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72시간 만에 저는 완전히 시력을 잃었습니다. 이어 마치 꽁꽁 언 얼음에 갇히기라도 한 듯 손과 발에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시력을 잃기 직전에 저는 정체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돼 극심한 두통을 앓았고, 온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었습니다. 제 몸의 면역 체계는 완전히 망가져 바이러스를 퇴치하려고 멀쩡한 신경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력을 잃고 몸도 움직일 수 없게 됐죠. 마치 온몸이 무색무취한 불에 타버린 것 같았습니다.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게 되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TV 프로듀서였던 제게 시력을 잃는다는 건 단지 가장 중요한 감각을 잃는 것뿐만 아니라, 당장 생계 수단이 사라지는 것과도 같았습니다. 저는 어떻게든 시력을 회복하려고 안간힘을 썼죠. 몇 주가 지난 뒤 다행히 조금이나마 몸을 움직일 수 있었고, 다리와 발끝의 감각을 어느 정도 회복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시력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깼을 때 시력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두 눈을 뜨자 무척 낯설고 초자연적인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처음에는 무척 희미한 빛이 어슴푸레 움직이는 듯한 게 전부였습니다. 여전히 모든 것은 그 어떤 형태도 띠지 않은 채 잿빛 안개 속에 소용돌이치고 있었습니다. 아주 잠깐이지만 이제 내 머리를 휘감은 듯한 숨 막히는 검은 망토가 마침내 걷힌 것 같아 기뻤습니다. 하지만 이내 제가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여전히 하나도 인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점차 검은 선이 하나 보이기 시작하더니 마치 창문이나 문틀처럼 제 시야에 테두리를 두르는 것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였죠. 잿빛 안개처럼 보이던 것은 서서히 뿌연 흙빛으로 변했을 뿐, 여전히 바로 앞에 있는 사물의 형체도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형체는커녕 앞에 있는 사물의 색깔도 분간할 수 없다 보니, 집에서 저를 돌봐주던 가족마저 뼈대는 있지만, 실제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유령처럼 느껴졌습니다. 무엇 하나 제대로 보이는 것이 없다 보니 아이들의 얼굴마저 흐릿한 풍경 너머에 잔뜩 일그러져 있는 듯했습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조차 감을 잡을 수 없을 때가 많았고, 그럴 때마다 심장은 쿵쿵 뛰어댔습니다. 과연 다시 정상적으로 무언가를 감지하고 느낄 수 있을지 갈수록 두려움이 커졌습니다.
집에서 요양하며 휴식을 취하자 아주 조금씩 색깔을 분간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데 색이 희미하게 보이는 대신, 희미하게 들렸습니다. 정말 저로서도 대단히 혼란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대개 지금 어떤 색을 보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는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나무건 가로등이건 눈앞에 보이는 건 뚫어지라 쳐다보며 어떤 색깔인지 맞춰보려 했지만, 감각이 온통 뒤죽박죽된 탓에 도저히 색깔을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붉은색이 먼저 보이는 듯하다가 푸른색과 누런색이 흐릿하게 떠오르고 이내 사라지는 식이었습니다. 특히 초록색, 회색, 그리고 옅은 색이나 흐릿한 색깔은 분간하기 정말 어려웠습니다. 제가 알던 총천연색의 세상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대체로 흑백이었지만, 신기하게도 마치 색깔이 제게 말을 거는 것 같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색깔이 말을 건다기보다 제 감각들이 저는 잘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여러 색깔과 소통하는 것 같았습니다. 색깔에서 소리가 들린다고 주변에 말하고 어떻게든 이 상황을 설명해보려 했지만, 그럴수록 주변 사람들도 더욱 혼란스러워할 뿐이었습니다. 당연히도 감각 기관이 온전히 제 기능을 다 하고 있는 가족에게는 제 말이 그야말로 뚱딴지같은 소리로 들렸을 겁니다. 신경과 전문의에게 제가 겪은 상황을 묘사하자, 의사 선생님은 그런 시각적 혼란이 왜 일어났는지 원인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도 제 감각 체계가 서로 뒤엉켜버린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여전히 주변의 색깔을 인지하고 이를 정보로 처리해 뇌에 신호를 보내고 있긴 했지만, 저는 그 신호 가운데 일부만 받고 있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게 됐지만, 지금껏 구축해 온 여러 색깔에 관한 감정과 기억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회복을 앞당기고자 언어를 소리 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잔디를 보고 “너는 녹색이구나.”라고 말하는 식이었죠. 주변의 사물을 더 열심히 관찰하며 그 색깔을 일러줌으로써 뇌를 자극하면 뇌 속 어딘가 망가진 회로가 다시 연결되고 정상으로 돌아와 마침내 시력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죠. 더 많은 색깔을 저 자신에게 일러줄수록 조금씩 시력도 회복됐습니다.
