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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후변화 논의, 그 확고한 확신의 분위기에 대하여

* 지난달 뉴욕타임스가 새로 기용한 칼럼니스트 브렛 스티븐스의 첫 칼럼으로, 기후변화 논의에 대해 뉴욕타임스의 기존 입장과 다른 견해를 밝혀 수많은 독자의 항의를 받으며 논란이 되었던 글입니다. -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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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가 정직하게 55% 정도 옳다면 이는 좋은 일이고 시비 걸 필요가 없다. 60% 옳은 사람이면 훌륭하고 운이 좋은 사람이며 신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75% 옳다면? 현명한 이들은 슬슬 의심스럽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100% 옳다고 말하는 자는? 광신도에, 깡패에, 최악의 인간일 것이다.” -“갈리시아의 늙은 유대인” 중에서

작년 대선 막바지, 클린턴 캠프는 자신들이 100%는 아니더라도 백악관에 거의 가까이 왔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명분과 일하는 방식에 확신이 있었고, 승리를 자신하고 있었죠. 빌 클린턴이 영국의 브렉시트 통과를 언급하며 포퓰리즘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지 않은가 의문을 제기했을 때도 선거본부장 로비 무크는 “데이터는 거짓말을 안 한다”고 잘라 말하며 확신을 굽히지 않았죠.

당시의 상황은 조나단 앨런과 에이미 판스가 쓴 2016 클린턴 캠프 참패 회고록 “산산조각나다(Shattered)”에 자세히 적혀있습니다. 로비 무크는 새로 부상한 부류인 이른바 “정치 기술주의자(political technologist)”로, 현장에서 유권자들과 직접 만나는 전통적인 유세 방식보다 모델과 알고리즘이 가진 힘을 무한 신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앨런과 판스는 “기존의 정치를 낡은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머니볼’식 접근을 맹신하는 분위기 속에서 여론 조사에서 나오는 트럼프 지지도를 그대로 믿지 말고 3~4%p는 높게 봐야 한다고 경고한 캠프 내 한 고문의 메모는 묵살됐다”라고 털어놓았습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데이터가 대단한 권위를 가진 시대에 살고 있지만, 데이터의 권위는 때로 지나친 확신으로 이어지고 지나친 확신은 교만을 낳는다는 것이죠. 로버트 맥나마라에서 리먼 브라더스, 스트롱 투게더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교훈을 뒷받침할 이야기들은 차고 넘칩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이 정도 교훈은 마음에 새기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데이터가 가진 내재적 불확실성을 보충하기 위해 우리는 전제를 의심해보는 대신 오히려 더 많은 데이터를 갖다 붙입니다. 이렇게 형성된 확신의 분위기가 우리를 달래고 호도하며, 때로는 위험할 수도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여기까지 제 말이 잘 이해가 가시나요? 좋습니다. 그러면 이제 기후변화 이야기를 해보죠.

지난 10월, 퓨 리서치센터는 기후변화의 정치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 문제에 큰 관심을 두고 있는 미국인은 고작 36%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과학자, 정치인, 활동가들이 지난 30년간 최선을 다해 문제의 심각성을 설파했음에도 미국인의 3분의 2가 어마어마한 전 지구적 재난의 가능성에 큰 관심이 없거나, 무지한 것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과학적인 논란은 이미 끝났습니다. 기후변화의 위협은 명백하고요. 이것이야말로 한쪽의 주장에 100%의 진실이 함께하는 드문 경우가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더 타임스”지의 환경 전문기자로 활동해 온 앤드루 레브킨은 작년, “과학자들의 이야기와, 기후변화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하는 활동가들의 이야기 사이의 간극이 점점 커지는 것을 목격했다.”고 털어놓은 바 있습니다. 과학 자체는 매우 양심적이지만, 과학의 권위를 내세워 어떠한 주장을 하는 이들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정부간 기후변화 협의체(IPCC)의 2014년 보고서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1880년 이후 지구의 기온이 올라간 사실, 그리고 인간이 기온 상승에 기여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동시에 그 두 가지를 제외한 “팩트”들은 가능성의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모델과 시뮬레이션도 매우 고도화된 것이지만 동시에 오류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과학을 부정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런 부분이 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죠.

이 시점에서 엄청난 항의의 목소리가 이미 들려오는 듯합니다. 하지만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세요. 기후변화 정책의 명분을 지지하는 분들이 특히 새겨야 할 또 하나의 교훈이 있으니까요. 레브킨의 말대로 기후변화에 대한 과장은 과학과도 맞지 않을뿐더러, 무관심한 대중의 참여를 끌어내는 데 오히려 역효과를 낳습니다.

이렇게 설명해보겠습니다. 과학에 대한 완벽한 확신이야말로 과학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고, 기후변화 관련 주장이 하나라도 거짓으로 드러나면 의심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요. 급진적이고 비용이 많이 드는 기후변화 정책 요구에 이념적인 배경이 없는지 묻는 것은 정당한 문제 제기입니다. 자신의 도덕적 우위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회의론자를 천하의 몹쓸 놈 취급, 바보 취급하는 노선은 상대를 설득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기후변화를 부정하거나, 사태의 심각성을 부정한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다만 평범한 시민들에게도 자만에 가득 찬 과학 만능주의를 의심할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도 인류의 역사가 정치권력과 손잡은 과학의 오류들로 얼룩져 있다는 사실 정도는 잘 알고 있습니다. 환경운동가라면 더더욱 꼭 알아야 할 사실이죠.

저는 이 칼럼에 폴란드 시인 체슬라프 미우오슈의 비문을 인용했습니다. 그는 확신의 악마성을 이해한 사람이었죠. 클린턴 캠프에도 확신은 조금 덜, 의심은 조금 더 있었더라면 그녀가 승리했을지 모릅니다. 기후변화 논의에서도 그 어마어마한 확신이 한 발 물러선다면, 더 많은 미국인이 이성적인 대화를 나누려 할지도 모릅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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