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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병’은 과학이 아니다.

몸이 아픈 원인을 마음 탓으로 돌리는 건 대단히 오래된 사고 방식입니다. 작가들은 물론 의사들조차 설명하기 어려운 병리 현상을 마음의 병으로 접근하곤 했습니다. 16세기 잉글랜드 튜더 왕조의 궁중 의사들이 남긴 기록에도, 몰리에르가 1673년에 펴낸 책 <상상병 환자>에도 마음의 병을 얻어 곧 몸이 허해지고 앓게 되었다는 설명이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또한, 19세기 신경 병리학자 장마르탱 샤르코와 파리의 살페트리에르 병원에 있던 그의 동료들이 과도 흥분 상태인 ‘히스테리아(hysteria)’를 묘사할 때도 정신적인 스트레스나 심리적인 상처가 발현된 상태라는 식의 설명이 자주 나옵니다. 샤르코의 제자이기도 했던 지그문드 프로이트가 20세기 들어 병이나 질환의 기원을 심리 상태에서 찾으려 했던 건 지금 돌이켜 보면 어떤 면에서 당연했습니다. 소설가 헨리 제임스의 고딕풍, 심미주의 작품에는 마음의 병을 얻어 몸져 누운 인물이 꼭 등장하곤 했습니다. 헨리 제임스의 여동생 알리스 제임스는 실제로 히스테리한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현대로 넘어오면 히스테리아라는 개념은 전환 장애(conversion disorder)라는 이름으로 부활합니다. 소설가 시리 허스트베트가 자신의 증세를 기록한 작품 <덜덜 떠는 여자(2010)>를 보면 심리적 스트레스와 불안함이 어떻게 몸을 해치는지가 자세히 묘사돼 있습니다.

이미 의학적으로는 물론이고 문화적으로도 깊이 뿌리를 내린 듯한 이론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 무모해보일 수도 있지만, 육체적 상태의 원인을 심리적인 데서 찾아 설명하려는 시도는 잘못됐을 뿐 아니라 위험할 수도 있다는 제 연구 결과를 도저히 외면할 수 없습니다. 이른바 ‘마음의 병 이론’은 혼란스러운 아이디어들을 짜깁기한 데 불과하고, 과학적 추론을 거치지 않았으며 방법론부터 근본적으로 잘못됐습니다. ‘과학’이라고 부를 수 없는 엉터리 주장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틈새의 신(God of the gaps)’이 아직까지 명맥을 이어오는 분야라서 더욱 문제이기도 합니다. 틈새의 신이란 아직 인간이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어떤 현상을 가리키며 이거야말로 신이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하는 것을 뜻합니다. 과학이 발전하고 인류가 진보하면서 틈새의 신은 점차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학에 관한 여러 분야에 남아 마술적인 이야기, 허구로 가득한 추론을 펼치며 그 위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이들은 사람이 어떻게 건강을 잃었는지 분석할 때 명백히 잘못된 전제에 기대어 접근합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살아가며 받는 각종 심리적 스트레스 때문에 몸이 아프다는 주장은 주류 언론은 물론이고 의학 학술지에서조차 당연한 통념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심리 상태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고 알려진 질병의 종류만 나열해도 다음과 같습니다. 고혈압, 각종 피부 질환, 편두통, (여성의) 월경 장애, 암, 다발성 경화증, 나병, 라임병, 근통성 뇌척수염, 파킨슨병, 당뇨, 두통, 편두통, 복통, 생식 및 성장에 관한 문제, 위장 기능 악화, 독감과 그냥 감기. 이렇게 다양한 질병이나 몸의 문제가 정말로 심리적, 사회적 스트레스에서 비롯된다는 설명 자체가 과학적으로 의심을 품고도 남을 만합니다.

당장 떠올릴 수 있는 논리적 오류가 하나 있습니다. 원래 인생은 스트레스 받을 일로 가득하다는 점입니다. 영국 정신과 의사 엘리엇 슬레이터는 1965년 이 점을 간파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각종 문제, 불화, 근심, 좌절 같은 일은 원래 삶의 모든 단계마다 비일비재하다. 어딘가 몸이 아프기 시작할 때쯤 그런 근심스러운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두 사건이 관련이 있다고 해석하는 건 많은 경우 지나칠 것이다.”

게다가 삶 전체로 놓고 보면 잘 된 일도 어쨌든 눈앞에서 일어나고 무언가 해야 할 때는 스트레스고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게다가 안 좋았던 일은 더 안 좋게 기억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기억에 전적으로 의존해선 안 됩니다. 특히 안 좋았던 일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연구하는 사람들이라면 가능한 한 최악의 상황을 듣고 싶어 할 겁니다. 편견이 끼어들 여지가 있죠.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기 어려운 병을 앓고 아팠던 환자와 환자 가족들은 자연히 인생에서 으레 겪기 마련인 힘든 일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근심이 병과 어떤 연관이 있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1960년에 발표된 한 연구를 보면, 다운증후군이 있는 아이들의 부모는 엄마가 아이를 임신했을 때 충격을 받은 일이 더 많았다고 보고합니다. 다운증후군은 수정될 때 결정되는 유전 질환으로, 임신 중에 엄마가 어떤 환경에서 지냈는지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1960년에는 이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지기 전으로, 틈새의 신이 관장하던 영역이었죠)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대조집단으로 삼은 건강한 아이들의 부모는 인생에서 겪은 힘겨운 일을 실제보다 축소해 덜 보고하고 자신이 환경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신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점입니다. 반대로 아픈 사람들은 살면서 힘겨웠던 일을 하나하나 꺼내어 곱씹습니다. 이를 관찰하는 연구자들은 이 사람들이 아픈 이유가 저렇게 힘든 일을 겪으면서 마음이 다치고 지쳐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연관을 짓기 십상입니다. 그밖에 그렇게 가정할 만한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데도 말이죠.