제가 어떻게 회복해가는지 일지를 써가며 녹음기에 있었던 일을 녹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분간할 수 없는 색깔을 띤 사물을 관찰할 때도 말을 활용해 실험을 했는데, 처음에는 대상을 뚫어질 듯이 바라보며 어떤 색깔일지 추측합니다. 그런 다음 제 추측이 빗나가면, 남편인 에드가 정답을 알려줍니다. 이제 그 사물을 다시 바라보며 마치 처음 보는 물건에 이름표를 붙여주듯 남편이 알려준 색깔을 입 밖으로 꺼내어 스스로 되뇝니다. 그러면 아주 흐릿하게나마 잠시 그 색깔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한번은 남편이 문에 묶어둔 케이블 매듭의 여러 가지 색깔을 되풀이해 들려주자 매듭의 각기 다른 색깔이 눈에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각각의 색깔을 소리 내 들려주지 않으면 저는 그 사물의 색깔을 온전히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 집과 동네는 저만의 시력 회복 연구소가 되었습니다. 제가 겪은 일이 워낙 특이했기 때문에 가끔 저도 제 눈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제 눈은 멀쩡했습니다. 단지 이 모든 사건은 뇌 속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단상성 시신경 척수염. 의사 선생님은 제 병을 그렇게 진단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럽인들 가운데는 10만 명당 한 명꼴로 나타나는 아주 드문 사례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시신경에 염증이 생기는 시신경염 증상으로 앞이 안 보이게 됐습니다. 이 염증이 면역체계를 교란해 몸을 공격하게 한 것으로 보이며, 손과 발의 감각이 사라졌던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저는 특이하고 흥미롭기까지 한 공감각(共感覺)을 갖게 된 겁니다. 저는 이런 현상이 도대체 무엇이며,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는지 하나라도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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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각이란 사람의 서로 다른 감각이 중첩되고 교차하게 하는 생물학적 조건을 일컫는 말입니다. 한 가지 감각을 통해 오는 반응이 다른 감각을 동시에 자극해 형성되는 식이죠. 공감각을 뜻하는 영어 단어 “Synaesthesia”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에서 찾을 수 있는데 ‘함께 느낀다.’라는 뜻입니다. 감각이 한데 뒤엉키는 데는 무척 다양한 층위에서 다양한 원인과 경로를 거칠 수 있습니다. 중첩되는 감각도 여러 가지가 있죠. 하지만 대개 공감각은 타고 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적어도 영국을 기준으로 보면 적게는 전체 인구의 1%에서 많게는 4%까지 공감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러 감각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처음 관찰해 보고한 사람은 지금으로부터 200년도 더 전에 오스트리아에서 의사로 일하던 게오르그 삭스라는 사람인데, 그는 자기 스스로 공감각을 경험한 뒤 이를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그가 1812년 남긴 기록을 보면 어떤 색깔이 특정 숫자나 문자와 연관돼 인식되는지가 아주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19세기를 거치며 색깔을 어떤 대상과 결부시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조금씩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당시에도 이러한 공감각이 뇌에서 비롯된 기제인지, 아니면 눈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제 우리는 이 모든 과정이 오롯이 뇌에서 일어나는 신경 작용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공감각을 지닌 사람이 어떤 숫자와 색깔을 결부시켜 생각하는 것도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공감각을 지닌 사람들은 전화번호 같은 특정 숫자를 기억해내야 할 때 그 번호 자체만 떠올리려 해서는 도무지 기억을 못 해내다가 숫자와 연관된 색깔을 보는 순간 쉽게 번호를 떠올리곤 합니다.
