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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 현존하는 척추동물 가운데 가장 오래 사는 그린란드 상어

요리조리 돌려보고 어떻게 뜯어 봐도 우아하거나 아름다운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녀석. 커다란 몸뚱어리에 어울리지 않게 자라다 만 듯한 가슴지느러미는 차갑고 캄캄한 북극해 깊은 바다에서 천천히 움직여야 하는 환경에 맞춰 적응한 결과라 해도 한눈에 보기에 둔하기 짝이 없는 인상을 줄 뿐입니다. 뭉툭한 코에 커다란 입은 매력 없는 아둔한 인상에 방점을 찍기라도 하는 것 같습니다. 눈가에는 벌레처럼 생긴 것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데, 실제로 오늘의 주인공 그린란드 상어의 각막에 기생하는 벌레입니다. 분류상 돔발상엇과에 속하는 그린란드 상어는 싱싱한 넙치 같은 먹잇감이 있다면 얼마든지 먹어치울 것처럼 생겼습니다. 극히 드문 일이지만, 그물에 걸려 죽은 그린란드 상어 뱃속에서 북극곰의 장기가 발견되기도 했죠. 한때 간에서 추출한 기름이 쓸모가 있어 남획이 자행돼 씨가 마를 지경이었지만, 오늘날은 다른 물고기를 잡으려고 쳐놓은 그물에 우연히 걸리곤 합니다. 한 생물학자의 말에 따르면 어부들 가운데 그린란드 상어가 그물에 우연히 걸리는 날은 개똥을 밟은 날처럼 운수 좋은 날로 여기는 이들도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만 보면 천하에 매력 없는 녀석 같지만, 그린란드 상어는 분명 거부할 수 없는 끌림이 있는 동물이기도 합니다. 먼저 그린란드 상어는 세상에서 가장 큰 포식 상어입니다. 다 자라면 몸길이가 5.5m에 이르는데, 몸집이 크다고 쉽게 찾을 수 있지도 않습니다. 그린란드 상어의 일생은 그야말로 수수께끼 투성인데, 과학자들이 수십 년간 이를 연구해 왔지만, 매번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린란드 상어는 어디서 짝짓기를 할까? 서식 지역이 전 세계 어느 정도까지 분포돼 있으며 개체 수는 얼마나 될까?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많은 궁금증을 자아내는 질문이기도 한, 도대체 얼마나 오래 살까? 이 질문들에 아직 우리는 명확한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1930년대부터 이 종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과학자들은 어렴풋이 그린란드 상어가 상당히 오래 살 수 있으리라는 추정을 하게 됐습니다. 아주 우연히 운 좋게도 과학자들이 같은 상어를 시차를 두고 두 번 잡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상어가 거의 자라지 않았더라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를 바탕으로 이렇게 성장 속도가 느리다면 아마도 다 자랄 때까지 엄청난 시간이 걸리리라고 추정하게 된 겁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내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생물학자들이 다른 상어의 나이를 측정할 때는 지느러미 뼈와 척추에 있는 나이테를 보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그린란드 상어에는 단단한 조직이 없습니다. 척추도 있기는 하지만 상당히 부드러워 나이테를 볼 수 없습니다. 이 동물의 나이를 가늠하는 일은 영원히 미궁 속에 빠지는 듯했습니다.

이 문제를 푸는 데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한 건 덴마크 과학자 세 명이었습니다. 물리학자 얀 하이네마이어와 해양생물학자 욘 플렝 스테펜센, 율리우스 닐센이 그 주인공입니다. 9년 전 하이네마이어는 동료 과학자 네 명과 함께 안구의 수정체에 관한 논문 한 편을 발표합니다. 사람 눈에 있는 단백질 성분을 분석한 논문이었는데, 지구상의 다른 모든 생체분자와 마찬가지로 수정체도 탄소를 함유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는 방사성 동위원소 탄소14도 있습니다. 대개 단백질 성분은 끊임없이 재활용되고 신선한 단백질로 채워지곤 하는 데 반해 수정체의 단백질은 평생 변하지 않습니다. 마치 엄마 뱃속에서 만들어진 뒤 태어나는 순간 동봉한 봉투 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수정체가 동봉한 봉투라면 탄소14는 봉투에 찍힌 소인(消印)입니다. 탄소14는 우주선(cosmic rays)이 지구의 대기에 닿을 때 생성되는 것으로 지구상 어디에나 자연적으로 존재합니다. 20세기 이후 잇단 핵실험으로 탄소14 농도가 인공적으로 짙어지기도 했습니다. 탄소14 농도는 시기에 따라 미세하지만 분명하게 달라서 탄소14 농도를 알면 이를 함유한 물질이나 유기체가 언제 있던 건지 그 연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1950~60년대 강대국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마구 핵실험을 해대던 때는 지구상의 탄소14 농도가 크게 높아집니다. 하이네마이어와 동료 연구진은 시신의 안구에서 표본을 채집, 분석해 죽은 사람의 생년월일을 추적하는 방법을 찾아내 발표했습니다.

