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창조적일까요? 한 번 생각해 보세요. 화려한 깃털의 열대 새들, 온갖 다양한 무늬와 모양의 나뭇잎들, 교묘한 전략을 가진 미생물들, 산을 오르고 바닥을 기고 하늘을 나르며 물 솟을 헤엄치는 눈부실 정도로 많은 생물들 말입니다. 다윈은 이런 생명의 “위대함”을 “가장 아름답고 가장 경이로운 끝없는 형태”라고 묘사했습니다. 이정도면 자연이 창조적이라는데 동의하시나요?
하지만, 이 모든 놀라움이 그저 무작위 변이를 자연선택이라는 체로 거르는 맹목적인 진화에 의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다윈의 이론이 자연의 이런 불가사의할 정도로 끝없는 창조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당신이 미개한 창조론자가 되거나 신의 섭리를 믿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취리히 대학의 진화생물학자 안드레아 와그너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윈의 이론은 당대에 가장 지적으로 중요하고 업적입니다. 어쩌면 역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업적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진화에 있어 가장 커다란 미스테리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사실 그는 그 문제를 풀 시도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와그너가 말하는 것은 어떻게 진화에서 혁신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와그너는 이를 “어떻게 이 생명으로 가득찬 세상이 만들어졌는가”라고 표현합니다. 자연 선택은 다양한 변이가 이미 존재할 때 가지치기를 통해 환경에 가장 적합한 적응을 찾는 데에는 믿을 수 없을만큼 강력한 도구입니다. 하지만 생물학자 휴고 드 브리스는 1905년 이렇게 썼습니다. “자연 선택은 적자의 생존(survival)은 설명할지 모르지만, 적자의 탄생(arrival)은 설명하지 못한다.” 지난 수년 동안 와그너와 다른 몇몇 과학자들은 어떻게 진화에서 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지를 연구해왔습니다. 이들의 연구 덕분에 우리는 이제 진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만이 아니라, 진화가 왜 작동하는지, 그리고 무엇이 진화를 가능하게 하는지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진화론에 대한 흔한 오해 중에는 진화 과정에서 새로운 특성이 등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유전자에 일어나는 임의의 돌연변이 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전자 돌연변이는 그 유전자와 관련된 특성을 생존에 덜 효율적으로 만들며, 어떤 돌연변이는 치명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연히 그 특성을 강화하는 돌연변이가 만들어지면 이 돌연변이를 가진 행운의 개체는 살아남게 되고 자신의 유전자를 집단에 퍼뜨리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문제는, 개체의 특성이 특정 유전자들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특성은 “유전자 회로(gene circuits)”라고도 불리는, 서로의 활동을 통제하는 수많은 유전자들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네트웍에 의해 결정됩니다. 당신은 어쨌든 진화에는 충분히 긴 시간이 있으니 언젠가는 “효율적인” 유전자 회로가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계산 결과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진화발달생물학은 인간을 포함한 여러 복잡한 생명체들이 서로 다른 몸을 가진 이유가, 이들이 다른 유전자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혹스 유전자 회로(Hox gene circuit)라는 공통의 기본회로를 바탕으로 한 서로 다른 유전자 상호작용과 표현형의 네트웍 때문임을 발견했습니다. 뱀을 인간으로 만들기위 해 필요한 것은 완전히 다른 유전자들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같은 종류의 혹스 유전자회로에 다른 패턴의 연결이 필요할 뿐입니다. 이 두 척추동물은 그 회로에 약 40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40개의 유전자가 서로를 통제하는 가짓수를 계산해보면(예를 들어 활성화 혹은 억제만을 고려할 때) 가능한 회로의 수는 10^700에 달합니다. 이 숫자는 관찰가능한 우주의 모든 입자의 수보다 훨씬 큰 수 입니다. 그렇다면 맹목적으로 일어나는 진화가 우연히 혹스 유전자회로에서 “뱀”이나 “인간”에게 가능한 특성(또는 표현형)을 찾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어떻게 진화는 캄브리아기 어류의 혹스 네트웍을 인간에게 맞는 네트웍으로 만들 수 있었을까요?
