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파의 존재를 두고 사람들의 의견이 엇갈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파인만은 다른 사람들의 주장을 확인하기보다 가장 근본적인 원리로부터 출발해 중력파의 존재를 증명해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만의 방법을 통해 답을 먼저 얻었습니다. 1957년 채플 힐에서 열린 미국의 첫 일반상대론 학회(GR1)에서 그는 중력파가 에너지를 전달한다는 사실을 기발한 방법으로 증명했습니다. 이 주장은 거의 60년이 지난 2016년, 중력파의 실재를 보인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LIGO)의 결과를 예견한 것입니다.
파인만은 어떻게 일반 상대론 학회에서 발표를 하게 된 걸까요? 그는 양자전기동역학(QED)과 입자 물리학의 전문가였고 이를 통해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뛰어난 학자들처럼 그의 관심 분야 또한 매우 다양했습니다.
파인만이 어떻게 이 학회에서 발표를 하게되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이 학회를 주관한 주요 인물들을 살펴 보아야 합니다. 프랑스 출신 미국인 수리물리학자인 드윗-모렛과 그녀의 남편이자 미국인 장(field) 이론가인 브라이스 드윗은 파인만의 독창적인 사고방식에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학회 발표자 다수를 초청한, 무대 뒤의 실력자인 프린스턴의 존 아치발드 휠러가 있습니다.
드윗-모렛과 파인만의 인연은 40년대 후반 그녀가 프리먼 다이슨과 함께 코넬을 방문해 파인만이 경로적분법을 양자역학에 적용하는 일을 논의하고 이 이론에 수학적 엄밀함을 보태주었던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남편인 브라이스 드윗은 파인만과 같이 QED를 만든 줄리안 슈빙거의 제자였고, 중력을 양자이론으로 푸는 “양자 중력동역학”을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 작업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일이라는 것이 후일 밝혀지게 됩니다.
특히 휠러는 파인만의 프린스턴 당시 박사과정 지도교수였습니다. 그는 학회를 직접 조직한 이는 아니지만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고 중력 연구를 가장 활발하게 하는 실험실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이때문에 그가 원하는 학생과 졸업생들을 학회에 부를 수 있었습니다. 그가 초청한 이들 중에는 중력파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조셉 베버, 그리고 브라이스 드윗처럼 일반 상대론과 우주의 양자적 특성을 조화시키려 노력했던 찰스 미스너 등이 있었습니다. 휠러는 파인만이 이 분야 바깥의 사람으로서 줄 수 있는 조언을 높이 평가했기에 파인만을 초청했습니다. 휠러는 파인만이 독특한 통찰력과 QED에 대한 깊은 지식을 바탕으로 전자기학과 중력을 양자이론으로 설명하는 대담한 아이디어를 내놓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파인만이 채플 힐에서 가장 가까운 공항인 레일리이-더럼 공항에 내렸을때 그는 학회가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인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인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택시를 잡을 때 좋은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택시 기사에게 혹시 “쥐뮤뉴(일반 상대론의 기호 이름)”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태웠는지 물었고 그가 그렇다고 하자 그 사람들이 간 곳으로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말했습니다.
