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첫 번째 일요일인 1월 4일, 제임스 체임버스는 주식시세표 같은 실시간 회원 등록 현황 그래프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연초는 누구나 다 새해 결심을 하고 단단히 마음을 먹는 때죠. 지긋지긋한 이 살을 꼭 빼고 말리라는 결심을요. 제임스 체임버스는 체중 관리 및 조절 서비스를 제공하는 웨이트 워처스(Weight Watchers)의 최고경영자였습니다. 매년 이맘때 새해 결심과 함께 폭증하는 서비스 가입자 현황을 직접 두 눈으로 살펴보려고 기다리던 참이었죠. 회사는 최근 들어 더 많은 가입자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벌써 4년 연속 가입자 수가 줄어드는 추세였죠. 그만큼 소비자들의 심리가 바뀌었습니다. 회사는 회사대로 그런 감소세를 되돌려보고자 열심히 홍보도 하고 마케팅 전략도 폈습니다. 하지만 일 년 중 가장 대목이라 할 수 있는 새해 첫 주말은 너무나도 조용히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새로운 가입자는 전혀 늘지 않았습니다. 보건 전문가들이 미국인의 2/3 이상이 비만이거나 과체중이라고 부르는 세상입니다. 웨이트 워처스는 전통 있는 업체로 업계에서 소비자들의 신뢰를 받는 회사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도대체 그 많던 사람들은 어디로 간 걸까요? 웨이트 워처스도 도무지 원인을 알 수 없어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체임버스는 회사의 수석부사장이자 글로벌 고객 분석 책임자인 뎁 베노비츠를 호출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만큼 끔찍한 1월 성적표를 받아든 상태예요. 우리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네요.”
베노비츠는 체임버스가 이렇게 말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이어트 업체들은 1월 실적만 보면 남은 한 해 영업이 어떨지 사실상 다 알 수 있습니다. 체임버스도, 베노비츠도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다이어트라는 것에 다소 싫증을 느끼고 있다는 세태에 관해서는 알고 있었습니다. 웨이트 워처스가 최근 시도했던 마케팅은 “특히 빼기 어려운 부분 집중 공략”이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돌직구를 던지는 다이어트 전략이었는데, 소비자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말았습니다. 체임버스는 베노비츠에게 2월에 예정된 이사회 전에 도대체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됐는지 파악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베노비츠는 당장 분석에 착수했습니다. 전국 각지를 돌며 웨이트 워처스 회원들과 전(前) 회원들, 그리고 다이어트를 고려하고 있어 원래대로라면 웨이트 워처스 회원이 됐을 법한데 그러지 않은 사람들을 두루 만났습니다. 가장 놀라운 점은 사람들이 이제는 “다이어트”나 “체중 감량” 같은 이야기 자체를 꺼리는 사실이었습니다. 대신 사람들은 건강해지고 싶어했고, (반드시 날씬하거나 마른 몸보다) 건강한 몸을 원했습니다. “깨끗한 먹을거리”를 찾아 먹고, “튼튼해지고 싶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추이를 유심히 지켜봤다면 이러한 변화가 무척 천천히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 겁니다. 어느덧 “다이어트”는 어딘가 없어 보이는, 뭔가 싸구려 취급을 받는 행동이 되어 버렸습니다. 페미니즘과도 어울리지 않고, 어딘가 불가사의한 것으로 여겨지죠. 새로운 천 년이 밝은 마당에 어떤 몸매가 더 낫다는 구닥다리식 태도는 옳지 않다는 겁니다. 어떤 식으로든 몸을 바꾸려는 시도는 그래서 닫혀 있는 사고의 방증으로 여겨지며 비판받습니다. “체중 감량”이라는 단어는 결국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에 어긋나게 됐습니다. 사람들은 다이어트나 체중 감량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걸 거북해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행동 자체가 급격히 변한 것은 아닙니다. 즉, 사람들은 여전히 날씬한 몸을 선호하고, 너무 살이 찌는 건 좋아하지 않습니다. 단지 살찐 것을 무슨 대단한 문제라도 되는 것처럼 여기지 않을 뿐이죠! 결국, 사람들은 다이어트, 체중 감량 같은 단어를 대체할 새로운 이름과 개념을 찾고 있는 겁니다.
