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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웨이, 다양성을 수용하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패션 디자이너들이 봄 신상을 쏟아내고 있는 가운데, 런웨이는 그 어느때보다도 다양성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백인 모델들이 상대적으로 많아진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5, 60년대에도 가끔, 아주 이례적으로 백인이 아닌 모델이 활동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계 미국인 모델들이 미국의 하이패션을 세계 무대로 끌어올린 것은 1973년 프랑스에서의 일입니다. 오늘날 “베르사유의 전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쇼는 베르사유 궁전 보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일종의 자선행사로 기획되어, 프랑스의 유명 디자이너들과 미국의 신진 디자이너들이 맞붙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여러가지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미국 디자이너들이 큰 주목을 받았던데는 참신한 아름다움과 우아함으로 충격을 선사한 흑인 모델들의 공이 컸습니다.

이날 이후 흑인 모델들은 반짝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8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 런웨이는 다시 백인 일색으로 돌아갔죠. 쇼의 캐스팅 담당자들이 원하는 “룩”은 오랫동안 아주 창백한 피부였습니다.

이런 현상은 21세기까지 그대로 이어졌고, 마침내 모델 에이전시 대표를 지낸 베선 하디슨과 수퍼모델 출신의 이만, 나오미 켐벨이 런웨이에 더 많은 유색인종 모델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다양성 연대(Diversity Coalition)”라는 단체를 꾸리기에 이릅니다. 이들은 백인 모델로 가득찬 런웨이가 현대사회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달 초, 업계 종사자의 온라인포럼 “패션 스팟(Fashion Spot)”은 2017 가을 런웨이 다양성 보고서를 출간했습니다. 해당 시즌에 열린 214개의 패션쇼를 분석한 결과, 유색인종 모델은 전체의 28% 정도였죠. 뉴욕, 런던, 밀라노, 파리 가운데는 뉴욕의 런웨이가 그나마 유색인종 모델 31.5%로 다양성 부문에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모델 캐스팅은 미묘한 문제입니다. 디자이너들은 각자 자신의 작품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죠. 다양한 인종 구성이 비전의 일부가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적인 결정이지, 개인적인 결정이 아니다”라는 것이 다양성 문제 제기에 대한 디자이너들의 모범 답안이었습니다. 2013년 “다양성 연대”로부터 지적을 받은 유명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는 작년에 무지개색 드레드락 헤어스타일을 한 백인 모델들을 런웨이에 세워 집중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문화적 전유(cultural appropriation)을 들어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향해 “흑인 여성들이 곱슬머리를 편다고 해서 이들을 비난하지는 않을 것 아니냐”며 입장을 굽히지 않다가 더욱 거센 비난을 받고 결국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2017년 가을 쇼에는 전체 모델의 3분의 2를 유색 인종으로 채웠죠.

“패션 스팟”은 인종 다양성 외에 모델의 나이, 트렌스젠더 모델이나 플러스사이즈 모델의 수와 같은 다른 다양성 요소들도 집계하기 시작했습니다. 플러스사이즈 모델의 지분은 이미 꽤 높아졌고, 돌체앤가바나는 최근 광고에 이탈리아 할머니들을 등장시켰죠. 이렇게 패션 업계는 서서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옳은 것일 뿐 아니라 영리한 사업 전략이기도 합니다. 패션의 소비층이 다양해지고 있으니까요. 런웨이의 구성이 현실과 비슷해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패션을 소비하게 될 것입니다. (N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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