제가 만난 여성 가운데 뜻을 지닌 최소의 문자 단위와 색깔을 결부해 인식하는 공감각을 지닌 재닛(가명)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재닛이 어떤 색깔을 마음속에 생각하면 반드시 특정 문자나 숫자 등이 연동돼 생각이 납니다. 재닛은 알파벳마다 고유한 색깔을 지정해놓고 알파벳을 색으로 인식하는데, 각 글자에는 저마다 다른 성격이 있습니다. 어떤 글자는 슬픔을, 어떤 글자는 기쁨을 나타냅니다.
재닛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세상을 완전히 다른 눈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놀랍게도 어떻게 발견했는지 제게 아주 생생한 예를 들어 설명해주었습니다. 대학교 행정직 직원으로 일하는 재닛은 40대 초반이 되어서야 자신이 남들과 굉장히 다른 감각을 지닌 채 살아왔음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시력을 잃었던 것도 40대 초반의 일이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사무실에서 재닛은 출산이 임박한 동료 직원에 관해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출산과 육아 이야기로 한창 꽃을 피우던 중, 재닛은 아이 이름을 짓는 게 어렵다고 말하며 특히나 남편이나 배우자가 내가 정말 싫어하는 색깔을 포함한 이름을 골라 올 땐 정말 난감하다고 말했습니다. 공감각을 지닌 재닛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었지만, 순간 방안에 정적이 흘렀습니다. 누군가 재닛에게 방금 그 말이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물었습니다.
재닛이 각각 다른 글자마다 거기에 결부된 색깔이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하자, 모든 동료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 말없이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만 갸우뚱할 뿐이었습니다. 이어 재닛이 특히 단어 첫 글자의 색깔은 단어 전체에 좀 더 짙은 색감을 가미하므로 신경을 더 써야 한다고 말하자 동료들은 더욱 당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녀에겐 너무나 명백하고 당연하게 여겨지던 것들이 대부분 사람에게는 완전 비정상으로 취급된다는 것을 그때야 알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그녀가 뭐가 어떻게 다른 건지 거의 알려진 바도 없었죠. 하지만 끝내 그녀도 이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알게 됐습니다. 바로 공감각이었습니다.
공감각을 지닌 채 태어나 감각의 영역이 각각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오히려 모르는 재닛의 경우는 공감각 증세를 보이는 이들 가운데서는 고전적인 사례에 해당합니다. 재닛과 저의 경험 가운데 어떤 부분은 겹치고 어떤 것은 다른지 많은 대화를 나누며 살펴본 결과, 저는 제가 겪은 공감각 증세가 훨씬 독특한 사례에 속하며, 그 성격도 무척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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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은 정말 견디기 힘든 시련이었습니다. 가장 상태가 안 좋았을 때는 걸을 수조차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몇 달이 지나 저는 지팡이를 짚고 간신히 뒤뚱뒤뚱 걸을 수 있었습니다.
하루는 런던 남동부 거리를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돌아다녔습니다. 마치 고무처럼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간신히 움직여 가며 저는 머뭇머뭇 서툰 걸음을 한 걸음씩 내디뎠습니다.
