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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Brexit) 길라잡이 (1/2)

* 오는 23일 유럽연합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를 앞둔 영국의 상황과 배경을 가디언의 마이클 화이트(Michael White)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원문 제목 “The EU referendum guide for Americans”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인을 위한 설명서라서 미국 정치인, 미국의 상황과 비교한 부분이 있는데 필요한 곳에는 따로 해설을 달고, 아니면 아예 우리나라 상황에 맞게 의역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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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투표 결과, 너무 걱정 안 해도 되겠죠?”

그리스 해변이든 프랑스의 작은 마을이든 휴양지를 찾은 영국인들은 유럽연합의 동료 시민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을 겁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비교적 관망세였던 질문이 최근 들어서는 좀 더 거칠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네 도대체 유럽에 왜 이렇게 어깃장을 놓는 거요?”

최근 여론조사에서 유럽연합 탈퇴 여론이 잔류 여론을 앞선다는 보도가 잇따랐기 때문이죠.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일컫는 브렉시트(Brexit) 운동은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영국 내의 소외감 혹은 분노에서 비롯됐습니다. 제국주의 시절의 확실성, 세계화 이전 평생직장 등에 대한 향수에 이민자에 대한 반감, 내 손으로 뽑은 적도 없는 바다 건너 브뤼셀에 있는 정치권력과 사법기관에 대한 거부감이 합쳐졌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나라의 주권을 침해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자유로운 시장 질서까지 파괴하는 악의 근원처럼 여겨집니다. “우리의 지배력과 권한을 되찾자(Take back control)”는 슬로건이 사회적인 고립주의자와 제국주의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들 모두에게 잘 먹히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일자리 구하기가 너무나 어려운 포르투갈의 청년들, 미국 북부의 사양화된 공업지대 러스트 벨트에서 일자리를 잃어버린 노동자들, 과도한 규제를 비난하는 헤지펀드 매니저들도 어느 정도 브렉시트 운동의 기저에 깔린 분노와 반감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휴양지에서 질문을 받은 영국인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리스 사람에게는 “(급진좌파) 시리자나 (극우) 황금새벽당과 비슷한 면이 없지 않죠”, 프랑스 사람에게는 “마린 르펜이나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같은 현상이랄까요? 많은 이들이 무척 화가 나 있어요. 누군가 이 분노를 표출할 대상을 마련해주기를 기다려왔는지도 몰라요.”라고 말입니다.

계속된 유럽의 경기침체에 시장 전망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난민 위기에 테러 공격까지 겹치면서 무언가 시급히 대책을 꾀해야 한다는 정서가 온 유럽에 퍼지기도 했습니다. 파리 근교에서 경찰관 부부가 살해당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발생한 조 콕스 의원의 충격적인 사망까지 뜻밖의 사건들이 이런 정서를 더욱 부추기기도 합니다. 지난해 말 권위주의적인 민족주의 정부가 들어선 폴란드 선거는 어떻고요? 유럽연합이 주창해 온 통합이라는 가치는 이미 곳곳에서 도전받고 위협받아 왔습니다.

영국 유권자들이 43년이나 이어온 5억 유럽 시민들과의 관계를 청산하려는 이유는 어찌 보면 간단합니다. 유럽연합과의 관계가 지긋지긋해졌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기 때문입니다. 캘리포니아 주 주민투표나 스위스에서 기본임금 도입을 놓고 진행된 국민투표에서처럼 영국인들은 오는 목요일 정부를, 좀 더 멀리 가면 그동안 자신들을 끝없이 실망시켜 온 정치 엘리트들을 심판할 기회를 잡은 셈입니다.

 

영국과 유럽 통합의 역사 (The history)

국민투표는 영국 정치에서 흔치 않은 일입니다. 마가렛 대처는 전간기 파시즘이 득세한 원인을 우매한 대중 선동에서 찾았던 정치인들의 분석에 동의했죠. 대처는 국민투표에 대해 “독재자나 선동 정치가나 좋아할 방법”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대처 임기에 국민투표는 단 한 차례도 없었죠.

하지만 영국 역사상 국민투표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닙니다. 앞서 1975년 유럽 공동시장(Common Market, 유럽연합의 전신)에 가입한 것을 비준받고자 했을 때 당시 의견이 갈라진 노동당 정부는 의회 대신 국민에게 직접 뜻을 묻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해롤드 윌슨 총리가 진행한 형식적인 재협상이 여론에 영향을 미쳤고, 가입 찬성이 반대보다 두 배나 많은 표를 받았습니다. 영국은 그렇게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연합의 일원이 된 셈입니다.

