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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와 에너지 원의 확대(3/3)

다섯번째 에너지 시대: 불
태양계의 모든 행성과 위성을 통틀어 지구는 유일하게 불을 가진 천체이다. 이는 불이 존재하기 위해 다음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1) 번개와 같이 처음 불씨를 만드는 현상이 있어야 한다. 지구는 태어날때 부터 번개를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오늘날 번개는 연 14억 번 내려치며 이는 다수의 산불을 만들어내고 있다. 다른 행성에도 번개는 존재하지만, 아래 두 조건을 만족하지 못한다. 2) 불은 산소를 필요로 한다. 지구 대기압의 수준에서 불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산소의 비율이 16% 이상이어야 한다. 지구의 역사 중 상당 기간은 산소의 비율이 이보다 낮았다. 3) 불은 연료를 필요로 한다. 식물이 육지를 덮기 전, 곧 4억 2천만 년 전 이전에는 위의 세 조건이 만족되지 못했다.

불은 등장하자마자 지질학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불은 식물의 진화에 영향을 미쳤으며 흙과 공기의 조성을 바꾸었다. 매년 상당한 양의 생물량이 연기로 바뀌었고 생물다양성은 증가했다. 불은 개미, 벌, 포유류를 통해 초기 속씨 식물이 퍼져나가게 만들었을 수 있다. 특히 불은 지구에 숯, 재, 검댕이라는 새로운 물질을 주었고 지구의 산소 비율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불이 에너지원으로 쓰인 것은 더 최근의 일이며 여기에는 두 단계가 존재한다.

첫단계는 불을 사용하는 생명체가 진화한 것이다. 호모 속의 이들은 불을 스스로 만들 수 있었고 요리에 이를 사용했다. 언제 요리가 시작되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그 시기는 150만년 전에서 40만년 전 사이일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요리가 일종의 소화의 전단계라는 것이다. 인간은 고기, 야채, 지방 등을 조리해 날로 먹는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얻는다. 불을 요리에 사용함으로써 원시 인류는 더 많은 에너지를 얻어내는 법을 찾았고 더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불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한 두 번째 단계는 보다 최근의 일로, 이 역시 특정 시점을 정확히 가리키기는 힘들다. 노동력 절감을 위해 불을 사용하기 시작할 때를 잡아야 할까? 아니면 불이 아니면 만들 수 없었던 철기를 사용하게 된 시점을 생각해야 할까?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를 태워 열과 빛을 얻게 된 때는? 내연기관의 발명은 어떨까? 알프레드 로프카가 새로운 우주적 시대의 시작이라고 칭한 1925년 하버-보슈의 질소 고정법은? 이 중 마지막 세 사건은 특히 중요하며 이들은 모두 지구 또한 변화시켰다. 특히 인간은 이 기술들을 이용해 수많은 인간과 더 많은 수의 가축을 먹일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에리스만과 그의 동료들은 1908년에서 2008년 사이에 공장에서 만들어진 질소 비료는 40억 명의 인류에게 식량을 공급했고 2008년의 경우 질소 비료가 전체 인류 48%의 식량을 책임진다고 말했다. 한편 핌과 그의 동료들은 오늘날 생명체의 멸종 속도는 과거에 비해 1,000 배에 달한다고 말한다. 이는 불의 시대에 전체 생물량은 여전히 높지만 생물다양성은 감소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불의 시대가 지질학에 끼친 영향 역시 극적이다. 이산화탄소와 온실개스의 증가는 해수면을 높였다. 질소와 플라스틱 공해가 심해졌으며, 광산, 터널, 댐, 도시 등으로 인해 지형이 바뀌었다. 새로운 화학 물질들이 만들어졌으며, 여러 생물지구화학적 순환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그러나 이 불의 시대가 총체적으로 지구 미친 영향을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의미
역사를 보는 방식이 바뀌면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통찰력 또한 바뀐다. 예를 들어 듀브는 지구 역사에서 단 한 번 일어났던 생화학적 사건들을 찾아, 만약 역사가 새로 시작된다면 그 사건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논했다. 크놀과 밤바흐는 생명체의 역사에서 생태학적 다양성을 일구어낸 새로운 형태의 생명들(원핵생물, 단세포 진핵생물, 육상 식물, 등)에 해당하는 여섯 개의 “거대 자취(mega-trajectories)”를 정하고 이들의 진화적 변화와 생태학적 복잡성을 엮어 설명하였다. 메이나드 스미스와 스자스마리가 제안한, 복제 단위(유전자, 염색체, 개체 등)를 바탕으로한 프레임은 잘 알려져 있으며, 자연 선택이 일어나는 수준을 이해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된다.

최근의 작업 중에는 렌튼과 그의 동료들이 개발한, ‘혁명’을 중심으로 생명체와 지구의 역사를 보는 방법이 있다. 그들 역시 이 글과 마찬가지로 에너지를 중심에 두었다. 하지만 생태계를 뒷받침 하는 에너지원의 확장 보다는 에너지원의 연속된 변화와 이들이 지구적 물질 순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았다. 그들은 분석을 통해 인류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화석연료 대신 태양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을 넘어 철과 같은 물질의 재활용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논문에서 나는 보다 상향식 접근방식을 취했다. 바로 생태계를 떠받치는 에너지원이 무엇인지를 찾음으로써 행성과 생명체가 이루는 시스템의 구조를 묘사했다. 에너지 관점에서 볼 때, 생명의 진화와 지구 환경의 변화는 밀접한 상호작용을 통해 변화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몇 가지 통찰을 깨달을 수 있다.