학회의 핵심 주제였던 중력파는 1916년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초기 일반 상대론 논문에 나오는 계산에서 출발합니다. 아인슈타인과 그의 조수였던 나단 로젠은 1936년 원통형 대칭을 가진 일반상대론의 해를 찾아본 “중력파는 존재하는가?”라는 논문에서 이 주제를 다시 다룹니다. 사실 그들은 중력파를 수학적 결과물로만 여겼고, 자의 영점이 옮겨진다고 해서 현실에서는 어떠한 차이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실제로는 중력파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이 논문을 피지컬 리뷰에 제출했을때 익명의 심사자(후에 프린스턴의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이며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론 장 방정식의 해법을 발견한 네 명 FLRW 중 R에 해당하는 하워드 퍼시 로버트슨으로 밝혀진)는 이 부분을 오류라 생각해 출판을 거절했습니다. 화가난 아인슈타인은 이 논문을 프랭클린 인스티튜트 저널에 투고했습니다. 로버트슨은 자신이 심사자였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채로 아인슈타인에게 이 오류를 정정하게 유도했고, 이는 원통형 중력파가 물리적으로 실재한다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아인슈타인은 투고한 논문을 다시 수정했고 결국 그 논문은 전자기파와 유사한 형태로 실제로 공간을 따라 전파되는 중력파의 존재를 예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로젠은 여전히 확신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는 국소적 공간의 중력 에너지를 나타내는, 다소 논란이 있는 방법인 “에너지 가짜텐서(pseudotensor)”를 이용해 중력파는 에너지를 전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방법이 논란이 있는 이유는 좌표계를 조금만 바꾸어도 그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로젠은 이 방법으로 원통형 중력파가 지나가는 모든 공간에서 에너지는 0임을 보였습니다. 그의 결과에서는 실제 질량이나 에너지가 존재하는 영역에만 중력 에너지가 있었습니다. 다른 모든 공간에는 중력 에너지가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중력파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되었습니다. 1955년 아인슈타인이 사망한 이후에도 로젠은 중력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계속했습니다.
로젠은 채플 힐에서 열린 학회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그의 논문은 발표되었고 사람들은 그의 주장을 두고 토론했습니다. 휠러, 웨버, 영국의 물리학자 펠릭스 피라니, 오스트리아 출신의 영국 수학자 헤르만 본디,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중력파의 실재와 이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학회의 주요 주제 중 하나가 중력의 양자이론이었기에 많은 이들이 중력파를 바르게 기술하는 것이 양자중력이론에도 큰 영향을 미칠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즉 광자가 전자기파의 양자화된 형태라면 중력양자(graviton)는 중력의 양자화된 형태일것이며, 전자기파가 양자 이론 없이도 고전적으로 잘 설명이 되었던 것처럼 중력파 역시 그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불필요한 추상화를 혐오했던 리처드 파인만이 등장합니다. 만약 중력파가 실재한다면, 그 중력파는 반드시 에너지를 전달해야 합니다. 그는 중력파에 대한 가짜텐서 표현이 옳은지와 같은 기술적 논의 대신 오늘날 “끈적한 구슬 논증(sticky bead argument)”으로 알려진 매우 직관적인 설명을 이야기합니다.
파인만은 사고실험을 통해 한 쪽 끝에 구슬이 고정된 가느다란 막대와 그 막대에 끼워져 있어 막대를 따라 움직일 수 있는 구슬을 생각합니다. 이 두 구슬은 전자기파의 경우 이를 수신하는 안테나의 전하들에 해당합니다. 전자기파가 전하를 움직이게 하는 것처럼, 중력파 역시 “중력파 안테나”의 구슬을 움직이게 만듭니다. 중력파가 안테나에 수직으로 지나갈 때, 움직이는 구슬은 막대를 따라 좌우로 움직이게 됩니다. 구슬의 움직임은 구슬과 막대 사이의 마찰을 부르고, 이는 열 에너지로 바뀝니다. 따라서 중력파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열에너지는 중력파에서 왔다고 밖에는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학회에서 파인만의 발표를 듣고 영감을 얻은 웨버는 매릴랜드 대학에 “웨버 바”라 불리는 중력파 안테나를 만듭니다. 60년대 후반부터 그는 중력파의 존재를 발견했다고 주장했지만, 물리학계는 그의 장비가 충분히 민감한지를 확신하지 못했고 웨버 역시 결과를 재현할 수 없었습니다. 웨버 바의 민감도는 중력파의 세기나 주기 측면에서 모두 실제로 중력파를 측정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워싱턴 주 핸포드와 루이지애나 리빙스턴에 각각 설치된 LIGO 장비는 간섭계와 특별한 거울, 질량, 그리고 훨씬 규모를 키움으로써 민감도와 신뢰도를 크게 올렸습니다.
파인만은 1988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LIGO의 초기 아이디어는 보았지만 이 장치가 중력파를 실제로 측정하게 된 것은 한참 뒤였습니다. 그가 자신이 사고실험을 통해 기여한 중력파의 존재가 마침내 실제 발견으로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면 무척이나 기뻐했을 것입니다.
(Forb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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