진화에서 혁신이 일어나기 위해 진화가 탐색해야할 무지막지하게 많은 가능성을 가진 공간은 유전자 회로만이 아닙니다.예를 들어 대사 네트웍(metabolic network)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습니다. 유기체는 어떤 다른 연료로부터 에너지를 얻어야 합니다. 미생물의 대사는 주로 포도당, 에탄올, 시트르산 등에 의존합니다. 이상적으로는 효소의 대사 기관이 하나 이상의 연료로 움직일 수 있다면, 이들의 생존 가능성은 커질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연료에 맞게 진화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흔한 대사 연료들만 고려하더라도, 가능한 대사 방법의 수는 천문학적입니다.
결합방식의 수 때문에 탐색 공간이 폭발적으로 가짓수가 늘어나는 문제는 단백질 역시 가지고 있습니다. 단백질 하나는 특정한 형태로 연결되어 있고 접힌 수 십개에서 수 백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연에는 20개의 서로 다른 아미노산이 있습니다. 이들 아미노 산을 100개를 연결해 단백질을 만드는 방법의 수는 10^130입니다. 그러나 진화를 위한 40억년이라는 시간은 10^50 개의 단백질을 만들 시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잘 작동하고 있는 단백질들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요?
그리고 RNA 가 있습니다. 한 때 염기쌍이라 불리는 유전자의 화학적 구성요소를 생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단백질로 바꾸어주는 전령으로만 여겨졌던 RNA 는 오늘날 그보다 훨씬 중요한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RNA 는 정보를 보관하는 유전자를 흉내낼 수 있으며, 또한 특정한 형태로 접혀져 화학 반응의 촉매가 되는 단백질 역시 흉내낼 수 있기 때문에 초기 생명체에 필요했을 다기능 분자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 우리는 RNA 분자가 유전자 활성을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유전자는 다른 유전자와 RNA 를 통해 상호작용하며 이는 다른 유전자의 표현형에 대한 스위치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RNA 역시 진화에 있어 셀 수 없이 많은 수의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경우에 대해, 질문은 동일합니다. 와그너는 이를 현대 진화론과 유전학의 “불편한 진실(dirty secret)”이라고 부릅니다. 진화는 어떻게 해서 전체 가능한 선택들 중 일부 조차도 탐색할 방법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작동하는 해답을 찾을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진화는 어떻게 해서 당장 존재하는 해답에서 더 나은 새로운 해답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었을까요? 즉, 진화는 어떻게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것일가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단순합니다. 그것이 보기보다는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진화 과정에서 탐색해야할 공간이 그 자체로 놀라운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며, 이는 다윈도, 그리고 다윈의 진화론을 유전학과 결합시킨 그의 후계자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수십억개의 그물
어떻게 진화가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지를 연구하기 시작한 최초의 학자들 중에는 오스트리아의 과학자 피터 슈스터가 있습니다. (그는 물리학자나 화학자, 생물학자라고 불릴 수 없었기 때문에 단순히 “과학자”라 불리는 사람 중의 한 명입니다.) 그는 생명체의 진화가 RNA 로 시작했을 – 소위 RNA 세상 – 가능성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RNA 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1970년대에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촉매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제대로된 형태로 접혀야만 합니다. 단백질의 경우 이 형태는 기본 구성요소들의 연결 순서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는 일종의 유전형 – 표현형 (genotype – phenotype) 문제와 비슷합니다. 여기서 유전형은 RNA 의 순서가 되며 표현형은 접힌 형태가 됩니다. 표현형은 생명체의 환경에 대한 적응을 결정하게 되며, 곧 자연선택의 기준이 됩니다. 자연선택의 근원은 유전형이지만 – 후손에게 전달되는 것은 유전자라는 측면에서 – 표현형과 유전형 사이의 관계에는 수많은 미스테리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 문제는 수많은 표현형 특성들이 어떤 유전형에 기록되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극히 어렵다는 점에서, 후기-유전학 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오늘날 가장 커다란 미스테리일지 모릅니다.
