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계가 인종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영화가 인종 문제를 다루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잠시나마 만족했죠. 1962년 케네디 대통령이 신년 연설에서 민권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 해 “앵무새 죽이기”와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나왔습니다. 현실에서는 흑인 운동가들이 민권 운동을 이끌기 시작했지만, 영화계는 고난을 겪는 소수자들을 백인 남성이 구원하는 이야기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백인 구원자” 장르는 그렇게 탄생했죠.
1980~90년대 영화계는 백인 구원자 서사를 남발했습니다. 그 결과 장르는 곧 클리셰로 전락하고 말았죠. 도심의 위험한 학군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백인 교사(프린서펄[1987], 위험한 아이들[1995]), 흑인 운동선수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백인 코치(와일드캣츠[1997], 쿨러닝[1993]), 억울한 누명을 쓴 흑인 고객을 돕는 백인 변호사들(타임투킬[1996], 아미스타드[1997])이 스크린 곳곳에 출몰했습니다.
이 영화들이 모두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지만, 평론가와 영화팬들은 이 영화들이 인종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기 시작했다며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이 영화들은 전혀 다른 평가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영화가 비백인이 백인에게 의지하는 구도를 그려낸다면, 비판하고자 하는 구조를 오히려 강화하는 꼴이라는 것이죠.
평론가들이 백인 구원자 장르에서 등을 돌리자, “셀마(2014)”처럼 비백인이 영웅으로 등장하는 영화나 일상 속의 인종주의를 영리하게 파헤친 “겟아웃(2017)” 같은 영화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히트작으로 평가받는 “히든피겨스(2016)”와 “노예 12년(2013)”에는 유명 배우가 연기한 백인 구원자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주연인 흑인 배우들을 보조하는 역할이죠.
분명 백인 구원자 영화는 점점 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가끔 나오는 작품들은 더 철저한 비평의 대상이 되죠. 작년에는 언뜻 무해해 보이는 “라라랜드” 역시 비평가들로부터 백인이 재즈를 구하는 내용이냐는 비아냥을 받은 끝에 막판 오스카상 경쟁에서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올해 역시 이 장르의 전형적인 작품 두 편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오스카 극본상 수상자인 테일러 셰리던의 감독 데뷔작인 “윈드리버”는 와이오밍주 원주민 보호구역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결국은 두 백인 등장인물이 사건을 해결합니다. 원주민 투니카-빌록시 부족이 부분적으로 투자한 이 영화에는 유명한 원주민 출신 배우들이 등장하지만, 모든 장면에서 백인 등장인물들의 배경 노릇을 면치 못합니다. 결국, 호평에도 불구하고 “윈드리버”는 오스카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죠.
SF 코미디물인 “다운사이징”도 비슷한 운명을 맞이했습니다. 몸 크기를 줄이는 기술을 이용해 윤택한 은퇴 생활을 꿈꾸던 주인공이 베트남 난민 출신의 여성을 만나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이 착취하고 있는 주변부에 눈을 뜨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오스카가 사랑하는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참신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아카데미의 선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윈드리버”와 “다운사이징”은 할리우드에서 백인 아티스트가 백인 관객을 위해 백인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규범이던 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제 그와 같은 과거의 규범은 절실히 필요했던 다양성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죠. 그렇다고 해서 이들 영화가 가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주목받지 못했던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이주노동자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다운사이징”만큼 주목을 받기란 쉽지 않죠. 오늘날 미국에서는 원주민의 존재 자체가 흐려져서, 핍박받는 소수자를 이야기할 때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원주민 캐릭터만으로 화면을 채운 메인스트림 영화는 없었죠. 원주민 장르에서 최고로 꼽는 “라스트 모히칸(1992)”이나 “뉴월드(2005)”에도 주요 등장인물로 백인이 빠지지 않습니다.
이들 영화가 오늘날의 기준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지만, 당시에는 나름대로 지평을 넓히는 역할을 했습니다. 백인 구원자 영화도 인종 문제의 진보에 분명 일조했습니다. 비백인 배우들에게 큰 역할을 맡을 기회를 주기도 했죠. “늑대와 함께 춤을(1990)”은 그러햄 그린의 얼굴을 미국 전역에 알렸고, “헬프(2011)”는 바이올라 데이비스와 옥타비아 스펜서의 배우 인생의 화려한 2막을 마련해주었습니다. 채드윅 보스먼은 “42(2013)”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다운사이징”에서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역할을 맡은 홍 차우 역시 비평가들의 호평을 한몸에 받고 있죠.
백인 구원자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가 상호 배타적인 것은 아닙니다. “다운사이징”이나 “윈드리버”로 촉발된 대화에서 비백인들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려야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인종 갈등의 시대에 백인들은 듣는 귀를 여는 동시에, 자신이 보지 못하는 점과 자신의 편견에 대해 다른 백인들과 이야기를 나눠야 합니다. 영화의 역할은 거기에 있습니다. 이런 영화가 박수받고 상을 받을 필요는 없지만, 계속해서 만들어져야 하고 사람들이 더 봐야 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백인 구원자 영화 자체에 문제는 전혀 없습니다. 할리우드에서 나오는 영화가 그것 뿐이라면 문제지만요.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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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헐리우드영화는 좌빨한국영화계에 비하면 아주 양호한 상황아닌가요? 좌빨한국영화계에서 각 민족을 어떻게 다루는지 한번 볼까요? 동남아나 서남아인들은 병균전염자, 중국인은 범죄자, 일본인이나 미국인은 침략자로 나오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말 특이하게도 북한사람만큼은 착한사람(나쁜역할이더라도 사연이 있는 역할)을 맡습니다. 이런 문제가 논의라도 되는 미국은 상황이 아주 좋은거에요.
한국 좌빨영화계라고 얘기하셨는데 저는 이가 적절치 못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무슨 영화를 얘기로 드셨는지는 정확히 명시되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그 영화에서는 북한의 정치 체제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에 대해서 얘기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것을 좌빨이라고 칭하는 것은 어불성설인 듯 합니다. 아니라면 무슨 영화인지 자세히 얘기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비하면 헐리우드가 낫다고 하셨는데 그 말은 동의합니다. 저희 나라보다는 훨씬 진보적이죠. 하지만 그 사실이 이 글이 비판하는 백인 구원자의 영화 혹은 소수자에 대해 얘기임에도 백인이 큰 역할을 맡는 영화가 좋읕 것이라고 얘기하는 어렵습니다. 우리나라 내에서는 다양한 민족에 대해서 그리고 북한인에 대해서(북한의 정치체제를 숭배하는 영화, 그리고 북한은 무조건적인 악이라고 치부하는 영화 등등)에 대해서 논의를 해야합니다. 또한 헐리우드는 글에서 말했듯이 인종을 포함한 인권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는 게 맞다고 봅니다.
본문 기사가 이코노미스트 꺼 군요, 어쩐지 궤변과 백인옹호로 일관한다 했더니... 기사 행간 사이사이에 비백인들(쟤네들 기준)이 치고 들어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같은게 끼어 있는듯 합니다. 늙은 백인의 넋두리 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