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친구 마이클 베소를 가리켜 과학에 관한 아이디어를 나누기에 “유럽 최고의 대화상대”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들은 취리히에서 대학을 같이 다녔으며, 특허청에서도 같이 근무했습니다. 1955년 봄 베소가 세상을 떠났을 때, 자신의 시대가 끝나고 있음을 알았던 아인슈타인은 베소의 가족들에게, 오늘날에는 유명해진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는 이 이상한 세상을 나보다 조금 먼저 떠났을 뿐입니다. 여기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신념을 가진 물리학자들에게 과거와 현재, 미래의 구분은 끈질기게 되풀이되는 환상에 불과합니다.”
아인슈타인의 말이 위로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많은 물리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의 입장이 현대과학의 두 성과에 기인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아인슈타인 본인의 일반상대론과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Standard Model)입니다. 이 두 이론의 바탕이 되는 법칙들은 시간에 대해 대칭입니다. 이는 ‘시간’이라 불리는 변수가 커지건, 작아지건 물리학 현상은 동일하다는 뜻입니다. 또한, 이 이론들은 우리가 “현재”라 부르는, 우리에게는 매우 특별한 순간(혹은 그렇게 보이는)에 대해 어떤 사실도 알려주지 않으며, 우주 전체를 볼 때에는 아예 정의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시간과 무관한 우주는 때로 “블록 우주”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이 개념은 우주를 정적인 시공간의 블록으로 가정하며 시간이 흐르는 듯한 느낌이나 시간의 경로를 따라 이동하는 느낌은 그저 정신이 만들어낸 것이거나 어떤 환상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다수의 물리학자들은 물리학자의 역할이 관찰자의 시점에서 우주가 어떻게 보여지는가를 묘사하는 것일 뿐이라 주장하며 이 블록 우주 개념을 받아들입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구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블록 우주 속에서 ‘관찰자는 시간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라 물어야 한다고 우주팽창이론을 처음 제창한 이 중의 한 명인 UC 데이비스의 물리학자 안드레아스 알브레흐트는 말합니다.
한편, 이 이론에 격렬히 반대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물리학이 해야할 일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 것처럼 보이는지 만이 아니며 왜 그렇게 보이는 지를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우주가 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의 흐름이 실제적인 것이라 생각합니다. “블록우주 아이디어는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합니다.” 바-이란 대학에서 일했던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압샬롬 엘리처의 말입니다. “다음 주 목요일이 이번 주 목요일과 같은 형식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게 아니에요! 존재론적으로, 미래는 미리 존재하고 있는것이 아닙니다.”
지난 달, 캐나다 워털루의 페리메터 이론물리 연구소에는 60여명의 물리학자와 소수의 철학자 및 다른 과학 분야의 연구자들이 ’우주론에서의 시간’ 이라는 이름의 학회로, 이 질문을 논의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학회를 개최한 이들 중에는 블록-우주 아이디어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자인 물리학자 리 스몰린이 있습니다. 그는 대중서적인 “다시 태어난 시간(Time Reborn)”을 썼으며 보다 학문적인 저서인 “단일 우주와 시간의 실재성(The Singular Universe and the Reality of Time)”을 역시 이 학회를 같이 개최한 철학자 로베르토 망가베이라 웅거와 공저한 바 있습니다. 두 번째 책에서, 앞서 엘리처가 불만을 토한 고정된 미래라는 개념에 대해 스몰린은 이렇게 쓴 바 있습니다. “미래는 지금은 현실이 아니며, 따라서 미래의 사실에 대해 정해진 것은 없다.” 또한 그는 학회장에서 실재하는 것은 “미래의 사건이 현실의 사건에 의해 생성되는 과정”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참석자들은 몇 가지 질문을 두고 토론했습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는 어떻게 구분되는지, 왜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지, 시간은 근본적인 것인지 만들어지는 것인지 등의 질문입니다. 이 주제들은, 당연하게도, 아직 확실한 답을 우리는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흘 동안 참석자들은 이 질문들에 대한 학계의 가장 최근 가설들을 주의깊게 들었습니다. 특히, 어쩌면 우주는 정적이고 시간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저 우리가 시간이 흐르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일 뿐이라는 주장과 관련해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카펫 밑으로 숨은 시간 문제