천천히 길을 걷던 남편과 제 앞에 재활용품을 분리수거하는 통이 죽 늘어서 있었습니다. 시력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제 눈에는 무언가 저 앞에 쓰레기통 같은 것이 아주 희뿌연 안개 속에 일그러진 채 서 있는 듯한 모습이 간신히 보일 뿐이었습니다. 형체는 흔들렸지만, 저는 그 물건의 색깔이 파란색인 건 알 수 있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통의 존재를 인지한 순간 저는 비틀거리며 그 통에 얼굴을 가까이 댔습니다. 뚜껑을 뚫어지라 쳐다본 제 눈 앞에 펼쳐진 그 무언가를 묘사하자면, 불꽃놀이 영상 같았다는 말 밖에는 뾰족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분명 파란색으로 인식하긴 했는데, 어쨌든 그 색깔은 쉴새 없이 무언가를 뿜어내며 폭죽처럼 계속 터지는 것 같았습니다. 분리수거통의 표면 전체가 불안정한 거품이 이는 혼란의 소용돌이였습니다. 저는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절뚝이는 다리를 옮겨 분리수거통에 더 가까이 다가가 오른손을 뻗었습니다. 아직도 제가 왜 그 통을 만져봐야만 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저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딱딱한 플라스틱 감촉을 느끼며 “파란색”이라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표면의 이글거림이 멈춰버리고 분리수거통은 평범하고 어딘가 생기 없는 파란색을 띠었습니다. 저는 조심스레 발을 빼 뒷걸음질 쳤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푸른 폭죽이든 푸른 거품이든 아까의 그 이글거림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남편을 향해 돌아서는데, 너무 놀란 나머지 도저히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방금 일어난 일을 도무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재간이 없었습니다.
이런 일이 한 번 있고 말았으면 어쩌다 헛것을 봤겠느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시력이 돌아오는 과정에서 비슷한 일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제가 대상을 만져봤는지 아닌지에 따라 대상이 힘없는 파란색이었다가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파란색으로 변하는 사실도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알아냈습니다.
이번에는 또 다른 어떤 물체가 표면이 이글거릴지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나 이내 재미있는 사실 한 가지를 발견했는데, 물체의 색깔이 파란색일 때만 그런 일이 일어났고, 그 물건이 직접 제 앞에 있을 때만 그랬습니다. 빨간색과 녹색도 가끔 자리를 바꿔가며 깜빡거릴 때가 있긴 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 끝내 알 수 없어 당혹스러웠죠. 하지만 파란색을 제외하면 그 어떤 색깔도 특유의 빛을 내며 폭발적으로 제 눈앞에서 일렁이지는 않았습니다. 파란색 대문, 파란색 주차 표지판, 심지어 사람들이 입은 푸른색 코트에도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습니다. 매번 패턴은 같았습니다. 제가 사물을 인지하고 쳐다보기 시작하면 파란색이 반짝반짝 빛을 내며 이글거리기 시작합니다. 한동안 밝은 파란색이 거품을 내뿜으며 분출하듯 넓게 퍼지다가 익숙한 형태로 빛을 냅니다. 그러다 제가 그 대상을 만지고 나면 이내 이글거리던 것이 차분히 가라앉고, 안정을 되찾으며 조용한 푸른색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다가 제가 발걸음을 떼고 물러서면 이글거림이 다시 시작됐죠.
저와 함께 산책한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집 마당을 휘적휘적 걸어가 대문을 더듬고는 그 집 정원을 향해 “너 파란색이구나”라고 속삭이는 저의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제가 그럴 줄 알고 있었더라도, 지켜보는 이에겐 무척 낯선 행동이었을 겁니다.
