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문화세계정치

영국의 분열, 브렉시트랜드 對 런더니아

이번 영국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에 적극적으로 찬성한 동네를 꼽자면 링컨셔 주 보스턴을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보스턴의 등록 유권자 77%가 투표에 참여했고, 76%가 EU 탈퇴에 찬성했죠. 한편, 보스턴은 영국에서 EU 지역 출신 이민자들이 가장 많은 동네입니다. 무려 인구의 13%가 EU 출신 이민자로, 대다수는 근교 채소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폴란드인과 리투아니아인들입니다. 주민들 자신도 “이민자들에게 최악의 동네”라 부를 만큼 보스턴에서 이민자에 대한 여론은 좋지 않습니다. “매일 시장에 오면서 영어는 한마디도 못하는 사람들”, “오르는 집세, 학비, 병원비”, “늘어나는 경범죄와 난폭운전”에 불만을 표하는 목소리를 쉽게 찾을 수 있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번 투표 결과는 EU 통합의 과실은 누리지 못하면서 부담만 감수해야 했던 사람들의 분노 표출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EU에 대한 회의는 숫자나 돈에 관한 것만이 아닙니다. 영국의 분열에는 분명 문화적이고 감정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EU 탈퇴를 지지한 사람들이 느끼는 것 가운데 첫 번째는 쇠락의 기운입니다. 보스턴 시내 중심부에는 여전히 반 아이크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네덜란드풍의 예배당이 남아있지만, 마을의 전성기는 이미 오래전에 지났습니다. 마을의 중위 소득은 영국 전체 평균의 80%에 불과하죠. 주민 열 명 중 일곱은 16세까지 학교에 다니는 것이 고작입니다. 좋았던 시절의 묵은 기억만이 공기 중에 희미하게 떠다닙니다. 두 번째는 세상이 점점 알 수 없는 곳, 내 통제를 벗어난 곳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보스턴에서는 길거리에서 외국어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 체감할 만한 변화였습니다. 2011년에는 불법 보드카 공장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나 5명이 숨졌죠. 더 넓은 세계로 시야를 돌리면 테러의 공포, 민족 정체성의 약화, 국경의 붕괴, 알 수 없는 국제적 세력의 꼭두각시가 된 정치인 등이 모두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EU 탈퇴 캠프는 이런 두려움을 십분 이용해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과거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안정적인 것과 익숙한 것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된 강한 힘은 EU 탈퇴라는 투표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다문화주의와 사회적 자유주의, 여성주의, 환경 운동, 인터넷과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가 모두 탈퇴표로 이어졌습니다. 탈퇴를 지지한 사람들은 전문가와 정치인을 믿지 않으며, 영국과 관련된 결정은 영국 안에서 영국인이 내려야 한다는 것이 탈퇴에 표를 던진 핵심 동기였습니다. 나이가 많고, 소득과 교육수준이 낮으며, 보스턴과 같은 시골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EU 탈퇴에 표를 던졌습니다. 여기에 “브렉시트랜드(Brexitland)”라는 이름을 붙여봅시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패배한 사람들, 또는 자신이 패배했다고 믿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새 국민투표를 추진하고 있는 잔류파도 문화 정치적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들은 비교적 젊고, 교육 수준이 높으며, 사회적 자유주의자에, 세계화에도 익숙합니다. 주로 런던이나 런던과 비슷한 활력을 지닌 도시 지역에 살죠. 가히 “런더니아(Londonia)”라 부를 만합니다.

영국은 이제 두 개의 나라로 나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두 집단 간의 차이는 명백할 뿐 아니라,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선거 자료를 분석한 데이터에 따르면 1997년 이래 이민과 평등, 국가 정체성, 정치에 대한 신뢰 등 모든 지표에서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문화적 분열이야말로 영국 정치의 모습을 결정하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전통적인 의미의 좌파와 우파의 구분은 더 이상 토론과 갈등의 틀로 기능할 수 없습니다. 이번 투표로 인해 촉발된 문제들(어떤 식으로 EU를 떠날 것인가, 이민자는 어떤 지위를 가져야 하나, 영국적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등)은 앞으로 멀게는 수십 년간 영국의 정치 담론을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자본 대 노동”의 틀이 이제는 “열림 대 닫힘”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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