1990년대 슈스터와 그의 동료는 RNA 의 순서로부터 이 RNA 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간단한 형태 (이는 염기의 쌍을 통해 각 부분이 다른 부분과 어떻게 붙는지를 말하며 2차구조라고 불립니다)를 예측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100개의 염기로 만들 수 있는 RNA의 경우 10^23 개의 형태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진정 놀라운 것은 이들의 형태와 염기 서열과의 관계였습니다.
간단히 생각하면, 비슷한 염기 서열들은 비슷한 형태로, 곧 비슷한 표현형을 가질 것으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서열 공간, 곧 다차원의 공간으로 점 하나가 서열 하나에 대응되는 그런 공간은 여러 종류의 “형태 왕국” (아래 그림 a를 보세요)로 나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슈스터가 발견한 것은 이와 달랐습니다. 곧, 매우 다른 종류의 RNA의 서열들이 같은 형태로 접혔습니다. 즉, 완전히 다른 염기 순서로도 같은 형태의, 곧 같은 촉매 역할을 하는 RNA 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런 표현형의 관점에서는 형제인 이들이 서열 공간에서는 서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또한, 같은 종류의 형태를 연결한 네트웍은 거의 모든 서열 공간을 덮고 있었습니다. 한편, 작은 염기 서열의 연속된 변화를 통해 같은 형태를 유지하면서 마치 기차역을 따라 가듯 염기 서열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이런 돌연변이는 적응적으로 이익도 손해도 아니기 때문에 중립 돌연변이(neutral mutation)라 불립니다. (실은 어떤 돌연변이가 정확하게 중립이 아니라 미묘하게 적응도를 낮춘다 하더라도, 많은 돌연변이들이 그렇듯이, 이들은 마치 아-중립 돌연변이인 것처럼 집단 내에 오랜 시간 동안 존재합니다.)
위의 사실들은 10^23개의 형태에 대해 모두 성립했습니다. 곧, RNA 서열 공간은 다수의 서로 엮인 네트웍으로 서로 물려 있으면서도 교차하지는 않는 방식으로 전 공간을 덮었습니다. 이는 고차원 공간의 한 점인 어느 염기서열의 수많은 이웃 점 들, 곧 작은 변이에 의해 도달가능한 염기서열에 완전히 다른 종류의 형태들이 존재하는 동시에, 제대로 된 길을 따라 간다면 같은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또한 완전히 다른 염기서열에 도달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아래 그림 b 를 보세요.)
이런 사실은 RNA 염기서열 공간에 대해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해줍니다. 첫째, 같은 기능을 하는 수많은 염기 서열이 존재합니다. 만약 진화가 자연 선택을 통해 특정한 기능을 “찾는”다면, 그 기능을 하는 수많은 해답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 광대한 서열의 다차원 공간은 탐색가능합니다. 이는 표현형의 변화 없이 유전형을 계속 중립적으로 바꿔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점이 RNA 를 진화가능하게 만든 것입니다. 진화가 수많은 종류의 변이를 모두 시도해 볼 시간이 충분했기 때문이 아니라, 제대로 작동하는 수많은 해답이 있고, 이들이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진화는 작동했습니다.
스패인 국립 생명기술연구소의 수잔나 만루비아는 RNA 의 이차구조에 대한 보다 정교한 계산기반 연구를 수행했으며 유전형-표현형 지도에 수많은 중복이 존재한다는 위의 가설을 확인했습니다. 그녀는 RNA 의 이러한 특성이 생명체가 발생하던 초기의 지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유전형에 복수 정답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RNA의 작은 변이에도 화학적 기능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RNA 세상을 등장하게 만든 핵심 요소일 수 있습니다.”
(노틸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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