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회는 자본주의 기업가들을 칭송하면서도 이들을 탐욕스럽고 무자비한 인물로 그립니다. 큰 재산을 물려받은 상속자들은 (특히 여성의 경우) 화려하지만, 자기 자신밖에 모르고 제멋대로인 인물로 인식되죠.
역사상 불평등이 아주 심했던 시기에는 부정적인 면모가 더욱 부각되었습니다. 제가 이 인터뷰를 했던 건 금융 위기와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가 한창이던 때로, 이때도 국가적으로 소득 불평등이 크게 부각되던 때였습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50%를, 1%가 전체 소득의 20%를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터뷰 대상자들이 악마화 된 1%의 이미지로부터 거리를 두려고 했던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이 누리고 있는 특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은 부유층의 구성이 달라진 현상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20세기 내내 상류층은 매우 동질적인 커뮤니티였습니다. 대부분이 개신교 백인이었고, 소수의 가문이 몇 개의 클럽에서 함께 어울렸으며, 같은 엘리트 학교에서 아이들을 교육했죠.
2차 대전 이후 엘리트 교육 기관들이 보다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을 받아들이면서, 상류층의 구성도 훨씬 다양해졌습니다. 금융 업계 종사자들이 큰돈을 벌면서, 전통적인 “일하지 않는 부자”, “귀족에 가까운 부자”와 대비되는 “열심히 일하는 부자”도 생겨났습니다. 열심히 일한 만큼 누린다는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 것이죠.
“정당한 부자”는 열심히 일하고, 또 현명하게 소비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인터뷰 대상자들은 자신이 수입과 지출에 있어 모두 “보통”임을 강조했습니다. 남편의 연봉이 5억 이상인 주부 탈리아 씨는 아파트 두 채를 하나로 합치는 리모델링을 진행 중이고, 교외 별장을 빌려 사용 중입니다. “우리는 그냥 일반적인 사람들이에요.”라는 그녀의 말에 무슨 뜻인지를 묻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글쎄요. 저녁은 다 같이 모여서 집에서 먹고, 밤에는 직접 아이들 목욕을 시키고, 아침에는 직접 등교시켜요. 매일 밤 별 4개짜리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하지 않는다는 거죠.” 직전 해에 6억 원 이상을 지출한 스캇 씨는 아내와 늘 “이게 6억짜리 라이프스타일이야? 믿어져?”라는 말을 주고받는다고 합니다. “항상 바쁘거든요. 정신이 없어요. 항상 아이들 먹을 피넛버터젤리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고요.”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보통 사람”과 달라지는 건 아니라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인터뷰 대상자들은 비싼 물건을 자랑하는 대신, 할인가에 산 유모차와 할인 아울렛에서 산 옷, 오랫동안 타고 다닌 승용차를 강조했습니다. 호화 리조트에서 보내는 휴가 등 다른 부자들의 소비 행태를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자녀 교육에 대한 걱정도 많았습니다. “건방진 부잣집 아이”가 아닌 “좋은 사람”으로 키우기를 원한다면서요. 뉴욕의 사립학교만 다닌 아이가 “진짜 세상”, “온실 밖의 세상”을 모를까봐 걱정하는 부모들도 많았습니다. 1천만 원짜리 휴가를 다녀와서도 “아빠, 다음에는 다른 친구들처럼 개인 비행기를 타고 갔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 아이를 언급한 인터뷰 대상자도 있었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들이 엘리트 교육을 받은 뉴요커들로, 사회적으로는 대부분 리버럴이라는 점입니다. 출신 지역이나 배경이 다른 부자들은 자신의 부나 지출에 대해 좀 더 편하게 이야기할지도 모릅니다. 제가 인터뷰한 사람들도 어쩌면 비슷한 부자들끼리 있을 때는 좀 더 편해질지도 모르죠.
그럼에도 이들이 자신의 부에 대해 취하는 태도는 아메리칸 드림의 중심에 있는 큰 모순을 드러냅니다. 부를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한 행동이지만, 부를 소유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는 것이죠. 평등주의에 대한 미국인들의 이상은 불평등의 수혜자에게도 불편함을 안겨줍니다. 이런 환경에서 개개인이 불평등이라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기란 매우 어렵죠.
이런 모순 속에서 침묵은 매우 편리한 방편입니다. 돈 이야기를 터부시하는 사회적 통념을, 부자인 인터뷰 대상자들도 그대로 따르면 되니까요. 자신의 부를 감추고, 부에 대한 마음속 갈등도 묻어두면 그만이죠.
“보통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부유한 사람들은 “부의 낙인”을 피하게 됩니다. 열심히 일하고 합리적으로 소비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정의하면서, 경제적인 지위는 그대로 유지한 채 넓은 의미의 “미국 중산층”에 속할 수 있는 겁니다.
부자들이 도덕적으로 칭송할 만한가 아닌가만을 따지는 사회적 분위기는 부의 재분배라는 중요한 문제로부터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킵니다. 어떤 사람이 어디서 어떻게 살고 일하는가만으로 그 사람의 도덕적인 가치를 판단한다면, 이는 사람이 “가진 것”이 아닌 “하는 일”을 더 중시하는 가치관으로 이어집니다. 천문학적인 부자도 도덕적으로 선하기만 하다면 문제가 없다고 여기는 구조를 재생산하는 셈입니다.
리버럴과 좌파 사회 비평 쪽에서는 부유한 개개인이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불평등한 축적과 분배의 구조를 바꿀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개개인의 도덕적인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특정한 사회 구조의 도덕적인 가치를 논해야 합니다. 당신은 천문학적인 부를 누리는 사람이 있어도 그 개인이 근면 성실하고, 관대하고, 소탈한 사람이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회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부자들이 아무리 좋은 사람이어도 지나치게 높은 수준의 불평등이 존재하는 것을 도덕적으로 용인하지 않는 사회를 원하십니까?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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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게 하는 기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