 죽어가는 여성이 눈 앞에 있어도 “여기선 안 돼, 아일랜드는 가톨릭 국가야.” 라는 말로 고개를 돌릴 사람들이니까요.
투표를 앞둔 오늘 아침, 저는 몹시 피곤합니다. 내가 과연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문 한 짝이라도 더 두드렸다면, 한 사람이라도 더 붙잡고 이야기를 나눴다면 마음을 돌릴 수 있지 않았을까, 두려운 마음이 앞섭니다. 앞으로 수 개월, 수 년 간 이웃들을 마주하면서도 저 사람은 투표를 했을지, 어느 쪽에 투표를 했을지를 생각하고 있을 저 자신을 상상해봅니다. 결국 이 문제는 우리가 여성들을 믿을 수 있는 존재로 대할 것인지, 아니면 앞으로도 계속 여성의 몸을 전쟁터 취급하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문제니까요.
하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투표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번 투표는 돌이킬 수 없는 분기점이 될 것입니다. 아일랜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1983년에도 낙태는 이루어졌지만, 그것을 입에 올리는 사람이 없었을 뿐이죠. 런던이나 리버풀을 “방문”하고 돌아온 여성들은 입을 굳게 다문 채 속이 썩어들어가도 혼자만의 비밀을 지켜왔습니다.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여성, 그리고 남성들도 자신의 경험을 나누기 시작했죠. 침묵을 거부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우리가 여기에 있다고, 우리를 없는 사람 취급하지 말라고, 이것이 나의 진실이라고요.
적어도 여성이 아일랜드에서 어떤 취급을 당하는지, 권력을 가진 남성들이 어떻게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우리의 섹슈얼리티를 규제해왔는지에 대한 전국적인 논의를 시작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성과로 남을 것입니다. 피임을 거부당하고 수용소로 보내진 여성들, 끔찍한 수술을 받고 평생 후유증에 시달리면서도 적절한 의료 지원을 받지 못했던 여성들, 절박한 심정으로 비행기와 배에 몸을 실었던 여성들에게 이제와 적절한 보상을 할 길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작정 전화를 걸고, 모르는 이의 문을 두드리고, 길을 지나는 행인들에게 홍보물을 건네던 그 모든 순간, 우리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가디언, Louise O’Ne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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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머나먼 얘기지만, 국가 없던 시절에는 법규 교육의 부재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았으리라 짐작해봅니다. 살인, 폭행, 약탈 등 범죄도 많았을테고 지식 혹은 지식 융합, 집단의 시너지효과 등의 부재로 발전도 더디었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국가의 기원이 이러한 문제들만을 해결하기위해 건설적이고 대의적인 취지에서 생긴것이라 믿지 않지만, 제가 믿기론 강한자가 약한자들을 효율적으로 통치하여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함이라고 믿기에(백성을 약탈하고 느끼는 행복과 백성의 삶을 개선해주어 느끼는 성취감 모두 다른 분야의 사리사욕이라 믿기에) 국가라는 것에 대한 맹목적인 호감은 없습니다만 지혜롭고 용감한 국민 백성의 노력으로 국가는 발전을 거듭하여 효과적이고 다수의 행복을 지원해줄 수 있는 시스템으로 개선되고 있다고 믿습니다.
서두가 길었습니다만, 내몸이 내것이 아니라 국가의 것이다 라고 할순 없지만 내몸의 일부는 국가의 혹은 속한 단체에 일정부분 지분이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제 논리회로상 이해가 됩니다.
그럼 이제 내가 속한 단체에 불합리적인 사인이 있다면 결정을 해야겠지요. 내몸의 지분을 더이상 이 단체에 나누어주지 않는다거나(현대사회는 이 부분이 상당히 의지에 의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내 몸의 지분을 갖고있는 소속단체 국가의 의식 혹은 제도 개혁이 이루어져야되지 않을까요
*글의 본문과 다소 거리감이 있지만, 내몸은 온전히 내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에 허탈감을 느끼는 상황에 대한 문득 떠오른 생각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