모두가 동의하는 몇 가지 사실들이 있습니다. 거시세계에서 우리가 관찰하는 방향성은 매우 현실적이라는 것입니다. 유리컵은 깨어질 뿐 절대로 스스로 재결합하지 않습니다. 계란을 풀었을 때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법은 없습니다. 한 시스템의 무질서를 측정하는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합니다. 이는 열역학 제 2법칙으로 불립니다.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루드비히 볼츠만이 19세기에 발견한 이 사실은 왜 어떤 사건이 한 방향으로만 일어나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곧, 시간이 흐르는 방향을 설명합니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서, 왜 우리는 하필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우주에 살고있느냐고 질문하게 되면 문제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볼츠만은 왜 내일 우주의 엔트로피가 오늘 우주의 엔트로피보다 높을 것인지를 설명했습니다.” 칼텍의 물리학자 션 캐럴은 학회 이튿날, 호텔 바에 앉아서 내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이 내가 알고 있는 전부라면, 어쩌면 어제 우주의 엔트로피는 오늘의 그것보다 더 클 수도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주를 설명하는 법칙은 모두 시간에 대해 대칭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엔트로피가 우주의 법칙에 의해 결정된다면, 그리고 그 법칙은 시간이 흐르는 방향에 동일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엔트로피는 증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엔트로피가 실제로 그렇게 작동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계란말이는 날계란을 깨뜨린 후 만들어질 뿐, 계란말이로 날계란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답으로, 물리학자들이 내놓은 답 중 한 가지는 우주가 매우 특별한, 극히 낮은 엔트로피 상태에서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콜롬비아 대학의 물리철학자 데이비드 알버트가 “과거 가설(past hypothesis)”이라 명명한 이 가설은 빅뱅이 우연히 특별히 낮은 엔트로피 상태의 우주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 뒤로는 엔트로피가 증가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곧, 더 낮아질 수 없다면, 높아질 수 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이 과거 가설은, 우리가 계란말이를 만들 때 마다 140억년 전에 일어난 사건의 덕을 보고 있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 이 가설 하에서는 ’왜 아직 깨어지지 않은 계란이 존재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빅뱅이 필요합니다.” 캐럴의 말입니다.
어떤 물리학자들은 과거 가설을 특히 불편해합니다. 그들은 오늘날 우주의 물리학에서 이해할 수 없는 점을 설명하기위해 빅뱅을 가져오는 것은 카페트 아래로 문제를 숨기는 것처럼 그저 한 문제를 다른 문제로 떠넘기는 일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질문을 초기 조건 때문이라고 돌린다면 “카페트 아래는 점점 더 지저분해질 겁니다”라고 학회를 개최한 이들 중 한 명이자 에딘버러 왕립 천문대의 우주론 학자인 마리나 코르테스는 말했습니다.
스몰린은 과거가설을 문제의 해법이라기 보다 실패의 인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단일 우주~”에서 이렇게 쓴 바 있습니다. “우리가 설명해야 할 것은 왜 우주가 빅뱅 이후 138억년이나 지났음에도 아직 평형상태, 곧 가장 확률이 높은 상태에 이르지 못했는지이며, 우주가 지금 현재보다 확률이 더 낮은 상태에서 출발했다는 가정은 이에 대한 설명이라고는 전혀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물리학자들은 어떤 특정한 초기조건을 가진 시스템을 설명하는 이론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라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즉 하나의 이론이 그 시스템이 왜 그런 초기조건을 가졌는지를 설명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물리학자들은 과거 가설이 비록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최종 답안 이전의 중간 단계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즉 우리가 운이 좋다면, 이 방향으로 어떤 더 의미있는 답을 구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많은 이들이 과거 가설이 그저 사실에 불과하며, 이를 설명할 수 있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도 그럴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캐럴은 말을 잇습니다. “내게는 과거 가설은 우주를 보다 총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의 단서 중 하나입니다.”
(2부는 내일)
(Quan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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