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과학

[EDGE: 더 널리 알려져야 하는 과학 개념은?] 1.리처드 도킨스: 유전자에 새겨진 사자의 서(The Genetic Book of the Dead)

(역주: Edge 재단은 매년 한 가지 질문을 정해 석학들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올해의 질문은 “더 널리 알려져야 하는 과학 개념은?”입니다.)

리처드 도킨스: 진화생물학자, 옥스포드 대중 과학의 이해 명예교수, 얀 옹과 함께 조상 이야기(The Ancestor’s Tale), 저서: 이기적 유전자, 만들어진 신, 어느 과학자의 탄생

유전자에 새겨진 사자의 서(The Genetic Book of the Dead)

자연 선택 이론은 모든 생명체가 말그대로 유전자를 통해 그들의 조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 유전자는 그들의 조상이 당시의 환경에 적응할 수 있게 만들어준 유전자입니다. 오늘날의 환경이 당시의 환경과 크게 다르지 않는 한, 현대의 생명체들도 그 유전자를 자신의 자손들에게 그대로 물려줄 것입니다. 특정한 생명체의 ‘적응’ 곧, 해부학적 구조, 본능, 생체 내 화학반응 등은 그들의 조상이 살던 환경에 정확하게 대응되며, 이는 열쇠와 자물쇠의 관계와 같습니다.

열쇠가 주어질 경우 우리는 자물쇠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특정한 생명체의 유전자를 통해 우리는 그 생명체의 조상들이 살았던 환경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동물학자들은 처음 보는 동물이라 하더라도 몇 가지 사실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다리의 물갈퀴는 이들이 수중생활을 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 생명체의 등에 그려진 보호색은 곧 그들이 사는 환경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열쇠는 겉으로는 드러나있지 않습니다. 상당수는 세포내 화학적 반응에 숨어 있습니다. 이 모든 정보가, 물론 더 해독하기는 어렵지만, 유전자 속에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유전자를 적절하게 해석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그 생명체가 살아온 고대 세계의 청사진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유전자에 새겨진 사자의 서(The Genetic Book of the Dead)”입니다.

물론 그 책의 내용에는 가까운 과거의 비중이 더 클 수 있습니다. 낙타의 유전자에는 사막 지역의 최근 수천 년 정보가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포유류의 조상이 육지로 올라오기 전, 데본기의 바닷속에 관한 정보도 있습니다. 갈라파고스 섬의 자이언트 거북이를 생각해 봅시다. 오늘날 모든 육지 거북이의 조상은 수중 거북이이며, 따라서 갈라파고스 거북이의 유전자에는 수중환경에 관한 정보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모든 수중 거북이의 조상인 트라이아스기의 육지 거북이이며, 또 다른 모든 네발짐승처럼 이 트라이아스기의 거북이들 역시 물고기를 조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따라서 갈라파고스 자이언트 거북이의 유전자 책은 먼저 수중환경에 맞춰 쓰여졌다가 다시 육지에 맞춰 쓰여진 후, 다시 수중에 맞춰 쓰여지고 마지막으로 육지에 맞추어 쓰여졌을 것입니다.

어떻게 이 ‘사자의 서’를 읽을 수 있을까요? 나도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것이 내가 이 용어를 만들어낸 이유입니다. 곧, 다른 사람들이 이 분야를 연구하도록 자극하기 위해서입니다. 대략적인 계획은 있습니다. 포유류의 예를 들어보죠. 먼저 물 속에 사는 모든 포유류들, 곧 고래, 듀공, 물쥐, 수달 등을 모읍니다. 마찬가지로 낙타, 사막 여우, 날쥐 등 사막에 사는 포유류를 모읍니다. 원숭이, 다람쥐, 코알라, 날다람쥐 등 나무에 사는 이들이 있고, 땅 속에 사는 여러 종류의 두더지들도 있습니다. 이들을 형태적으로, 생화학적으로, 유전적으로 등 가능한한 다양한 특징을 모두 모아 분류한 후 수중 생물 이나 사막 생물 등 환경이 같은 동물들의 공통점을 컴퓨터를 이용해 찾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이니 수학자에게 물어야겠지요.) 물갈퀴처럼 분명한 특징도 있을 것이며, 눈에 띄지 않는 특징도 나타날 것입니다. 가장 눈에 띄지 않는 특징은 유전자 안에 있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유전자에 새겨진 사자의 서를 읽을 수 있게 됩니다.

이 사자의 서는 고대의 환경을 알려줄 뿐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역사에 관한 정보를 줍니다. 인류학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내 학생이었고 나와 같이 책을 쓴 얀 옹(Yan Wong)은 나의 유전자를 융합분석(coalescence analysis)하는 방법으로 내 조상이 약 6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이주해왔음을 보였습니다. 이는 공저자의 유전자 책(Genetic Book)을 분석해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을 밝힌 유일한 경우일 것입니다.

(EDGE)

원문 보기

veritaholic

Recent Posts

[뉴페@스프] “레드라인 순식간에 넘었다”… 삐삐 폭탄이 다시 불러온 ‘공포의 계절’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12 시간 ago

[뉴페@스프] 사람들이 끌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름 결정론’ 따져보니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2 일 ago

‘예스맨의 절대 충성’ 원하는 트럼프…단 하나의 해답 “귀를 열어라”

트럼프 2기 행정부 인사가 속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대부분 트럼프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보여준 이들로, 기존 공화당원들…

3 일 ago

[뉴페@스프] “삶이 송두리째 흔들릴 것” 미국 대선판에 등장한 문건… 정작 묻히고 있는 건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5 일 ago

“뻔한 정답 놓고 고집 부린 결과”… 선거 진 민주당 앞의 갈림길

선거가 끝난 지 일주일이 다 돼 가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승리를 거둔 트럼프는 2기 행정부 출범을…

6 일 ago

[뉴페@스프] 독서의 대가로 돈을 준다고? 중요했던 건 이것과 ‘거리 두기’였다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1 주 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