저의 회복기 가운데 이런 일이 일어났던 시기를 가리켜 저는 “파랑 시기”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한 그때 제 눈앞에 펼쳐졌던 무언가는 지금껏 다른 누구도 보지 못했던 것들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대단히 감정이 북받치는 시기가 아닐 수 없었는데, 그때 이글거리던 푸른 거품과 폭죽 덕분에 저는 비록 독특하고 낯선 방식이지만 시력이 스스로 회복하고자 분투하고 있음을 알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파랑 시기”를 정확히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뇌가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린 끝에 계속해서 주변의 자극에 반응하고 적응한 결과였다고 보는 게 그나마 가장 신빙성이 높은 설명으로 들립니다. 1년이 지나 저는 몸을 편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됐고, 시력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수준을 회복했습니다. 일상을 되찾은 저는 반드시 제가 겪은 이야기를 알리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물론 여전히 시력이 완전치 않은 탓에 컴퓨터 메모장에 글을 쓸 때 글자 크기를 28로 해야 했지만요. 저는 H69번 환자(Patient H69)라는 가상의 환자를 만들어 제게 일어났던 이야기를 H69번 환자가 겪은 것처럼 그에게 투영해 블로그에 기록했고, 나중에 이 글을 모아 책을 내기로 했습니다. 시력을 잃는 데서 오던 무시무시한 두려움은 이내 의사, 과학자, 그리고 저와 같은 공감각을 지녔던 이들을 만나면서 도대체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궁금한 점을 남김없이 해결하고 싶은 호기심으로 변했습니다. 제 휴대용 녹음기에는 수많은 인터뷰와 대화, 스스로 잊지 않으려고 남겨둔 기억의 조각들이 쌓여갔습니다.
후천적 공감각은 생의 어느 시기든 찾아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보통 강력한 환각제나 환각 성분이 든 버섯, 뇌 손상으로 인해 공감각이 생기기도 하고, 저처럼 시력을 잃었을 때 공감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연구진은 시신경염 환자 가운데 시각과 청각이 뒤죽박죽된 사례 아홉 건을 조사했습니다. 환자들은 다른 소리를 들을 때 각기 다른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고 말했는데, 하얀빛이 깜빡일 때도 있었고, 특정 색깔이 불꽃처럼 이글거리거나 물결 모양으로 굽이치기도 했습니다.
저는 아마도 두 가지 후천적 공감각을 앓았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하나는 색깔과 촉각이 뒤엉킨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색깔과 음성 언어가 뒤엉킨 것입니다. 하지만 저의 사례가 무척 특이한 사례라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전통적인 공감각 사례를 보면 (재닛에게 알파벳이 그랬던 것처럼) 특정한 자극과 그 자극이 불러오는 색깔에 관한 감각 사이에는 소위 이해할 만한 연결 고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색깔을 지칭하는 단어를 소리 내 말하면 그 색깔을 인지할 수 있었습니다. 음성 언어가 연결 고리 역할을 한 것이죠.
대상을 직접 만져보고 촉각을 동원해서 스스로 자극을 주기도 했지만, 이 과정은 원래 거기 있는 대상의 색깔을 확인하기 위한 작업일 뿐, 있지도 않은 색깔을 만들어내 환영을 보는 과정은 아니었습니다.
더 많이 알아갈수록 질문은 더 많이 쌓여 갔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 더 빨리 회복하고자 무의식중에 공감각에 관한 직관을 활용한 걸까요? 색깔에 관한 감각은 제가 시력을 되찾는 데 어떤 도움을 줬을까요? 그렇다면 더 일반적으로 공감각을 활용해 앞을 못 보는 사람들이 앞을 볼 수 있게 하는 방법도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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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몸이 거의 다 회복된 뒤 어느 날, 서섹스대학교의 자일스 해밀턴 플레처 박사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해밀턴 플레처 박사는 공감각과 시력을 잃는 분야를 연구하는 전문가입니다. 그는 영국 공감각 협회 회원이기도 합니다. 영국 공감각 협회는 공감각을 가진 사람과 연구진, 언론을 연결해주는 자선 단체로 이 특이한 현상을 널리 알려 사람들의 이해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단체입니다.