지난 3월 <미국 의료협회지>에 실린 조지아서던대학교 보건대학원 연구진의 연구는 1988~2014년을 세 시기로 나누어 시기별로 몸무게를 줄이는 행동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의식의 변화를 추적했습니다. 1988~1994년에 해당하는 첫 번째 시기에는 살이 찐 성인의 56%가 살을 빼려고 노력해봤다고 답했습니다. 세 번째 가장 최근 시기인 2009~2014년에는 살이 찐 성인의 49%만이 같은 답을 했습니다.
다이어트에 대해 느끼는 싫증이나 일종의 피로 때문만은 아닙니다. 과연 다이어트가 장기적으로 효과가 있느냐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서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살을 빼려는 노력을 덜 하게 된 측면도 있습니다. 웨이트 워처스 자체 연구에 따르면 식습관 교정을 비롯해 행동을 바꿔 체중을 조절하는 수많은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은 평균 6개월 안에 5% 정도 몸무게를 줄입니다. 하지만 이 가운데 1/3가량은 2년이 지나면 다시 원래 몸무게로 돌아옵니다. 살을 뺐다가 다시 살이 찌면 장기적으로 신진대사에 부담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이하로는 꾸준히 유지할 수 없는 일종의 몸무게 마지노선이 있다는 사실도 후속연구 결과 밝혀집니다. 나아가 살이 찌는 것이 꼭 나쁘기만 한 것인지 의문을 품고 연구를 계속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뚱뚱한 사람이 깡마른 사람보다 오히려 더 오래 산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그런 주장은 점차 퍼져 마침내 주류에서도 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장 여성 잡지가 표지의 톤을 한층 순화했습니다. 즉, 예전에는 이상적인 몸매를 설정해 놓고 몸매를 가꾸기 위해 지켜야 할 수칙 같은 것을 훨씬 노골적으로 내걸었다면 이제는 어떤 몸매가 좋거나 옳다는 뉘앙스를 찾기 어렵습니다. “날씬해지자! 식단 조절로 한 달에 4.5kg 빼기!”와 같이 다이어트를 직접 권하던 문구에서 “건강한 몸매! 내 몸에 맞는 운동과 식단으로 건강해지는 비결!” 정도의 톤으로 바뀌었죠. 이런 명백한 트렌드에 끝까지 동참하지 않던 잡지 <여성 건강(Women’s Health)>도 2015년 하반기 들어 마침내 “옷 두 치수 줄이기”, “비키니에 어울리는 몸매 관리”와 같은 코너를 폐지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대신 웰빙 혹은 건강을 뜻하는 단어 “wellness”가 곳곳에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과식하지 않고 깨끗한 먹을거리를 찾아 먹으며 몸속의 독소를 빼내는 데 신경을 씁니다. 생활습관까지 덩달아 바꾸려 노력하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같이 기존의 다이어트와 크게 다른 것은 없는 행동이긴 합니다.
그러나 기존의 다이어트 업체들은 이미 한물가버린 다이어트라는 컨셉과 연관됐다는 이유만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다이어트용 식단을 표방하던 린 퀴진(Lean Cuisine)은 재빨리 회사 브랜드를 “현대인의 식단”으로 바꿨습니다. 린 퀴진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이어트라는 개념과 완전히 결별했음을 알리고자 백방으로 노력해 왔습니다. 지난해에는 구글의 크롬 브라우저에 설치해 적용할 수 있는 익스텐션을 만들어 배포했는데, 이 익스텐션을 설치하면 “diet”나 “dieting” 같은 단어 자체를 모두 걸러낼 수 있습니다. 린 퀴진이라는 이름만 보고 사람들이 다이어트 회사라고 생각하게 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쓰고 있는 것이죠.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은 좋든 싫든 제 책임이 아닌 것처럼 회사 이름을 함부로 바꾸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니까요.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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