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선생님은 로스알라모스에서 프린스턴으로 온 로버트 오펜하이머와도 알고 지냈죠. 나는 그가 맨해튼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정말 타고난 리더였고, 어쩌면 과학자의 역할보다는 행정가로 더 뛰어났다고 들었어요. 사실인가요?
A: 그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군요. 그는 과학자로서 블랙홀 이론이라는 매우 중요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블랙홀을 거의 발견한 것과 마찬가지이고, 후에 이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되었지요. 그가 자신의 학생 하틀랜드 스나이더와 그 일을 한 것은 1939년입니다. 그들은 왜 블랙홀이 존재하는지, 어떻게 블랙홀이 형성되는지 밝혔고 모든 계산이 맞았어요. 사실상 그는 블랙홀 개념을 처음 만들어낸 사람이고 그의 예측은 모두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그 논문이 1939년 9월 발표되었는데, 마침 그 논문이 발표된 날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했다는 것이죠. 그래서 세상은 오펜하이머가 아니라 폴란드로 눈을 돌렸습니다. 논문은 잊혔고 오펜하이머 역시 그 문제를 다시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더 이상 그 주제로 돌아오지 않았고, 이는 안타까운 일이죠. 20년 뒤 다시 그 문제가 사람들의 관심사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그는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어요. 그는 훌륭한 과학자였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남긴 이 위대한 업적이 사실은 그가 원하지 않았던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천문학이 아니라 입자 물리를 하고 싶어 했죠. 어쨌든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는 겁니다. 나중에 자신이 어떤 일로 기억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죠.
Q: 선생님은 오펜하이머가 고등과학원을 맡았을 때를 기억할 겁니다. 그때 그는 어땠나요?
A: 그는 내 상사였습니다. 나는 그에게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있어요. 그는 매우 다혈질이고 예측 불가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떨 때는 매우 관심을 보이다가도 어떨 때는 무관심했어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파악하기 어려웠지요. 그는 매우 다정하고 친근한 사람이었다가, 또 아주 잔인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처음 고등과학원으로 갔을 때 나는 가족 문제가 있었는데 그는 매우 친절하고 다정하게 이 문제를 도와주었습니다. 아주 좋은 친구였지요. 한편 그는 과학적 문제에 대해서는 과도하게 혹독했습니다. 누군가를 똑똑하지 않다고 쉽게 판단하고는 다시는 돌아보지 않았지요. 그 때문에 문제가 생긴 적도 몇 번 있습니다.
레온 쿠퍼가 처음 고등과학원에 왔을 때 쿠퍼는 아주 젊은 학자였고, 당시 가장 중요한 미해결문제였던 초전도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쿠퍼는 초전도 현상이 전자쌍과 관련이 있다고 이야기했고, 오펜하이머는 그 주장이 쓰레기라고 반박했습니다. 쿠퍼는 자신의 이론을 세미나로 발표하고 싶어 했지만, 오펜하이머는 매번 이를 막으며 왜 그 주장이 말이 안 되는지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쿠퍼가 멍청하다고 결론을 내렸고, 결국 쿠퍼는 고등과학원을 떠나 일리노이로 갔지요. 그리고 바딘과 슈라이퍼를 만나 초전도를 설명하는 이론을 완성했고, 그러니까 그 이론은 쿠퍼의 생각에서 출발한 겁니다. 그 세 명은 노벨상을 받았고, 쿠퍼는 결국 복수에 성공한 셈이지요.
Q: 선생님은 현대 물리학의 거인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물리학을 만든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자연의 중요한 비밀들이 밝혀진 과학의 황금기로 보입니다. 나는 영웅의 시대라 생각하고요.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A: 물론이지요. 나는 양자역학이 만들어지던 1920년대가 진정한 황금기라고 생각합니다. 양자역학은 내가 거들었던 1950년대보다 1920년대에 더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내가 겪었던 시대는 그다음이지만, 여전히 물리학을 하기에는 좋은 시대였죠.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물리학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신나는 일이 많았지요. 일자리도 많았고 물리학 분야는 빠르게 성장했어요. 어떤 2등급 물리학자도 1등급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활발하게 연구하기에 가장 좋은 시대였습니다. 3등급 학자도 2등급 일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Q: 몇몇 과학자들은 진짜 영웅이 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가장 위에 있었고, 선생님이 같이 일했던 파인만 같은 이도 있었죠. 오늘날에도 그런 종류의 영웅이 있을까요?
