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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가 정상이고 어디부터가 비정상일까? (1)

“도널드 트럼프가 절대로 평범한 사람 행세를 못 하도록 반드시 저지하겠습니다.”

힐러리 클린턴이 지난 미국 대선 유세 중 했던 말입니다. 많은 사람은 특히 트럼프 후보의 여성에 대한 발언에 경악하며 우려를 감추지 못했습니다. 우려의 핵심은 트럼프가 당선되면 그가 쏟아낸 여성 혐오 정서와 여성 비하 발언을 사회가 용인하는 셈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트럼프가 선거에서 이겨 신분이 대통령 당선자로 변한 뒤에는 그의 부적절한 언행을 정상적인 범주에 포함해 묘사하는 언론의 보도 행태가 비난을 샀습니다. 작가이자 평론가인 테주 콜은 최종 개표 결과가 나온 날 뉴욕타임스에 “도처에서 명백한 정상화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고 개탄했습니다. 뉴요커의 데이비드 렘닉 편집장은 선거 직후 CNN 방송에 출연해 모두가 트럼프를 이미 정상적인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듯한 모습을 보면 “내가 환각 상태에 빠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오랫동안 정상화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연구해온 예일대학교의 애덤 베어와 조슈아 노브는 뉴욕타임스에 쓴 칼럼에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것이 정상적인지 판단할 때 그것이 바람직한지 여부와 평균에 가까운지를 한데 뭉뚱그려 기준으로 삼는다.

분명 트럼프의 언행이 정신 나간 짓으로 보이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가 계속 비슷한 언행을 멈추지 않고 대통령에까지 당선되자,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은 단지 전형적인 트럼프다운 언행으로 보이는 수준을 넘어 어느덧 정상적인 것으로 비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시 말해 우리는 바람직한 현상이나 이상적인 상황을 정상으로 인식하는 동시에 어떤 일이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면 그 현상 또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곤 합니다. 그래서 트럼프의 언행을 더 많이 접할수록, 처음에는 트럼프의 기행을 심각한 문제라고 여기던 사람들도 점차 이를 딱히 이상할 것 없는 행동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겁니다.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꽤 많은 행동이나 태도가 이런 식으로 아주 쉽게 정상의 범주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비단 정치뿐 아니라 가정과 일터를 포함한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이러한 ‘정상화’ 기제는 우리의 신념과 가치 판단에 은밀하고 복잡한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대개 평범한 일상에 높은 가치를 둡니다. 특히 인생에 몇 번 있을까 말까 한 대사를 치르고 나면 늘 어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꿈꾸죠. 평범한 일상이란 결국 우리 삶의 기본이자, 우리가 편안하게 느끼는, 정상적인 범주 안에 있는 일상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이라는 개념은 객관적인 요소와 주관적인 요소에 도덕적, 사회적 판단이 온통 뒤엉켜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늘 바뀌곤 합니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거의 스토커처럼 끈질기게 구애하는 줄거리가 많다 보니, 여자들이 현실에서 집착에 가까운 행동을 더 잘 참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사회적 성(性)과 섹슈얼리티 전문가인 미시간 대학교의 줄리 리프만은 여성들에게 영화를 여러 편 보게 한 뒤 집착 행동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처럼 남자가 여자를 잊지 못해 계속 찾아 헤매다 끝내 만나는 식의 로맨틱 영화를 본 사람들은 남성의 공격성을 그린 영화나 자연 다큐멘터리 영화를 본 사람들보다 “누군가를 너무 사랑해 나타나는 집착에 가까운 행동”을 더 쉽게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한편, 정상과 비정상을 엄격히 나누어 이것이 고정관념에 가깝게 굳어지면 그 자체로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버밍엄 대학교의 문화이론가, 역사학자, 사회학자들이 모여 만든 “더 나은 미의 기준을 위한 모임(The Beauty Demands Network)”은 지난해 미의 기준에 관한 보고서를 한 편 발간했습니다. 보고서는 “무언가를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는 기준은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이기보다는 대개 가치 판단의 영역이고, 아름다움의 기준을 엄격하게 정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확대 재생산하는 것은 무엇보다 여성의 자존감을 해칠 위험이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정상적인 것으로 인지하는 범주는 대상을 표현하는 언어가 변하면서 확장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최근 언론이 “극우파”라는 단어를 “대안 우파”로 바꿔쓰면서 예전 같으면 사회적으로 대다수가 배척했을 극단적인 정치적 견해가 정상적인 견해 행세를 하게 됐습니다. ‘틀린 것’으로 배척되어야 할 견해가 의견을 개진하는 자유는 보장받아야 하는 ‘다른 것’으로 둔갑한 겁니다.

1990년대 정치학자 조셉 오버튼이 고안한 오버튼의 창문(Overton Window)이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이 이론은 정치에서도 정상화가 자주 일어난다는 근거로 활용됩니다. 특정 시기에 유권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책들과 정책의 바탕이 되는 정치적 의견을 모으면 오버튼의 창문을 통해 볼 수 있다는 뜻인데, 보통은 정치적 스펙트럼의 중간에 위치하지만,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 정책과 주요 사건에 따라 유권자의 마음이 바뀌면 왼쪽으로든 오른쪽으로든 움직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영국사회태도조사(British Social Attitudes Survey) 결과를 보면 1987년에는 정부가 복지 예산을 늘리고 복지 혜택을 확충해야 한다는 주장에 22%만 반대했지만, 금융위기가 불거진 이듬해인 2009년에는 무려 43% 국민이 복지 예산을 늘리는 데 반대했습니다.

지난 세기는 정치를 제외하더라도 우리가 매일 쓰는 말부터 옷 입는 법, 일터와 가정에서의 성 역할 등 수많은 분야에서 정상적인 것의 기준이 수도 없이 바뀌었습니다. 이에 따라 일반적인 사람들의 태도도 바뀌었는데, 예를 들어 사람들이 정신 질환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태도만 보더라도 크게 바뀌었습니다. 영국사회태도조사를 보면 2000년에는 내가 일하는 직장에서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 ‘정상인’과 똑같이 승진하고,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져야 한다고 답한 사람이 8%였는데, 2015년이 되면 이 수치는 15%로 높아집니다. 또 2000년에는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승진에서 배제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이 41%였는데, 2015년에는 35%로 줄었습니다.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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