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이렇게 5천 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일, 즉 사실상 일어날 확률이 0%에 가까운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기적 같은 일이 어쩌면 내게도 일어날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몇 년 동안 짝사랑하면서 속으로 앓기만 했던 그 사람,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겐 눈길조차 주지 않던 그 사람이 어쩌면, 내일 아침에 갑자기 제게 마음을 열어주는 거 아닐까요?
(스덥) >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해요. 해피 엔딩을 좋아하죠. 하지만 사람들이 특히 가장 좋아하는 건 핍박받고 따돌림받던, 하지만 심성은 곱디고운 약자가 성공을 거두는 신데렐라 스토리죠. 그런 이야기가 현실에서 일어났어요. 레스터시티와 프리미어리그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보고 이 과정을 온몸으로 느끼셨을 텐데, 베넷 씨는 어떠셨나요? 현실에서 일어난 신데렐라 스토리가 베넷 씨의 인생에 무언가 전환점이 된 것 같으세요?
(로베) > 그럼요. 이제 이런 급훈 하나 생겨도 될 것 같지 않으세요? “레스터시티가 프리미어리그를 제패했다. 너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제게 이 이야기는 단순한 축구 이야기가 아니에요. 성공적인 시즌을 보낸 축구팀 이야기 정도가 아니죠. 일단 영국 축구에서 결국 돈 많은 팀이 성공한다는 오래된 속설을 보기 좋게 타파했다는 것이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고요. 레스터시티는 축구팀도 정말 모두에게 사랑받고 행복을 주는 희망 전도사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어요. 축구판이라는 게 지저분하고 서로 헐뜯고 아무튼 그런 부정적인 것으로 가득했죠. 다른 스포츠도 어느 정도 그런 게 대개 냉소와 화, 부정적인 것이 더 익숙한 바닥이기도 하잖아요. 레스터시티는 그런 세상에 나타난 한 줄기 빛과도 같았습니다. 이제 전 세계 어느 스포츠 팬이라도 시즌을 시작할 때 레스터시티를 떠올리며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죠. ‘우리라고 못 할 거 뭐 있나!’ 클리블랜드 브라운스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레스터시티의 기적을 본 뒤로 저는 이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됐어요. (하지만 현실은 또 냉혹하니) 레스터시티가 전 세계에 헛된 희망의 씨앗을 한가득 뿌렸다고 정리할 수도 있겠네요.
자, 그럼 희망의 거품을 한 숟가락 걷어내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봅시다.
(윌란) > 다음 시즌 도박사들은 레스터시티의 우승 배당률을 조정할 겁니다. 당연히 그러겠죠. 아무리 기적이었다고 해도 전년도 우승팀에게 100대 1보다 높은 배당률을 책정하지는 않을 겁니다.
(존힐) > 이미 우리 회사는 내년 우승팀 베팅을 시작했어요. 현재 레스터시티에 책정된 배당률은 25대 1입니다.
10만 파운드를 날렸던 블룸버그 편집장 미클트웨이트 씨는 내년에 다시 돈을 걸까요?
(스덥) >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혹시 편집장님이 내기를 안 한 것이 마법같이 작용해서 레스터시티가 우승한 거라면 어떡하죠? 그럼 이번에도 돈을 거시면 안 되는 거 아녜요?
(미클) >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요. 수많은 축구팬, 스포츠팬들이 그런 쓸데없는 미신이나 징크스 하나씩 갖고 있긴 하죠. 내가 보면 이긴다, 혹은 내가 안 보면 누가 잘하더라 그런 거요. 하지만 어쨌든 저는 다음 시즌에도 당연히 돈을 걸 겁니다. 혹시 또 우승하면 어떡해요? 그때 또 돈을 안 걸었다면 정말 저는 영영 주변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될 거예요.
(솔로몬) > 내년에도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레스터는 잘할 겁니다.
(스덥) > 그럼 전문가 솔로몬은 현재 이 시점에서 레스터시티 내년 리그 몇 위 예측하시는지요?
(솔로몬) > 6위 봅니다.
(스덥) > 정말?
(솔로몬) > 아뇨, 5위 할게요. 5위. 5위로 하죠. 음… 아녜요 그냥 아무 말도 안 한 거로 할게요. 편집해 주세요.
내년 레스터시티의 성적을 지금 예측하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습니다. 디펜딩 챔피언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데다 내년에는 유럽 챔피언스리그도 병행해야 합니다. 선수 보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데, 이미 돈 많은 팀들이 올해 레스터시티의 우승을 이끈 주역들을 눈독 들이고 있습니다. 우승을 통해 팀의 주머니 사정이 좀 나아지긴 했겠지만, 빅클럽과 쩐의 전쟁을 벌이기는 역부족입니다.
