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문화세계정치

아프리카계 미국인 예술가들의 재발견

역사 속에서 그림이란 틀 위에 펼친 캔버스 위에 그려진 겻이었습니다. 샘 길리엄(Sam Gilliam)의 1970년 작품 “케러셀 체인지(Carousel Change)”는 예외입니다. 다섯 개의 매듭 아래로 늘어뜨린 천은 밝은 노랑, 주황, 분홍색으로 빛나고 반쯤 접힌 돛처럼 접힌 상태죠. 이 작품은 아프리칸 아메리칸 미술 작품 수집가로 잘 알려진 패멀라 조이너(Pamela Joyner)의 캘리포니아 자택에 걸려있습니다. 미국의 유명 큐레이터인 니콜라스 컬리넌(Nicholas Cullinan)은 샘 길리엄을 “현재 살아있는 미국 추상미술가 가운데 가장 위대한 한 사람”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도 이 82세의 노작가를 모르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까닭은 무엇일까요?

조이너를 비롯한 몇몇 수집가들은 미국의 미술관에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작품을 더 많이 걸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현재 수퍼스타들의 작품 뿐 아니라 과거의 잊혀진 예술가들의 작품도 함께 말이죠. 이들의 노력은 서서히 결과를 내고 있습니다. 2015년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에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 알마 토머스(Alma Thomas)의 작품을 새로 구입해 걸었습니다. 토머스의 작품이 훨씬 유명한 백인 남성 작가 두 사람의 작품을 대체한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선언입니다.

9월 24일에 개관하는 워싱턴DC에 아프리칸 아메리칸 역사문화박물관 로비에는 샘 길리엄의 설치 작품이 들어섭니다. 스위스의 바젤 아트뮤지엄 역시 길리엄 전시회 개최를 앞두고 있고, 프랑스의 께 브랑리 박물관도 아프리칸 아메리칸 미술 전시회를 열 계획이며, 2017년에는 테이트모던에서 20세기 중반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될 예정입니다.

미국 예술사에서 길리엄이나 토머스 같은 이들이 잊혀진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길리엄은 작품 활동 초기에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드물게 소개전을 개최한 작가이고, 토머스는 1972년 흑인 여성 작가로서는 최초로 휘트니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60년대부터 80년대에 걸쳐 아프리카계 추상미술가들은 딜레마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기존 미술계는 흑인 작가들에게 흑인들의 주제를 다루기를 기대했고, 흑인 커뮤니티는 이들에게 흑인들의 이미지를 고취시킬 수 있는 작품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에 비해 훨씬 작았던 미술 시장에서 아프리카계 작가들은 지속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기 어려웠습니다.

40년이 지난 지금은 판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케리 제임스 마샬(Kerry James Marshall), 글렌 리건(Glenn Ligon), 카라 워커(Kara Walker) 등 신세대 작가들이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내년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미국을 대표할 작가 역시 LA 출신의 아프리카계 미술가인 마크 브래드포드(Mark Bradford)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전 세대 작가을 언급하고 논의의 장으로 끌어내는 역할을 하면서, 동시대 작품에서 시작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미술품 수집가들의 선택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시장은 언제나 저평가되어 있는 작품에 언제나 배가 고파있으니까요. 실제로 젊은 작가들의 성공과 함께 이전 세대 흑인 미술가들의 작품에 대한 수요와 거래 가격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습니다. 작년 12월에는 50년대 스튜디오35의 유일한 흑인 작가였던 노먼 루이스의 작품 한 점이 백만 달러에 조금 못 미치는 거래로 팔리면서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한편, 어떤 의미에서 시장 거래가보다 중요한 것은 미술관들의 선택입니다. 독지가와 대여 작품에 대한 미술관의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은 현재 전세계적인 현상입니다. 그리고 젊은 세대의 큐레이터들은 과소대표된 집단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수집가들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습니다. 은행가인 레이먼드 맥과이어(Raymond McGuire)나 수집가 A.C. 허친스(A.C. Hudgins)와 같은 이들이 아프리칸 아메리칸 미술에 관심을 보이고 있죠.

패멀라 조이너는 30년 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사상 최초의 흑인 큐레이터였던 로리 심즈(Lowery Sims)의 영향으로 역사 속에서 잊혀진 아프리카계 작가들을 찾아내고 조명하는 것을 인생의 업으로 삼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런 이들의 노력으로 미술관들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현상을 미적 가치보다 정체성 정치가 앞선 사례로 여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더 많은 이들에게 최근의 변화는 미술관 역시 중립적인 공간이 아니었음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미술관을 만들어가는 힘은 새로운 것 뿐 아니라 오래된 것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입니다. 이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그린 또 다른 미국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리고 길리엄 같은 이들이 어떻게 미술의 언어를 바꾸어왔는지와 같은 보다 폭 넓고 복잡한 이야기를 시작할 떄입니다.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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