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과학

진짜 멀티태스킹의 달인 “슈퍼태스커”

* BBC 라디오 4채널의 프로그램 “All in the Mind”을 진행하는 클라우디아 해먼드(Claudia Hammond)가 쓴 글입니다.

제 컴퓨터 화면에는 항상 적어도 창이 10개는 열려 있습니다. 저는 라디오를 들으며 문자를 보내는 동시에 누군가 대화를 하죠. 저야 이 모든 일을 높은 집중력으로 동시에 말끔히 처리해 낸다고 생각하지만, 과학적 근거를 살펴보면 아마도 제 생각이 틀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멀티태스킹에 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멀티태스킹을 잘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자칭 멀티태스킹의 귀재들을 모아놓고 간단한 시험을 해보면 멀티태스킹을 가급적 피하는 사람들보다 대개 시험 점수가 낮습니다. 꾸준히 연습한다고 능력이 향상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무난히 처리하거나 주의력이 여러 군데로 분산됐을 때 오히려 일을 더 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대단히 예외적인 이런 사람들의 존재를 우연히 발견했는데, 이들에게 자칭이 아니라 “타칭 멀티태스킹의 귀재”라는 뜻으로 슈퍼태스커(supertaskers)란 별명을 붙였습니다.

인지 신경과학자인 유타 대학교의 데이비드 스트레이어와 콜로라도 덴버 대학교의 제이슨 왓슨은 두 가지 이상의 일을 동시에 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스피커폰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모의주행 운전석에 앉아 운전을 시켰습니다. 난이도를 좀 높여 그냥 아무 이야기나 하면서 아무렇게나 운전하게 하는 대신, 앞 차와 정해진 간격을 유지하면서 스피커폰을 통해 나오는 암산 문제를 풀고, 암산 문제 사이사이에 제시한 단어 몇 개를 외우게 했습니다.

전체적인 실험 결과는 우리의 예상을 크게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다른 일에 정신이 팔리다 보니 반응 속도가 느려졌고, 실험 참가자들의 운전은 안전운전과는 거리가 먼 실수투성이었습니다. 그런데 딱 한 사람, 다른 모든 참가자보다 월등히 운전을 매끄럽게 한 참가자가 있었습니다. 암산 문제를 비롯해 신경을 흐트러뜨리는 어떤 일이 생겨도 이 사람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운전했습니다. 단 한 차례 실수도 없었습니다.

표본 집단이 너무 작아서 속단할 수 없다고 생각한 연구진은 200명을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다시 했습니다. 97% 참가자가 안전운전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가운데,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면서도 주의력이 흐트러지지 않는 참가자 네 명이 더 나타났습니다. 첫 실험에서 등장한 사람까지 총 다섯 명, 전체 실험 참가자 가운데 2.5%에 해당하는 이 “슈퍼태스커” 가운데 남자가 세 명, 여자는 두 명이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인지과학은 우리의 주의력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동시에 몇 가지 다른 일에 집중하는 건 가능하지만, 일정 한계를 넘어 처리해야 하는 일의 가짓수가 많아지면 어떤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제한된 인지 능력을 주어진 여러 가지 임무나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상황에 골고루 나누어 쓰다 보면 유한한 주의력이 고갈되는 겁니다. 운전 중 전화 통화를 하면 운전자가 주변 상황의 절반가량을 인지하지 못한 채 지나가며, 반응 속도가 느려져 사고가 날 확률이 높아진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상당히 많습니다. 하지만 슈퍼태스커는 달랐습니다. 이들의 비결은 뭘까요? 이들의 뇌에는 주의력이 분산되더라도 각각 하는 일에 지장을 받지 않게 하는 특수 장치라도 있는 걸까요?

뇌의 특정 부위가 주의력이나 인지 처리 과정에서 특별히 활성화돼 다양한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멀티태스킹의 귀재가 된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2015년 슈퍼태스커들의 뇌를 기능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촬영한 결과를 보면 오히려 정반대였습니다. 멀티태스킹을 할 때 분주히 돌아갈 것으로 예상된 뇌의 전액골 피질이나 전측 대상회 같은 부분에서 오히려 별다른 활동이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대단히 놀라운 발견 같지만,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고려하면 관찰 결과가 충분히 수긍할 만합니다. 먼저 우리가 어떤 기술을 연마하면 우리 뇌는 그 일을 점점 효율적으로 처리합니다. 에너지를 덜 쓰면서 같은 작업을 하는 거죠. 어떤 기술이 몸에 익을수록, 그 기술을 관장하는 뇌는 불필요한 활동을 줄입니다. 예를 들어 골프, 양궁, 카레이서에게 자기 종목에 관해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처리해야 하는 과제를 주었을 때 이들의 뇌는 같은 과제를 받은 일반인들의 뇌보다 훨씬 덜 활성화된 상태로 과제를 처리했습니다.

이제 나타나는 현상이 재미있는데, 우리 몸은 효율성을 높여 아낀 뇌의 에너지를 뇌 속 다른 곳으로 보냅니다. 즉, 주의력이 필요한 부분의 활동이 줄어드는 대신 우리가 공상에 잠기거나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막연히 그리곤 하는 기본 상태, 즉 평상시 뇌의 활동이 상대적으로 더 활발해지는 겁니다.

슈퍼태스커가 멀티태스킹을 곧잘 해내는 이유도 효율성을 발휘해 아낀 에너지를 다른 부분에 보내는 네트워크가 잘 갖춰진 뇌 구조 혹은 작동 방식에 있습니다. 뇌를 더 많이 쓰면 무조건 어떤 일을 더 잘하게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거꾸로 어떤 일을 많이 해서 익숙해지면 뇌를 효율적으로 조금만 쓰고도 일을 해내는 겁니다. 슈퍼태스커들은 자신이 이러한 능력자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대단한 능력이긴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막상 쓸모가 아주 많은 능력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연구진은 슈퍼태스커가 특별히 잘할 수 있는 직업, 혹은 특별히 끌리는 업무가 무엇인지를 찾을 계획입니다.

슈퍼태스커들이 특히 공통으로 못 하는 일이 있을까요? 멀티태스킹을 잘하는 대신 다른 어떤 능력이 부족하다는 연구 결과는 아직 없습니다. 슈퍼태스커가 왜 이렇게 흔치 않은지도 연구 대상입니다. 왓슨은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잘 처리하는 기술이 쓸모있는 능력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 현대사회 들어서부터로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지 모른다고 추측합니다.

멀티태스킹 능력을 배워서 익힐 수 있을까요? 아마 그렇지 못할 겁니다. 무슨 일이든 연습하면 늘게 마련입니다. 하나씩 익혀갈 땐 특히 그렇죠. 하지만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는 건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해도 좀처럼 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전체의 2~3%에 해당하는 슈퍼태스커라고 생각하시나요? 태즈메니아 대학교와 유타 대학교 연구진이 BBC 독자들을 위해 만든 슈퍼태스커 테스트에 도전해 보세요. 모바일로는 할 수 없고, 컴퓨터 화면을 보고 하셔야 합니다. 40분 정도 소요되는데, 최대한 집중해서 시험 보는 자세로 할 수 있을 때 해보시길 권합니다.

슈퍼태스커 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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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퍼민트에서 주로 세계, 스포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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