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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트럼프 대통령의 몸짓, 말보다 많은 것을 알려줍니다

우리 대통령이 달변가가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괜찮습니다. 언어의 빈틈을 몸짓으로 채우는 분이니까요. 이번 해외 순방 기간 대통령과 측은한 주변인들이 보여준 바디랭귀지는 그 어떤 말보다 생생하게 현장 분위기를 전달했습니다.

측은한 주변인들이란 물론 영부인과 교황, 몬테네그로의 총리 등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모두 보셨죠. 두루코 마르코비치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정상들이 단체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준비하던 모습을요. 트럼프는 자기 앞에 있던 마르코비치 총리를 취재 중인 기자쯤으로 착각한 듯 손으로 밀쳐내고, 옷매무시를 가다듬은 다음 고개를 치켜들고 촬영 준비가 되었음을 알렸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은 백 마디 말보다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입으로는 거짓말을 할 수 있어도 몸짓은 거짓말을 못 하는 법이니까요. 그가 화가 난 듯 입을 내밀고, 누군가를 쏘아보고, 거들먹거리며 걷는 모습에서 많은 것이 드러나죠. 트럼프의 몸짓에는 그의 진심이 담겨 있습니다. 포스트-진실(post-truth)의 시대를 사는 우리로서는 그의 말보다 몸짓에 집중할 수밖에 없지요.

이번 순방에서는 타국의 총리를 밀쳐낸 장면뿐 아니라 사우디 왕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도 화제가 되었습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사우디 왕을 만났을 때 고개를 숙이고 인사한 일을 두고 비난을 퍼부은 과거에도 불구, 트럼프 역시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구부리는 인사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위선적인 그분에게 결여된 또 한 가지는 바로 리듬 감각입니다. 칼을 휘두르기보다는 늘어뜨린 채 몸을 뒤뚱거린 칼춤 솜씨는 일품이었죠.

교황과 만남은 또 어땠나요? 바티칸 관계자들은 프란체스코 교황이 언제나 자신을 향하는 카메라를 인식하는 인물이라고 말하지만, 그런 교황마저도 트럼프를 만난 자리에서는 표정 관리에 실패했습니다. 정면만을 뚫어지게 주시하는 교황의 얼굴에서 기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버나드 쇼가 쓴 소설 중에는 “무기와 인간(Arms and the Man)”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제목을 본떠 “손과 인간(Hands and the Man)”이라는 제목의 트럼프 전기가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래 전 한 잡지가 트럼프의 캐리커처를 실으면서 “손가락이 짧은 속물”이라고 비꼰 이래, 트럼프의 작은 손은 언제나 화제의 중심에 있었죠.

그런 손이 이번 순방에도 다시금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 내외와 레드 카펫 위를 걷던 트럼프가 멜라니아를 향해 손을 뻗자 영부인이 그 손을 뿌리친 것입니다. 비슷한 장면이 로마에서도 이어졌고, 트위터 사용자들과 코미디언들은 대통령을 놀리느라 잔칫날 같은 하루를 보냈습니다.

영부인도 마음 상한 일이 많았을 겁니다. 지난 1월 취임식 때도 트럼프는 차에서 내리는 부인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서 계단을 올라가 오바마 내외에게 인사를 했죠. 예의도, 기사도도 찾아볼 수 없는 장면이었습니다. 하지만 복수의 기회는 곧 찾아왔죠. 영부인이 남편을 향해 미소를 짓다가 남편의 시야를 벗어나는 순간 정색하며 표정을 바꾸는 장면은 세계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트럼프의 손은 취임 이후에도 계속해서 논란의 중심이었습니다. 지난 3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방문했을 때는 대통령이 메르켈의 악수 요청을 거부했는지, 단순히 악수 요청을 못 들은 것인지 논란이 있었죠. 두 사람이 긴장된 모습으로 서 있는 장면은 오바마와 메르켈이 함께 있는 장면이 얼마나 편안해 보였는지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더불어 2006년 G8 정상회담에서 앉아있는 메르켈 총리 뒤로 다가가 어깨를 주물러 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다시 비교 대상으로 소환되었습니다. 그때도 메르켈 총리는 딱히 유쾌해 보이지 않았지만요.

프랑스의 신임 대통령 마크롱과 트럼프의 만남 역시 썩 유쾌하지 않았다는 것은 두 사람의 사진에서 잘 드러납니다. 트럼프가 나토에 대한 미국 정부의 책무에 대해 미심쩍은 모습을 보였기 때문일 수도 있고, 실은 마린 르펜을 좋아했으면서 마크롱을 지지했던 것처럼 허풍을 떨었기 때문일 수도 있죠. 어느 쪽이든 마크롱이 국가 정상들의 무리를 향해 걸어가다가 방향을 약간 틀어 트럼프를 피하고 메르켈 총리에게 먼저 인사를 하는 장면이 포착된 것은 사실입니다. 두 사람이 악수했을 때 어찌나 서로 손을 세게 쥐었던지 둘 다 얼굴이 굳고 트럼프 대통령의 손 관절 부위가 하얗게 되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트럼프가 손을 빼려고 했으나 마크롱이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는 묘사도 있었죠.

지금껏 트럼프의 말과 글보다 대선 토론 도중의 콧방귀, 외국 정상과의 악수 해프닝, 그리고 불행히도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상대방의 숨길 수 없는 불쾌함과 혼란스러움 등이 화제가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리고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합니다. 트럼프의 말과 글의 진실성이 보장되지 않을뿐더러, 트럼프 자신도 독서보다는 TV 시청을, 글보다는 이미지를 좋아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으니까요. 그를 분석하는 우리도 비슷한 접근법을 취하는 것이 마땅해 보입니다.

끝으로 이번 순방에서 나온 명장면을 하나만 더 소개할까 합니다. 이스라엘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트럼프는 “지금 막 중동에서 오는 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무슨 남미에 있는 나라라도 되는 듯 말이죠. 동석한 이스라엘의 한 외교관이 이 말에 두통이 온 듯 손으로 이마를 짚는 모습은 사진에 고스란히 포착되었습니다. 그의 심정이 생생하게 전달된 순간이었습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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