A: 나는 오늘날 그런 젊은이들이 다 생물학으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생물학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한때 물리학자가 되었을 학생들이 이제 생물학자가 되고 있습니다. 이론 생물학은 예전보다 더 실제적인 학문이 되고 있고, 사실상 컴퓨터 과학자에 해당하는 이들이 생물학을 하고 있습니다. 수학과 생물학 사이의 경계는 허물어졌습니다. 나는 젊은이들이 이제 이 영역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50년 전 겪은 황금기를 그들은 지금 겪고 있습니다.
Q: 아직 우리는 통일장 이론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별과 행성은 고전 물리법칙에 의해 움직이고 원자와 전자는 양자 역학에 의해 움직입니다. 아직 누구도 이 두 실체를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선생님은 답답하게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A: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나는 오히려 여기에 어떤 즐거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주가 하나의 법칙으로 설명되기보다는 두 종류로 존재한다는 게 더 나아 보이기도 해요. 나는 고전 세계와 양자 세계가 모두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놀라운 점은 두 세상이 완전히 다른 세상인데도 실제로 매우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죠. 나는 그 차이가 좋습니다. 나는 그 두 세상이 통일되지 않기를 늘 바라지만, 이를 정하는 것은 결국 자연이겠죠.
Q: 선생님은 오랫동안 수많은 뛰어난 과학자를 알아왔습니다. 그들을 위대한 과학자로 만든 공통의 개인적 특성이나 지적 특성이 있을까요?
A: 그것은 쉽게 말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들은 모두 달랐어요. 나는 그들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어느 정도 광기를 보였다고 말하고 싶네요. 균형 감각을 잃어갔지요. 그래서 보어가 더욱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마지막 날까지도 균형감각을 잃지 않았어요.
Q: 황당한 아이디어를 좇기 위해 명성을 감수하는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위대한 발견은 그런 모험을 해야 할 수 있는 것일까요?
A: 나는 무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가장 뛰어난 일을 했던 때는 내가 그 분야를 잘 모를 때였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아는 것은 오히려 단점이 됩니다. 특히 그 분야를 계속 가르치다 보면 고정관념이 생기고, 새로운 생각을 떠올릴 수 없게 됩니다. 내게는 물리학 수업을 듣지 않고 물리학 연구를 할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었지요. 나는 그 문제들에 대해 수학적 관점을 가지고 접근했습니다.
Q: 위대한 과학자는 전복적 성격을 타고나는 것일까요?
A: 물론입니다.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과거의 것을 부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섬세한 식견도 필요하지요. 모든 것을 무차별적으로 부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 지점에서, 그러니까 과거의 어떤 것을 부숴야 하는가 하는 지점에서 직관이라는 것이 중요해집니다.
Q: 물리학은 젊은이들의 학문일까요? 대부분의 위대한 발견은 마흔 살 이전, 혹은 심지어 서른 살 이전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A: 이론물리에서는 어느 정도 사실입니다. 실험물리학자들은 더 늦은 나이에도 연구를 지속할 수 있고 때로 노년기까지 활발하게 연구할 수 있습니다. 이론물리와 실험물리는 전혀 다른 분야입니다. 이론물리학은 어떤 무지가 필요합니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기존 이론이 머릿속 깊이 박히게 되지요.
Q: 나는 선생님이 젊은이의 머리가 더 좋다고 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어떤 고정관념에 대해 이야기하는군요.