자일스는 저를 런던대학교에서 열린 2017 열린 감각 심포지엄이란 행사에 초대했습니다. 자일스는 제게 붉은색 천으로 된 장비와 헤드폰을 하나 건네며 이 장비가 감각을 변환해주는 장치라고 설명했습니다. 감각 변환 기술이란 말 그대로 한 가지 감각을 다른 감각으로 바꿔주는 기술인데, 대체로 시각을 다른 감각으로 변환합니다. 행사장에 모인 많은 사람 때문에 웅성거림이 심해 자일스는 큰 소리로 제게 장비의 원리를 설명해줬습니다. 이 장비는 시각 장애인이나 시력이 완전하지 않은 이들에게 시각과 비슷한 감각을 일으켜 주변을 인식하는 데 보조장치로 쓰일 수 있습니다. 자일스는 붉은색 천으로 된 장비에 탑재된 센서가 색깔을 직관적인 소리로 바꿔준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해당 장비를 센서 아래에서 이리저리 움직여봤습니다. 그러자 높은 톤의 음이 헤드폰을 통해 흘러나왔습니다. 장비를 센서에 더 가까이 가져가자 더 짧게 끊어치는 음이 흘러나왔습니다. 저는 그 소리의 색깔뿐 아니라 그 색깔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공간 어디쯤 있는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런 장치는 시각 신호를 청각 신호, 즉 소리로 바꿔줍니다. 우리 뇌는 이 소리를 다시 시각 신호로 바꿔 소리를 들음으로써 상황을 볼 수 있게 되는 거죠. 자일스는 공감각과 여러 감각 사이의 관계, 대체, 전환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결국, 공감각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하나의 감각을 다른 감각으로 옮겨 전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니, 자일스의 연구 주제는 모두 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감각 변환 장치는 공감각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이들에게 공감각이 어떤 느낌인지 직접 체험하게 해줄 수 있는 기술을 접목한 장치입니다.
자일스와 동료들은 이런 장치들을 실생활에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지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을지는 특히 기대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서섹스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있는 학부생 다니엘 하자스는 16살 때부터 시력을 잃었습니다. 자일스는 감각 변환 장치를 시험해보고자 시각 장애가 있는 학생을 찾고 있었고, 다니엘은 자일스 해밀턴 플레처라는 연구자의 이름은 물론이고 감각을 바꿔 전달해주는 장치가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들어봤습니다. 다니엘은 크리올(Creole)이라는 장치를 활용하면 앞을 보지 못하는 자신도 색깔이 입혀진 데이터 코드를 볼 수 있고, 그동안 시각장애인에게는 철저히 닫혀 있던 시각적 데이터에도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우주의 마이크로파 배경복사를 포착한 사진을 분석하는 건 물리학에서 아주 중요한 연구입니다. 작은 반점들이 있는 푸른색 구(球)에 나 있는 노랗고 붉은색 가닥을 확인해 분석하는 일이죠. 사진 속 다양한 색깔을 분석하면 빅뱅에서 시작된 우주의 다양한 파동이 어디서 왔고 얼마나 센지 등을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안타깝게도 이를 볼 수 없었죠. 하지만 이제 크리올을 이용해 사진 속 색깔이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크리올은 끝에 센서가 달린 특수펜과 태블릿으로 컴퓨터에 연결돼 있습니다. 컴퓨터 스크린에 마이크로파 배경복사 사진을 띄워놓고 특수펜의 센서를 태블릿에 가져가면 크리올은 센서를 댄 지점의 색깔에 따라 미리 정한 소리를 냅니다. 그런 식으로 색깔을 들려주는 거죠.
