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내 정치의 이른바 “문화 전쟁”이라는 것이 전세계로 확산되는 모습입니다. 다음 달 열리는 HIV/에이즈 퇴치 고위급 회담을 앞두고 유엔 내에서 불거진 논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집트를 필두로 한 57개 이슬람 국가들의 단체인 이슬람회의기구(OIC)가 11개 동성애자/트랜스젠더 단체의 회의 참가를 반대하고 나섰고, 이에 미국, EU, 캐나다가 크게 반발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사만다 파워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트랜스젠더의 HIV 감염률이 일반인에 비해 49배나 높은 상황에서, 이들이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은 전지구적 에이즈 퇴치 노력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사무총장에게 호소 서한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번 사태는 사회적 보수에 해당하는 국가들의 연합, 즉 OIC와 러시아를 필두로 중국이 기회주의적인 입장을 취하며 가세하며 촉발된 것입니다. 이들 연합은 작년에도 반기문 사무총장이 유엔 내 동성 결혼을 인정하는 조치를 취하자 이를 뒤집으려 시도한 바 있습니다. 이에 더해 5월 19일이 유엔이 정한 “호모포비아 반대일”이었기 때문에 긴장이 더욱 고조되었습니다.
서구에서 LGBT 권리를 외교 무대의 주요 아젠다로 앞세움에 따라, 보수주의 국가들의 연합도 더욱 세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파워 대사는 LGBT 문제를 각별히 여겨, 이를 소재로 다룬 뮤지컬에 동료 유엔 대사들을 초청하기도 했죠.
이슬람 과격파에 의한 테러에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이슬람 국가들과 함께 동성 결혼과 LGBT 권리를 둘러싼 세계적 움직임에 반대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입니다. 자유주의적 물결에 맞선다는 이해가 일치하자, “전통적” 가치와 문화를 앞세우는 외교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최근 러시아가 국가 안보를 논함에 있어서도 “영적 안보(spiritual security)”를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종교/신념의 안보(faith security)”를 앞세우는 이집트 정부의 레토릭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입니다.
러시아와 이집트가 국제 무대에서 취하는 이러한 전략은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신념을 가혹하게 대하는 정책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한 인권단체의 발표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러시아에서 종교의 자유를 실천한 죄로 기소된 사람은 119명에 이릅니다. 2014년 23명에서 급증한 수치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에서부터 파룬궁까지 다양한 종교가 탄압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대부분은 벌금형을 받았지만, 단기간 구금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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