심리적인 역경과 질병을 한데 연관 지어 서술한 책들이 최근 들어 특히 많이 나왔습니다. 도나 잭슨 나카자와가 2015년에 쓴 <어린 시절의 그림자(Childhood Disrupted)>가 대표적인 책입니다. 나카자와는 미국 질병예방관리본부가 다른 연구기관과 함께 진행한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낸 이들에 관한 장기 추적 연구 결과를 인용했습니다. 연구 자체는 분명히 좋은 의도로 진행됐을 겁니다. 하지만 이 연구 또한 원인과 결과를 잘못 연결해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듯 심리상태가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거나 마음의 병이 몸을 망가뜨린다는 식의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모호한 주장을 의심없이 받아들입니다. 이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단어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습니다. 스위치(병의 스위치를 켠다/끈다는 의미에서), 블랙박스(우리몸이 정확히 어떻게 반응하고 작동하는지 알 수 없다는 의미에서), 시상하부 뇌하수체 구조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사실 이 단어들은 거의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못합니다. 가벼운 감기부터 암에 이르기까지 심리적 스트레스나 근심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질병을 일으키는지를 꼼꼼하게, 과학적으로 따져 걸러내고 나면 제대로 설명하는 ‘마음의 병’ 이론은 하나도 남지 않습니다.

‘마음의 병’ 이론이 한 발 더 나아가면 특정한 성격은 특정 질병에 취약하다, 어떤 성격을 가진 사람은 어떤 병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식의 주장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특히 위험합니다. 예를 들어 ‘A형 성격(심리학에서 말하는 성격이 급한 사람)’은 심혈관계 질환에 취약하다는 통설이 있습니다. 실제로 명확한 객관적인 기준 대신 주관적으로 대충 묶어낸 A형 성격과 심혈관계 질환 사이에는 거의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또 최근에는 D형 성격 혹은 걱정이 많고 스트레스를 잘 받는 사람이 심혈관계 질환에 취약하다는 연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연구들은 아픈 사람이 아파서 내는 신음과 짜증 같은 ‘부정적인’ 반응을 오히려 병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오도하곤 합니다.

유방암에 걸릴 확률과 연관이 있다고 알려진 성격 가운데는 ‘갈등을 가급적 피하려는 성격’이 있습니다. 사사건건 경쟁하는 것보다는 좋게좋게 일을 처리하는 쪽을 선호하며, 그래서 인간관계도 원만한 여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유방암에 걸린 여성 가운데 늘상 삐딱하고 거침없이 감정을 표현하는 환자가 남을 더 배려하고 어떤 면에서 수동적인 환자보다 생존 기간이 전반적으로 더 길더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앞서 살펴본 A형 성격에 해당하는 여성은 유방암에 걸릴 확률은 낮지만, 심혈관계 질환에 걸려 죽을 확률은 높은데 둘 중 어느 쪽을 택해야 하는 걸까요?

마음의 병 이론은 엉뚱한 원인을 들먹여 정작 미리 검진하고 제때 치료해야 할 질병을 방치하게 되는 부작용이 있을 뿐만 아니라, 병의 원인인 마음을 미리 잘 다스리지 못해 병을 키웠다는 식의 죄책감을 환자에게 심어주는 더 근본적이고 심각한 문제도 있습니다.

여기서 상당히 중요한 의료윤리에 관한 문제도 고민해봐야 합니다. 이렇게 ‘마음의 병’ 이론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도 유방암 환자에게 당신의 생존은 당신의 성격에 달렸다고 말을 해주는 게 옳을까요? 얼마나 말싸움을 많이 하는지, 말을 얼마나 하고 얼마나 참으며 다른 사람과 잘 지내는지 여부에 따라 유방암 완치율이 달라진다는, 의사 스스로도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해주는 게 옳을까요? 마찬가지로 심혈관계 질환을 앓는 환자에게 사실 당신 성격이 A형 혹은 D형이라 원래 심혈관계 질환에 취약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는 말을 해주는 게 윤리적으로 옳은 일일까요? 그 연구가 과학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연구더라도 환자가 그 사실을 알고 나서 할 수 있는 건 자책밖에 없을 텐데, 심지어 연구 자체도 문제가 많다는 걸 알면서는 환자에게 말해서는 안 될 낭설인 겁니다.

몸이 아플 때 그 원인을 마음에서 찾는 건 대단히 그럴듯해 보이는 추론입니다. 하지만 ‘마음을 굳게 먹으면 이겨내지 못할 병은 없다.’, ‘마음이 약해져 몸도 아픈 것’ 같은 주장은 과학적인 증거를 찾을 수 없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라고는 온갖 잘못된 추론들 뿐이고, 아무 잘못도 없는 환자가 엉뚱하게 마음을 잘못 먹은 자기자신을 탓하게 만들 뿐입니다.

(이온, Angela Kenne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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