당연히 하이네마이어의 연구에는 그린란드 상어의 ‘그’ 자도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수정체를 분석하는 기술이 법의학 분야에서 쓸모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적어두긴 했습니다. 실제로 논문을 발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독일 경찰이 하이네마이어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독일 경찰은 당시 쾰른 근처 벤덴이라는 도시에서 일어난 무척 이례적인 사건을 해결할 만한 실마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한 10대 청소년이 집 냉장고에서 먹을 것을 찾다가 어린 여자아이 세 명의 시신 일부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합니다. 비닐봉지에 둘둘 말아놓은 시신이 얼마나 냉장고에 있던 건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경찰은 신고한 청소년의 엄마를 세 아이를 살해한 용의자로 지목했지만, 용의자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습니다. 시신을 보면 피해자 모두 갓난아기일 때 살해된 것이 분명해 보였지만, 문제는 언제 살인이 일어났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는 데 있었습니다. 하이네마이어가 시신의 안구에서 수정체 표본을 채집해 분석한 결과 피해자 가운데 두 명은 1980년대 후반에 태어나 살해됐고, 세 번째 피해자는 2003~2007년에 태어났다고 분석했습니다. 상당히 자세히 사건이 일어난 시기를 압축한 것입니다. 이 분석이 맞았다면 살인죄에 적용되는 공소시효 20년을 넘지 않은 사건이 있으므로 경찰은 범인을 기소할 수 있게 됩니다. 경찰이 지목한 용의자의 살인 혐의에 관한 증거를 법원도 받아들였고, 결국 범인에게 징역 4년이 선고됐습니다.

2009년 하이네마이어는 또 다른 연구 의뢰를 받습니다.

“상어의 딱딱하지 않은 척추에서도 탄소14를 이용해 연령을 추정하는 것이 가능한가요?”

해양생물학자 스테펜센이 그린란드 지역을 연구차 방문했다가 그린란드 상어의 나이를 둘러싼 미스터리에 맞닥뜨리고 나서 하이네마이어에게 도움을 청한 겁니다. 하이네마이어는 최근 독일에서 미궁에 빠질 뻔했던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일을 언급하며 스테펜센에게 그린란드에 또 갈 일이 있으면 돌아올 때 상어의 안구 수정체 표본을 채집해 와달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상어도 물론 눈에 수정체가 있긴 하지만, 연구에 필요한 만큼 많은 수의 표본을 채집하는 일이 절대 쉽지 않았습니다. 당장 어디에 가야 그린란드 상어가 있는지 서식지도도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스테펜센이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처음 구한 표본은 고작 두 개였습니다. 스테펜센은 젊은 학생들에게 자신이 하는 연구를 설명하며 이런저런 난관에 부딪혔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생물학을 전공하는 학생 가운데 한 명이었던 닐센이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닐센은 앞서 여름방학 그린란드에 있는 그린란드 자연연구소의 연구용 선박에서 보조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그는 일대 저인망어선에 딸려 오는 원치 않는 물고기들을 연구용으로 쓰기에 더없이 좋은 소재라는 생각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이후 5년 동안 코펜하겐대학교에서 생물학 석사와 박사 과정을 밟는 동안 닐센은 연구용 선박과 저인망어선을 보유한 지역 어부들에게 부탁해 우연히 잡힌 그린란드 상어를 볼 때마다 수정체를 모을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마침내 무려 28개의 수정체 표본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닐센과 동료 연구진은 하이네마이어의 분석 기법을 활용해 그린란드 상어의 수정체를 분석한 결과를 지난해 8월 논문으로 발표했습니다. 수정체 표본을 채집한 상어 가운데 몸길이가 2m 남짓으로 가장 작던 상어는 1960년대 이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가장 큰 상어의 출생연도는 당연히 이보다 훨씬 전이겠죠. 수정체의 방사성 동위원소 탄소를 분석하는 방법에 상어의 몸길이와 크기를 나이와 연동해 분석하는 수학 모델을 더해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몸길이가 4.9m에 이르는 한 암컷 그린란드 상어의 나이는 최소한 272살, 많으면 512살일 수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상어가 태어났을 때 시기별, 연도별 바닷속 탄소14 농도를 정확히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지금 분석하는 그린란드 상어가 정확히 바다 어디쯤에서 태어났는지도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나잇대를 가늠하는 분석이 예전보다 훨씬 정확하고 아무리 획기적이라고 해도 여전히 정확한 연도를 짚어내기가 불가능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번 분석만으로 그린란드 상어가 척추동물 가운데 가장 오래 사는 종이라는 사실은 명확해졌습니다. 이론적으로 가장 큰 그린란드 상어의 나이는 600살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장수의 비결이 무엇인지일 겁니다. 과학자들은 계속해서 자연의 생물들에게서 유전적 비결을 찾아내거나 특정 행동의 원리를 분석해 이들의 특별한 능력을 배우려 하고 있습니다. 왜 코끼리들은 거의 암에 걸리지 않는지, 북아메리카 도롱뇽은 어떻게 팔다리나 꼬리가 잘려도 이를 다시 만들어낼 수 있는지 등 자연의 신비의 원리를 분석하려 하는 것이죠. 그린란드 상어의 연령대를 추정한 연구가 맞다면, 콜럼버스 시대 이전에 태어난 상어가 아직 이 지구상에 남아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 됩니다. 워낙 오래 살고 자라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리는 종이다 보니 그린란드 상어는 150살은 되어야 짝짓기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주 찬 바닷속에서 살다 보니 전체적으로 신진대사가 매우 느려서 그런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이 또한 여전히 알려진 것보다 밝혀내야 할 것이 더 많은 미스터리입니다. 닐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도 제가 연구하고 분석한 결과를 알기 쉽게 풀어낼 뿐이죠. 저도 모르는 것투성인걸요.” (뉴요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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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gppoo

뉴스페퍼민트에서 주로 세계, 스포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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