첫째, 에너지 원이 다양해지면서 생태계는 급속도로 복잡해졌다. 무기물 탄소를 변화시켜 살아있는 세포가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은 지화학 에너지와 태양광 밖에 없지만 오늘날 생태계의 복잡성은 훨씬 다양한 수준의 에너지에 기반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남조류는 종종 빠른 성장을 위해 빛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다른 유기물과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 반대로 원핵 생물 공생체, 혹은 세포내 공생체를 통한 대사 용량의 증가는 진핵 생물로 하여금 공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다양한 환경에 살 수 있게 해주었다. 에너지 원이 확대될때마다 생태계의 다양성은 급속하게 증가했고 이는 더 복잡한 미생물 매트와 버려진 토굴, 소라 껍질과 같은 새로운 생물환경을 만들었다. 동시에 에너지 시대가 바뀔때마다 생명체가 지구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현격하게 커졌으며, 이는 이를 통해 미래의 생명체가 진화할 환경이 결정되었음을 의미한다.

생태계의 구성이 이러한 다양한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일시적이라 하더라도 에너지원의 소멸은 생태계에 영향을 미쳤다. 현생대의 경우, 몇몇 저자들이 산소 비율의 변화에 따라 생태계가 커지거나 줄어드는 경향이 있으며, 대양의 산소결핍과 페름기 말, 트리아식기 말에 일어난 대규모 멸종이 관련됨을 보였다. 크링은 백악기 말 대멸종의 이유로 멕시코 유카탄 반도 칙술루브에 떨어진 소행성에 의한 먼지가 태양을 막아 전지구적으로 광합성이 불가능했기 때문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경향을 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흥미로운 연구주제가 될 것이다.

또다른 흥미로운 연구주제는 에너지 사용과 대진화의 관계이다. 베르메이는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는 생명체가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생명체에 의해 밀려나는 것이 현생대의 특징이라 주장했다. 그는 항온동물이 변온동물을 밀어낸 것, 속씨 식물이 겉씨 식물을 밀어낸 것 등을 예로 들었다. (그렇다고 저에너지 생명체들이 늘 멸종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에너지가 적은 환경으로 서식지가 제한될 뿐이다.) 지구에 생명체가 나타나던 초기, 혹은 인간 사회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나타나는 지를 확인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두 번째 통찰은 에너지원을 통해 본 지구의 역사에서 나타난 두 번의 분명한 변곡점, 곧 산소급증사건과 이동가능한 동물의 탄생이 이들이 소모할 수 있는 에너지원의 확대와 함께 나타났다는 점이다. 산소급증사건은 대기와 해수면의 화학 조성을 바꾸었고 산소의 비율을 높였다. 다른 생명체를 먹을 수 있는 생명체의 탄생은 생태계의 본질을 변화시켰고, 새로운 종류의 진화 방식들을 가능하게 만들어 대진화를 가속시켰다. 이런 관점에서 지구의 생명체들은 태양 에너지를 바탕으로 살아간다는 표현은 보다 복잡한 의미를 가진다. 오늘날의 생태계는 단순히 태양광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태양광을 특별한 방식으로 사용해 만들어진 산소에 의해 살아간다.

에너지원을 바탕으로 한 이런 관점은 불의 활용을 하나의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여길수 있게 만들며, 지구가 새로운 변곡점에 도달했음을 알려준다. 곧, 오늘날을 의미하는 인류세(Anthropocene)가 지질학적으로, 그리고 생물학적으로 진정 새로운 단계임을 알려주며, 이는 렌튼과 그의 동료들이 별개의 방식으로 내린 결론과 동일하다. 불을 사용하는 기술은 어쩌면 우리 생태계가 태양계를 넘어 갈 수 있게 만들 변곡점이 될 것이다. 지구에서 출발한 우주선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지구의 생명체를 다른 우주로 데려갈 것이다. (물론 지구의 생명체가 다른 환경에서 번성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지구 생태계는 우리가 아는 유일한 생태계이며 따라서 우리는 지구가 얼마나 일반적인 생태계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다른 행성의 생태계 역시 이와 비슷한 에너지원의 확대를 겪는다면, 우리는 지금 이 논문에서 제시한 방식을 바탕으로 그 행성이 어떤 단계에 있으며 앞으로 어떤 단게를 겪을지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그 행성이 아직 지화학적 에너지만을 사용한다면 – 태양으로부터 너무 멀거나, 혹은 주위에 항성을 가지지 않은 떠돌이 행성이기 때문에 – 그 행성에 존재할 수 있는 생명체는 “자랄 수 있는 키에 한계가 있다”고 닐슨 등은 말한다. 만약 어떤 행성의 대기에 산소가 충분히 있지 않다고 해보자. 물론 그 행성의 유기체가 물을 분해해 기체를 얻는 방식의 진화를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혹은 그런 진화가 이루어졌다 할지라도 산소가 축적되지 못하게 하는 어떤 특성을 그 행성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산소 없이는 지질학적으로나 생태학적, 진화적으로 행성과 생명체가 이룰 수 있는 시스템의 가능성이 상당히 제한되며 진핵생물에 해당하는 생명체가 만들어졌다 할지라도 진화를 위한 충분한 에너지를 만들지 못한다. 반대로, 어떤 행성에서는 새로운 종류의 에너지를 축적하고, 그 에너지를 이용하는 새로운 종류의 생명체가 탄생해 지구보다 더 빠르게 진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곧, 에너지원의 관점에서 우리는 특정한 행성의 생태계는 그 행성이 처한 우주적 환경과 행성이 가진 고유 특성, 그리고 그 행성에서 진화 가능한 생명체의 밀접한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질 것이라 예측할 수 있다. 이 생태계는 진화한 생명체와 이들에 의해 변화된 행성 사이의 선순환에 의존하는 복잡하고 다양한 생태계를 가질 것이다.

(네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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