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과학

스티븐 핑커식 낙관주의의 한계

스티븐 핑커의 “다시 계몽의 시대로(Enlightenment Now)”(이하 ‘계몽’)은 2011년 출간된 그의 “우리 본성 안의 선한 천사”에 이어 우리를 즐겁게 만드는 다른 설득력 있는 이유들을 제시합니다. 다양한 연구 결과와 정부 자료를 바탕으로 그는 건강, 수명, 빈곤의 감소, 소득, 교육, 인권, 평화, 안전 등에 대해 전지구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우리가 인류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아도 된다는 사실을 설득력있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책은 과거의 한 시기를 전제로 삼고 있습니다. 바로 계몽의 시기라 불리는, 핑커의 주장에 의하면 이성, 과학, 인본주의와 진보가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지적 노력의 핵심을 차지했던, 18세기의 한 시기 말입니다. 그는 기후변화 회의주의, ‘가짜뉴스’, 악성 선동 등이 판치는 이 정치적 격변의 시기에 우리가 그 시대의 유산을 다시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주요한 진보가 입헌주의 국가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종교와 정치의 분리는 새로운 사회 모델이 성장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핑커가 계몽의 시기에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변화들 중 상당수는 사실 그 전에 이미 일어난 것들입니다. 크리스 쿠타르나와 내가 공저한 “발견의 시대(Age of Discovery)”에서 우리는 르네상스 시기야말로 천문학자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와 인본주의자 에라스무스에 의해 과학과 인본주의에 더 극적인 진보가 일어난 시기임을 보였습니다. 또한 이 시기 이전에도 중국의 당나라(ad 618-970)나 이슬람의 황금기(750-1260)처럼 급속도로 문명이 발전한 시기가 있습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다른 한 가지는 급격한 진보 이후에는 늘 덜 바람직한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르네상스 이후, 유럽의 선원들이 퍼뜨린 전염병은 아메리카 원주민 수백만 명을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유럽에서는 1490년대 피렌체를 다스린 선동가 지롤라모 사보나롤라와 같은 종교적 극단주의자가 나타나 과학과 다양성에 대한 불관용을 드러냈습니다. 또한 계몽의 시기 이후에 제국주의와 산업혁명이 나타났으며, 이들은 새로운 사상과 과학적 호기심 외에도 노예제도, 인종청소, 노동자 착취, 문화 승리주의 등을 불러왔습니다. 르네상스와 비슷하게, 계몽의 시기 역시 1792-1799년 벌어진 프랑스 혁명 전쟁을 포함한 혼란과 충돌로 끝을 맺었습니다.

이 두 시기는 과학과 근거기반의 사고가 반드시 비이성적 사고와 이데올로기에 대해 승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사회 규범과 윤리는 이성이 승리할 수 있는 사회 구조가 됩니다. 특히 과학의 발전과 사회의 진보는 날줄과 씨줄처럼 얽혀 있어 단순한 시대 구분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비교함으로써 우리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비록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지만 어떤 리듬은 존재하며, 이는 우리가 곤경에 빠졌을 때 이에 대한 해결책을 역사에서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르네상스 시기를 보고 우리에게 닥친 노동의 미래를 예견한 바 있습니다. 계몽의 시대의 철학적, 사회적, 과학적 진보는 핑커가 훌륭하게 주장하는 것처럼 오늘날 이성이 필요한 시대에 여러 교훈을 줍니다. 하지만 맥락이 더 중요합니다.

‘계몽’은 이 새로운 이성의 시대에 도움이 될 과거의 본을 보여주는 듯 하지만, 실제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조금 다른 것입니다. 바로 이 시대 정치적 상황의 특징이며 핑커가 두려워하는, 이성과 전지구적 협력에 기반한 대안을 배제하려는 절망의 논리에 대한 전면적 부정입니다. 그러나 그는 세계화와 경제 성장이 역사상 어떤 힘보다도 더 인류를 진보시켰음을 주장하며 이들을 옹호합니다. 경제학자로서 나도 여기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세계화는 위험을 증폭시킨 면이 있습니다. 개인에게 합리적인 선택이 사회적으로는 점점 더 비합리적인 선택이 되고 있습니다. 진보는 개인의 소득을 증가시키고 서로 연결되게 만들었지만, 과잉의 문제와 시스템적 위험을 불러왔습니다. 세계화의 약점을 관리해야 하는 동시에 해야 하는 일과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일 사이의 간극 또한 넓어지고 있습니다. 경제적 성장은 환경 또한 희생했습니다. 자연은 시장에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코뿔소는 뿔 가격이 올라도 뿔을 더 많이 만들지 않습니다) 자유의 증가는 자연의 과도한 개발로 이어졌습니다. 핑커는 기후변화를 언급하지만, 기후변화가 공유지의 비극이 극적으로 드러난 전지구적 현상이라 말하기보다는 확고한 희망적 미래에 드물게 존재하는 예외적인 문제점으로만 언급합니다.

핑커는 불평등을 다루는데 한 장을 할애합니다. 영국 옥스포드 마틴 스쿨의 경제학자 맥스 로저의 웹사이트인 “데이터로 보는 세계(Our World in Data)”를 활용해 그는 국가간의 불평등은 감소하는 반면 국가내 불평등은 증가하고 있음을 보입니다. 그는 오늘날 사람들이 불평등 문제를 생각하며 가지는 불만인 상위 1%가 경제성장의 과실을 대부분 가져간다는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우선, 그가 사용하는 데이터는 최근의 급격한 경제적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최근의 변화는 몇몇 지역에서는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 몇 달 동안 미국에서 일어난 법인세 인하와 의료비 보조금 삭감은 재분배의 효과를 낮추고 핑커 스스로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불평등을 줄이는데 기여했다고 말하는 경제적 안전망을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둘째로, 그는 실업이 미치는 악영향 –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실업자들의 마약 복용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 이나 로봇과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빼앗아 가고 있는 현실을 간과합니다. 국가 내 불평등은 공동체 정신을 해치는 동시에 극단적인 정치 세력을 키우며, 특히 기술적 변화는 이 두 가지 현상을 모두 야기합니다.