당시 보수당 정치인들은 윌슨 총리가 당내 갈등을 관리하지 못하고 국민투표로 상황을 돌파하려는 전략이 무책임하고 분열을 부추기는 일이라며 개탄했습니다. 그 후로 40여 년이 지난 2015년 총선을 앞두고,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비슷한 우를 범하고 맙니다. 당내 의견을 도출하고 갈등을 봉합하는 데 있어 쉬워 보이는 편의주의를 택한 것이죠. 당내 유럽통합에 반대하는 세력과는 도저히 말이 안 통하고, 이들에게 너무 시달리다 보니 캐머런 총리는 덜컥 유럽연합의 일원으로 남아있을지를 국민에게 묻겠다는 약속을 해버립니다. 윌슨 총리의 “재협상 시늉 전략”도 그대로 가져와 유럽연합 회원국과 영국의 관계를 바로 세우겠다는 약속을 덧붙였습니다.

무모한 도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캐머런 총리는 2010년 노동당을 누르고 집권할 때부터 연정 파트너였던 친(親) 유럽연합 성향의 자유민주당이 국민투표안 자체를 거부해주리라 확신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의 원만한 관계를 우선시하던 자유민주당의 국제주의자들이 민족주의 포퓰리즘에 굴복했는지 자유민주당은 선거를 앞두고 보수당과 갈라섰습니다. 보수당은 지난해 5월 총선에서 아슬아슬한 승리를 거뒀고, 캐머런 총리도 가까스로 총리 자리를 유지하게 됐죠.

다시 총리 관저로 돌아온 캐머런 총리에게는 처음 약속한 2017년까지 시간을 질질 끌며 국민투표라는 의제 자체를 다른 일로 덮어버릴 기회가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총리는 전반적인 흐름이 보수당과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읽어낸 것 같습니다.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서 유입되는 전쟁 난민과 경제적 난민은 7년 넘게 계속된 경기침체와 계속된 긴축정책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부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독일이 넓은 아량을 발휘하여 혹은 전략적으로, 아니면 유럽 다른 나라에도 난민을 받으라 요구해야 하는 마당에 어쩔 수 없이 많은 난민을 받아들이겠다고 솔선수범했다지만, 사실 영국 입장에서는 난민이나 이민자가 별로 새로운 현상이 아닙니다.

2004년 구소련 혹은 동유럽 공산권 국가였던 나라들이 대거 유럽연합에 가입합니다. 폴란드를 포함한 이 여덟 개 나라에서 영국으로 일자리를 찾아 모여든 이민자들이 1백만 명을 넘습니다. 유럽연합 내 다른 경제 대국들이 자국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위협받는다는 판단이 서면 어김없이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데 각종 제약을 걸었기 때문에 예상보다 많은 이민자가 영국으로 몰렸습니다. 경기 침체가 유로존 전역으로 확산되고 영국 경제 상황이 상대적으로 낫다는 것이 알려지자 스페인, 이탈리아에서도 사람들이 건너오기 시작했습니다. 고소득자에 대한 높은 세금을 피해 바다를 건너오는 프랑스 사람들도 있었죠. 유럽 단일 시장의 핵심은 상품, 서비스는 물론이고 사람이 오가는 데도 장벽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었으니까요.

이미 유럽연합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영국의 지위를 두고 유럽연합과 지루한 재협상에 나서는 대신 캐머런 총리는 지난겨울 6월 23일로 국민투표 날짜를 정해놓고 전격적으로 유럽연합 잔류를 호소하고 나섰습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아마도 영국인 유럽연합에 남아있기를 바랄 겁니다. 라틴 계열 국가들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확대하는 걸 막아주는 더없이 좋은 방파제에 확고한 개방 경제 체제를 유지해 왔으니까요. 캐머런 총리와의 사이도 나쁘지 않은 거로 알려졌고요.

하지만 메르켈 총리도 불안한 연정 상황과 내년 총선을 앞두고 독일 내에서 퍼지는 유럽 회의주의를 생각하면 제 코가 석 자입니다. 게다가 영국만 특별 대우를 해준다는 비난을 무릅쓰면서까지 캐머런 총리를 도울 여력은 특히 없어 보입니다. 캐머런 총리는 꽤 길었던 요구 사항을 간소화해 브뤼셀로부터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1) 새로 영국에 들어온 이민자들에게 지급하는 복지 수당 삭감, 2) 유럽의 금융 수도라 할 수 있는 런던에 유럽연합의 간섭을 제약하는 조항 신설, 3) 영국 파운드화는 유로화로 통합하지 않는다는 약속 다시 확인, 4) 브뤼셀의 규제를 일부 제한하는 장치 마련 정도입니다.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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