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목적 중의 하나는 학생들의 자유로운 의견 교환이며, 이를 위해서는 생각의 자유와 다양한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학계, 특히 사회과학 분야에는 일반 대중에 비해 과도하게 진보적, 자유주의적 목소리만 존재하며, 보수적인 주장은 거의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 조사에 따르면, 사회심리학자들 중 거의 20%가 보수적 관점의 논문이나 과제를 거부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진정 대학에서 다양한 의견을 원한다면, 우리는 보수주의자들이 왜 학계에 부족한지를 물어야 합니다.
한 가지 가설은 보수주의자(이하 ‘보수’)는 진보주의자(이하 ‘진보’)들에 비해 새로운 경험이나 다양성을 덜 추구하며 호기심 역시 많이 가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보수가 진보에 비해 호기심이 부족하다면, 지식의 경계를 넓히고 새로운 답을 찾는 능력이 필요한 학계에 그들이 부족한 이유가 설명이 됩니다. 그들이 개방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학계에서의 영향력을 키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가설을 지지하는 근거들이 있습니다. 경험에 대한 개방성은 중요한 성격 특성의 하나입니다. ‘나는 다른 나라의 역사와 정치를 배우는 데 흥미를 가지고 있습니다’라든지 ‘나는 나 자신을 다소 별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와 같은 문항이 포함된 조사를 통해 이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이 검사에서 높은 점수를 기록한 이들은 호기심, 상상력, 그리고 새로운 사람과 생각에 대해 관심을 더 많이 가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러 연구가 진보가 보수에 비해 경험에 대한 개방성과 호기심 특성을 더 많이 보인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이는 자신을 평가한 연구, 다른 이들에 의한 평가를 이용한 연구, 그리고 참가자의 생활공간(기숙사)을 이용한 연구에서 모두 드러난 결과입니다. 진보적인 학생들은 기숙사에 더 다양한 종류의 책과 음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치적 태도와 개방성 사이의 관계는 분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낮은 개방성은 흑인, 이민자, LGBT 그룹에 대한 편견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한 연구에서는 낮은 개방성 점수를 기록한 이들은 흑인 구직자의 지적 능력, 책임감, 정직성을 더 낮게 평가했습니다. 이런 연구들은 개방성이 곧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관계 있음을 보여줍니다. 만약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대학에서 진보가 득세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하지만 보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유가 실은 높은 개방성을 가진 이들이 사실은 그렇게 열린 자세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심리학자 존 챔버스, 자렛 크로포드, 조프리 웨더렐, 크리스틴 레이나와 내가 같이 한 연구에서 우리는 개방성과 편견 사이의 관계에 대한 다수의 연구가, 편견의 대상으로, 상대적으로 진보적이고 ‘비관습적’인 집단을 대상으로 삼았음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개방성에 높은 점수를 기록한 이들이 진보와 비관습적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높은 개방성을 가진 이들이 더 관대한 것으로 나타난 이유는 어쩌면 그들이 자신과 같은 가치관을 가진 이들에게만 관대함에도 불구하고 나타난 결과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낮은 개방성을 가진 이들이 편견을 가진 것으로 나타난 것 역시, 그들이 자신과 같은 가치관을 가지지 않은 이들에게 편견을 보였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이는 개방성이라는 특성이 자신과 비슷한 사회적 집단 안에서만 발휘되는 것이며, 모든 이에게 열린 자세를 뜻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진보주의 학자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의 이 말은 매우 정확한 말이 됩니다. ‘우리는 우리와 다르게 생긴 사람들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들이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진 한.’
이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미국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네 가지 연구를 분석했습니다. 참가자들의 개방성 검사를 받았고, 30여 개에 이르는 사회적 집단에 대한 편견 역시 조사받았습니다. 이 집단들 중에는 관습적(전통적 가족제도 지지자, 카톨릭, 공화당 지지자 등) 집단에서 비관습적(무신론자, 게이와 레즈비언 등)집단에 이르는 다양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기존 연구와 마찬가지로, 낮은 개방성을 가진 이들이 비관습적 집단에 편견을 가진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는 예상된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는 바로, 관습적인 집단에 대해서는 개방성과 편견 사이의 연관성이 존재하지 않거나 오히려 높은 개방성을 가진 이들이 관습적인 집단에 대해 더 많은 편견을 보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높은 개방성을 가진 이들은 자신과 다른 태도와 가치관을 가진 이들에게도 편견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할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높은 개방성을 가진 이는 자신이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근본주의자 집단에 대해 자신이 동의하는 다른 집단보다 더 편견을 가지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 연구 결과 이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수행한 두 연구에서, 주장에 대한 동의 여부와 편견 사이의 관계는 높은 개방성을 가진 이들에게서 더 크게 나타났습니다. 이는 곧, 앞서의 예로 이야기 하자면, 높은 개방성을 가진 이들은 상대가 자신과 다른 태도와 가치관을 가진 근본주의자로 판단되는 순간 더 강한 편견을 보임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높은 개방성을 가진 이들은 그저 불관용(엥똘레랑스)에 대해서만 불관용을 보이는 것일까요? 즉, 그들은 관습적인 집단이 다른 집단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로 드러났습니다. 우리는 그 근거를 보였습니다. 물론 낮은 개방성을 가진 이들도 불관용에 대해 불관용을 보였습니다. 또한, 그들 역시 비관습적인 집단이 다른 집단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최근 한 빵집이 게이 결혼식을 위한 결혼 케이크를 만들지 않겠다고 한 사건 등 끊임없이 발생하는 종교적 권리에 대한 논쟁을 볼 때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개방성은 결국 사회적 집단이 관습적인가 그렇지 않은가라는 기준 안에서만 작동하는 것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개방성을 중시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이는 분명 조금이라도 더 옳은 관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연구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동의하지 않는 이들에게 편견을 가지지 않게 만드는 것은, 아무리 열린 자세를 가진 이들이라 하더라도 극히 어렵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물론 편견과 차별적 행동이 이성적 – 혹은 도덕적 – 반응이라는, (ISIS 처럼)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도 있습니다. 즉, 백인 우월주의자 같은 정치적 집단은 대학에서의 정치적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대학에는 성, 민족, 계급, 민족 등의 다양성 뿐 아니라 다양한 정치적 관점을 가진 집단이 공존해야 합니다.
진보는 개방성을 높게 평가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정치적 다양성을 허용하지 못하고 있음을 우리는 보였습니다. 대학에서 성, 계급, 인종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정치적 다양성 역시 그만큼 중요한 일입니다. 그저 개방성에만 의존하는 것은 대학이 갖추어야 할 치열한 논쟁의 장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A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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