만약 반복적이면서 손재주를 요구하지 않는 모든 업무가 자동화 된다면 – 옥스포드 마틴 스쿨의 연구는 충분히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 행정직이나 콜센터, 제조업에서는 어떤 형태의 고용이 발생하게 될까요? 핑커는 이러한 눈앞의 위험을 너무 낙관적으로 바라봅니다. (물론 그는 인공지능이 인류를 위협하리라는 등의 장기적 위험에 대해서는 우리가 지적, 정치적 비용을 크게 들이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설득력있게 보입니다.) 그는 또한 마이크 마리아타산과 내가 2015년 공저한 “나비 역효과(The Butterfly Defect)”에서 이야기한, 상호연결된 시스템은 서로간의 의존도와 복잡성, 시스템적 위험을 높이게 된다는 문제를 과소평가합니다. 세계화는 전세계를 연결시키면서 수입과 소비를 모두 증가시키지만 위험의 규모 또한 다차원적이며 초국가적으로 만듭니다. 이는 최근 전염병이나 경제위기, 사이버공격 등의 현상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신기술들은 이런 위험의 규모를 극대화 시키는 동시에 개인이나 소집단이 이런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핑커는 사회에서, 그리고 학계 중 인문학 분야에서 과학에 대한 회의주의가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전문가들이 신뢰를 잃게 된 데 대해 짧은 속죄의 말을 전하지만, 사실 최근 몇 번의 사건들은 이런 경향을 정당화합니다. 예를 들어 금융계는 은행과 재무부, 국제통화기금 등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규모가 큰 전문가 시스템이지만, 2008년 금융위기는 이 시스템이 그들의 가장 중요한 역할인 금융 시장의 안정에 적절하지 않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회계 법인들은 부패하거나 망해가는 회사를 재무적으로 건전하다고 보증했습니다. 근거의 부정은 비이성적이지만, 전문가와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 반드시 비이성적인 행동은 아닐 겁니다.

핑커는 인류의 진보에 있어 아이디어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지식인은 진보를 증오한다”는 한 사건을 바탕으로 이를 일반화한 놀라운 주장을 펼칩니다. 여기에 이 책의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낙관주의자를 위한 수많은 근거들이 존재합니다. 이 책은 과학적이고 증거에 기반한 주장을 이야기하지만, 또한 새로운 위험에 대한 수많은 증거들은 제대로 살펴보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냅니다. 나는 이번 세기가 가난이나 인류가 역사적으로 직면해온 다른 수많은 문제들의 측면에서 최고의 세기가 되리라는 핑커의 낙관주의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해수면 상승, 지역 분쟁 증가, 기온 상승, 약에 저항력을 지닌 전염병의 증가, 생물 다양성의 악화, 민주주의의 위기, 공동체 정신의 상실, 정신 건강 장애의 증가, 자원의 고갈 등 우울한 미래를 점치게 만드는 요인 또한 존재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두려운 문제들을 정면으로 맞서는 것과 이를 위한 자신감을 키우는 것을 동시에 해내야 합니다.

‘계몽’은 현재와 미래에 대한 균형잡힌 분석은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이 너무 우울한 많은 이들에게는 충분한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네이처)

원문 보기

veritaholic

View Comments

  • 번역해주시는 글 매번 잘 읽고 있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이 글도 포함하여 종종 원 저자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 글도 원문 보기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만, 글을 읽으면서 함께 누가 쓴 글인지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어제 이 사이트에서 빌게이츠가 이 책을 추천한 글을 읽었는데 그 반대되는 글을 읽게 되니 재미있습니다. 내용도 무척 흥미롭고요. 감사합니다.

Recent Posts

[뉴페@스프] “응원하는 야구팀보다 강한” 지지정당 대물림… 근데 ‘대전환’ 올 수 있다고?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2 일 ago

[뉴페@스프] ‘이건 내 목소리?’ 나도 모를 정도로 감쪽같이 속였는데… 역설적으로 따라온 부작용

* 비상 계엄령 선포와 내란에 이은 탄핵 정국으로 인해 한동안 쉬었던 스브스프리미엄에 쓴 해설 시차발행을…

4 일 ago

살해범 옹호가 “정의 구현”? ‘피 묻은 돈’을 진정 해결하려면…

우리나라 뉴스가 반헌법적인 계엄령을 선포해 내란죄 피의자가 된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는 뉴스로 도배되는 사이 미국에서…

5 일 ago

미국도 네 번뿐이었는데 우리는? 잦은 탄핵이 좋은 건 아니지만…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 투표가 오늘 진행됩니다. 첫 번째 투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집단으로 투표에…

1 주 ago

“부정 선거” 우기던 트럼프가 계엄령이라는 카드는 내쳤던 이유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와 해제 이후 미국 언론도 한국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사태에 큰 관심을 보이고…

2 주 ago

트럼프, 대놓고 겨냥하는데… “오히려 기회, 중국은 계획대로 움직이는 중”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에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안보…

3 주 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