(지키) > 우승 덕분에 구단이 돈방석에 앉기는 할 겁니다. 프리미어리그 중계권료 가운데 일부는 시즌 성적에 비례해 배분되거든요. 스무 팀 가운데 가장 잘했으니 그만큼 돈을 더 가져갑니다.
(스덥) > 중계권료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좀 해볼까요? 제가 알기로 프리미어리그 중계권료는 두 가지로 나뉘는데, 먼저 (잉글랜드) 국내 중계권료는 성적에 따라 차등 배분되고, 전 세계 방송사와 계약을 맺어 벌어들이는 해외 중계권료 수입은 팀들이 더 공평하게 나눠 가집니다. 제가 제대로 알고 있는 건가요?
(지키) > 네, 맞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국내 중계권료는 다시 세 덩이로 나뉘는데요, 먼저 절반은 20개 팀 모두가 똑같이 나눠 갖습니다. 1/4은 성적에 따라 차등 배분합니다. 나머지 1/4은 TV에 경기가 중계된 횟수에 비례해 지급하죠. 더 잘 나가는 팀의 경기가 더 많이 중계되는 것이 당연한데, 이 점을 고려한 겁니다. TV에 출연할 때마다 출연료를 받는 것과 비슷한 이치죠. 그리고 말씀하셨듯이 해외 중계권료가 있죠. 해외 중계권료 수입은 모든 팀이 똑같이 나눠 갖습니다. 사실 이게 재미있는 것이, 해외 중계권료 관련 조항은 1992년 프리미어리그가 출범할 때 만들어놓은 것이거든요. 그때만 해도 프리미어리그가 지금처럼 전 세계적인 브랜드가 물론 아니었어요. 글쎄요, 해외 중계권료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한 1~2% 됐을까요? 그래서 처음 계약서에 조항을 협의할 때 빅클럽들은 중계권료를 더 많이 가져가고자 정교하게 국내 중계권료를 세 덩이로 나누면서도 해외 중계권료에는 별 신경을 안 썼습니다. “그냥 다 똑같이 나눠 갖는 걸로 하시죠.” 선심 쓴 겁니다. 그러고 나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다들 아시죠? 프리미어리그가 전 세계인의 브랜드가 되면서 현재 해외 중계권료가 전체 중계권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 정도 됩니다. 50%를 넘는 것도 시간문제죠. 시장의 크기 자체가 다르니까요.
(스덥) > 약팀, 중소규모 클럽에는 아주 좋은 규정인 셈이네요?
(지키) > 당연하죠.
(스덥) > 그럼 언젠가는, 이론적으로는요, 레스터시티 같은 팀이 또 나올 수도 있다는 말이 되는 건가요?
(지키) > 네, 저는 그렇다고 봅니다. 구조적으로 프리미어리그는 중소 규모 클럽들이 약팀의 반란을 일으키기에 꽤 적합한 리그에요. 기적이 또 일어나지 말란 법 없거든요.
(스덥) > 그냥 궁금해서 여쭤보는 건데, 교수님 응원하는 팀 있으세요?
(지키) > 지금 3부리그에 있는 스컨소프 유나이티드라는 팀이요. 답 안 나오는 팀이죠.
(스덥) > 하하하, 죄송해요, 웃으면 안 되는데…
(지키) > 괜찮아요. 다들 그래요.
(스덥) > 아무튼 교수님이 가장 응원하는 팀이 3부리그 팀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이건 응원하는 야구팀이 트리플A도 아니고 더블A 마이너리그팀이라는 소리잖아요. 그렇죠?
(지키) > 네, 그렇죠. 하지만 중요한 건요, (메이저리그 야구에서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그 답 없는 팀이 이론적으로는 7년 후에 1부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다는 겁니다. 7년 전 레스터시티가 있던 리그가 지금 제가 응원하는 스컨소프가 있는 그 리그에요. 스컨소프가 레스터시티가 밟은 길을 밟지 말라는 법 있나요?
(스덥) >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요. 스컨소프가 우승하면 꼭 다시 한 번 저희 방송에 모시고 이야기 나누도록 하시죠.
(지키) > 좋습니다. 다만, 제가 너무 좋아서 잔뜩 취해있을 테니, 술 깰 때까지 며칠 기다렸다가 전화 주세요. (프리코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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