특수펜을 이리저리 옮기다 보면 불규칙한 삐 소리가 나기도 하고 손으로 다이얼을 돌리던 옛날 구식 전화기에서 나던 소리와 비슷한 저음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나기도 합니다. 가끔 소리를 입력하느라 잠시 지체될 때도 있지만, 다니엘은 정확하게 색깔을 구분해냈습니다. 애매하게 그림자가 진 색깔도 읽어냈습니다. 예를 들어 각각의 색깔에 맞춘 일곱 가지 기본 소리가 있습니다. 이 가운데 빨간색과 파란색을 뜻하는 두 가지 소리를 섞어서 내면 그는 그 소리를 보라색으로 알아듣는 겁니다. 우리가 팔레트 위에서 물감을 섞을 때와 마찬가지로 다니엘은 섞인 소리를 듣고 원래 소리, 즉 원래 색깔을 유추해 지금 들리는 소리가 어떤 색깔을 나타내는지 알아맞히는 겁니다. 공감각의 원리를 이용해 다니엘은 색깔을 들음으로써,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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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와 색깔의 관계에 집중하는 건 사실 공감각을 지닌 이들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누구나 무의식중에 이를 인지하고 있습니다. 서섹스대학교 연구진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 뇌는 어떤 소리를 특정한 시각 현상과 결부시키기를 좋아합니다. 예를 들어 피아노 건반을 칠 때 음이 높아지면 우리는 자연히 더 밝은색을 띠고 더 뾰족하고 어딘가 높은 데 위치한 시각적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이렇게 음정에 따라 특정 이미지를 결부하는 성향은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의 뇌에서도 똑같이 발견됩니다. 이를 역으로 활용하면 시각장애인에게도 직관과 연상 작용을 활용해 세상을 어느 정도 보여줄 수 있는 겁니다.
자일스와 동료 연구진은 무엇보다 감각 변환 장치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운 사람들은 이러한 공감각적 직관을 훨씬 더 잘 끌어내 활용한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높은음은 밝은색과 연관이 있다는 연상 관계를 감각 변환 장치에 입력하면 장치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이내 이 관계를 익힌다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감각 변환 장치를 쓰다 보면 어떤 소리를 듣고 ‘이 소리라면 저기에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떠올릴 때 그 예측이 갈수록 정확해지는 겁니다.
다니엘과 저는 각자의 방식으로 무의식중에 색깔을 남들과 달리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을 찾아내 이를 좋은 쪽으로 활용했습니다. 우리 둘이 처한 상황이 달랐고, 우리가 택한 전략도 달랐지만, 공감각을 활용해 제한된 시각으로 눈을 열어 세상을 봤다는 점은 같습니다.
이후 몇 년이 더 지났지만, 저는 여전히 몇 가지 색깔을 보지 못하고, 시력도 완벽하게 회복하지는 못했습니다. 아직도 가끔 “파랑 시기”가 떠오르곤 합니다. 온 세상이 온통 푸른 불꽃으로 뒤덮였던, 그야말로 꿈속을 거닌 듯한 몇 주간의 시간을요. 때로 온통 어두침침한 세상을 살았다는 것이 한편으로 으스스하기도 하지만, 분명 마법 같은 측면도 있었습니다. 우선 무엇보다 제가 봤던 것을 본 사람은 지구상에 거의 없을 겁니다. 대부분 공감각을 지닌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를 평생 간직한 채 살아갑니다. 하지만 저는 공감각이라는 게 없다가 아주 강렬하게 제 일상을 지배한 뒤 다시 스멀스멀 사라져갔습니다. 공감각을 느껴보기 전과 후를 잘 알기에 지금 제 눈 앞에 펼쳐지는 자연의 색깔을 볼 때마다 가슴이 저미도록 아프기도 합니다.
저는 이제 분명 색깔 하나하나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정확하게 보곤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아직도 색깔이 제게 말을 건다고 생각합니다. 꼭 시력을 되찾고 회복하리라는 의지가 무의식중에 누구나 가진 공감각 능력을 끌어냈고, 저는 공감각을 지닌 채 그 시기를 살았죠. 과연 그때 나타난 공감각이 시력을 되찾는 데 정확히 얼마나 이바지했는지는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겠죠. 저도 이를 정확히 알 수 없고, 적어도 지금은 과학도 그 답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어둠의 장막에 갇혀 절망하던 제 앞에 짠하고 나타나 장막을 거둬주고 세상을 다시 볼 수 있게 해준 공감각이 마법사 같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시신경을 통해 오는 정보가 온 세상이 캄캄하다고만 알려올 때도 저의 뇌는 제 앞에 있는 사물과 색깔을 인식해야 한다는 걸 알고 제게 이를 보여줄 방법을 찾아냈던 건지도 모릅니다. (모자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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