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히 조용하며 자기성찰적인 예술가였던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천재성이 세간에 드러나기까지는 몇백 년이 걸렸습니다. 한때 그가 무명이었다는 사실을 알기 어려울 정도로, 오늘날 그는 추앙받고 있습니다.
이달 규모가 큰 베르메르 전시가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열리는데, 상설소장품으로는 눈을 많이 써야 하는 작업에 몰두하는 여성을 묘사한 “뜨개질하는 여인(The Lacemaker), 1669-70″이 있습니다. 단단한 손끝이 만드는 조그만 작품에그녀의 시선이 내리꽂히는 와중에 우리의 눈은 정교하게 빛나는 구체적 사물들, 푸른 옷에 걸친 밝고 붉은 실, 은빛 구슬, 테이블을 덮은 천의 결, 섬세하게 말린 머리카락 등을 둘러봅니다.
베르메르의 다른 작품들처럼 이 이미지는 근대 문화 전반에 어려 있습니다. 이자벨 위페르가 주연한 프랑스 고전영화의 제목은 여기서 따온 것입니다. 트레이시 슈발리에로부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베르메르의 “델프트 풍경”을 등장시킨 마르셀 프루스트에 이르기까지, 이 17세기 화가를 향한 선망은 멈추지 않습니다.
베르메르에 깊이 매료된 오늘날의 예술 애호가들을 생각하면 오늘날 미국인의 82%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작가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사실이 충격적으로 여겨집니다. 아마, 영화를 그렇게 자주 보러 가지는 않나 봅니다. 1850년 이전 비슷한 설문을 했다면 “베르메르”라 응답한 이들은 1% 남짓에 불과했겠지요.
그가 잊혀졌다는 건 사실이 아닙니다 — 그럼 그는 당대 유명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베르메르는 17세기 네덜란드 공화국에서 돈을 위해 일했던 수많은 화가들 중 하나였을 뿐입니다. 그는 렘브란트 같은 스타는 아니었습니다. 자전적 작품인 “회화의 기예(The Art of Painting)”에서 그가 자신과 자신의 예술을 진지하게 대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으나, 그는 평생을 델프트에서 보냈고 오직 35점의 작품을 남겼으며 궁핍에 시달리는 가족들을 두고 1675년에 사망했습니다.
베르메르의 작품에 서린 은밀함은 그가 살았던 화려한 바로크 시대와 그에 이어지는 낭만주의 예술이 추구하는 이상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베르메르는 그저 또 하나의 “장르 화가”이자 루브르 전시가 강조하게 될 콘텍스트인 “일상을 그린 소박한 작가”로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1930년 한스 반 미거렌이 그의 작품을 위조한 사건이 그 당시 못지않게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위작 스캔들로 남았을까요?
그를 망각에서 건져올린 건 19세기 프랑스 아방가르드 작가들이었으니, 파리에서 베르메르를 추앙하는 데엔 일리가 있습니다. 그의 작품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이나 “작은 거리”를 가령, 에두아르 마네의 “폴리-베르제르 주점(1882)”이나 카미유 피사로의 “밤의 몽마르트르 거리(1897)”와 비교한다면 어째서 파리 보헤미안들이 베르메르의 회화에 주목했는지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근대 초기 예술은 일상 속 평범한 이들을 깊이 들여다보려 했습니다. 베르메르의 (우리로서는 단지 그 내용을 상상하기만 할 따름인) 편지 읽는 여인은, 드가의 작품 속 압생트를 마시는 여인이 보여주는 멜랑콜리에 대한 성찰을 공유합니다.
들라크루아와 잉그레를 포함하는 근대 작가들에 더하여 베르메르를 지지했던 1848년 혁명의 베테랑이자 급진적 비평가인 토레 뷔르거의 노력 덕분에, 이들 프랑스 예술가들은 베르메르를 알게 되고 존경했을지 모릅니다. 베르메르의 재발견은 근대 프랑스 예술의 역사와 그 맥을 같이합니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이 일상과 사물을 소중히 여겼듯, 마네 시대의 예술가들 역시 가장되지 않은 진짜배기에 그 시선을 기울였습니다. 마네와 앙리 팡탱 라투르는 심지어 그들이 그리는 꽃에 200년 전 네덜란드 화가들이 그린 꽃의 섬세함을 담아냈습니다. 베르메르는 단지 위대한 예술가가 아닙니다. 그는 위대한 근대 예술가입니다.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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