A: 당신 말도 맞아요, 하지만 그 머리의 능력이란 게 어떻게 측정되는지 확실치 않습니다. 나는 분명 계산이 느려졌고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젊을 때의 내가 지금의 나보다 얼마나 뛰어난지는 모르겠네요.
Q: 선생님이 연구 분야였던 수리물리에서 손을 떼고 다른 일을 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있지요. 아마 내가 45세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중년의 위기란 학생들이 나보다 더 똑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시기죠. 그때 나는 남은 인생을 계산보다는 책을 쓰면서 보내기로 결심했고, 이는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행정가가 되고, 다른 일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저 머리를 굴리는 일 말고 다른 일을 찾아야 하는 것이죠.
Q: 선생님은 과학만이 아니라 문학이나 인문학, 심지어 신학과도 관련된 다양한 주제의 책을 써 왔습니다. 기독교를 믿지는 않지만 실천한다고 말씀하시기도 했고요. 선생님은 형이상학적 영혼을 믿는 건가요?
A: 아닙니다. 나는 그저 사회성이 매우 뛰어날 뿐입니다. 나는 친구들을 좋아하죠. 어떤 집단에 속하기를 좋아합니다. 이건 형이상학이 아니라 매우 실용적인 겁니다. 종교는 내게 교회를 가고, 교회에 다니는 친구를 사귀고, 노래를 부르고 말씀을 듣는 행위입니다.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이죠. 나는 이제 교회에 가지 않지만, 장로교 목사인 딸과 아주 잘 지냅니다. 나는 그녀를 통해 그쪽 세상을 배우고 있습니다.
Q: 오늘날 과학자들에 대한 인식과 당신이 과학자의 길에 들어서던 1930년대와 1940년대의 과학자에 대한 인식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A: 시대에 따라 돌고 도는 것 같군요. 1930년대에 과학은 별로 인기가 없었어요. 1차대전의 악몽, 특히 화학무기에 대한 책임을 과학이 져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화학무기는 끔찍한 것이었고,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었지요. 내가 고등학생 때는 덜떨어진 애들만 과학을 들었습니다. 정말 뛰어난 애들은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들었고, 그다음은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들었지요. 그 밑에 과학이 있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시대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기술의 남용이 과학을 비난하는 이유가 되곤 합니다. 이제 화학무기가 아니라 핵무기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요. 유전학에 대한 불안감도 느껴집니다.
Q: 선생님은 원자폭탄을 만든 여러 과학자들을 알고 지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 시기를 자신들이 가장 신나게 일한 때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아이러니가 존재하지요. 그들이 만들어낸 것이 인류가 가진 가장 파괴적인 무기니까요.
A: 맞습니다. 그들은 내 친구들이었죠. 나 역시 평생 전쟁을 해결하고 평화를 이루고자 노력했습니다. 과학을 생각하지 않을 때는 그 문제를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 문제는 영원한 문제일 겁니다. 하지만 내가 10대였던 1930년대에는 히틀러가 존재했고, 그래서 그 문제가 특히 심각했지요. 상황은 계속 바뀝니다. 이 세계가 여러 나라로 나뉘어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죽이고 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 인류 사회가 다양한 문화와 언어로 되어 있다는 것은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다양성이 인간을 창의적으로 만들지요. 이런 두 측면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Q: 선생님은 인류의 미래를 낙관하시는 편인가요?
A: 네. 나는 1930년대를 겪었습니다. 많은 면에서 그때는 지금에 비해 암울했습니다.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영국의 모든 것은 검댕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런던을 하루 다녀오면, 셔츠가 검은색으로 변했습니다. 지금 런던은 훨씬 깨끗합니다. 미국은 더 깨끗하죠. 내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로스앤젤레스는 스모그로 가득했습니다. 1930년대에는 경제적으로도 더 나빴지요. 무엇보다 우리는 2차대전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히틀러가 있었고, 우리는 그와 싸워야 할 것을 알았고 살아남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죠. 그게 내가 성장기에 겪은 일입니다. 지금 시대의 전쟁보다 훨씬 나쁜 상황이었죠.
(노틸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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