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중반, 폴란드계 나이지리아인인 내가 처음 유학생 신분으로 폴란드 땅을 밟았을 때만 해도, 대부분의 폴란드 사람들은 인종이 다른 사람을 접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철의 장막 뒤의 고립에서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로,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 과정은 고통스러웠고, 모두들 예민해져있던 시기이기도 했죠.
백인이 아닌 친구들은 종종 폴란드가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나라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나도 가끔 감정이 격해질 때가 있었지만,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애썼죠. 실제로 폴란드인인 어머니의 친구들 중에서 인종주의자가 아닌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요. 하지만 모든 폴란드인에게 인종주의자 딱지를 붙이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해서, 길에서 봉변을 당하는 일이 덜 고통스러워지지는 않았습니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 폴란드가 EU 가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폴란드는 EU의 다른 회원국들과 마찬가지로 국제적인 수준의 다양성, 개방성, 포용력을 갖추고 있음을 증명하고자 애썼고, 당국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인종 관련 폭력 범죄를 강력하게 단속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제 사정이 나아진 것도 한 몫 했습니다. 미래가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생기자 폴란드인들의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고, 세상만사에 조금 더 관대해졌죠. 비백인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이들의 존재에 익숙해진 면도 있었습니다.
2004년, 폴란드는 마침애 EU에 가입하게 됩니다. 동서의 구분이 무너진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폴란드의 경제는 급속도로 발전해, 삶의 질도 크게 개선되었습니다. 특히 여행의 자유가 확대되면서 폴란드인들은 유럽 대륙 곳곳을 누비며 다양한 인종,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인종에 대한 태도도 많이 달라졌죠.
불행히도 현재 폴란드 정부는 이러한 추세를 뒤집으려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정권을 잡은 우익 포퓰리스트 정당은 외국인 혐오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당대표는 중동 출신의 이민자들이 기생충과 병균을 옮겨와 유럽 대륙에 유행병이 창궐할 수 있다고까지 말했습니다. 폴란드의 아기들이 죽어나가는 꼴을 보지 않으려면 무슬림 이민자를 받지 말아야 한다는 발언도 나왔죠. 공포를 주입하는 전략은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작년 5월에만 해도 중동 출신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에 우호적인 사람이 반대하는 사람의 세 배 이상이었지만, 올 초에는 반대하는 사람이 오히려 많아졌습니다. 인종혐오 폭력 범죄도 잦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 때문에 폴란드라는 나라에 인종차별주의 국가라는 딱지를 다시 붙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또한 현재 상황은 유럽 전역에서 부활하고 있는 외국인 혐오, 1930년대 스타일의 민족주의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EU 가입을 계기로 촉발된 개방과 관용의 대세를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인 일시적인 퇴보로, 얼마든지 다시 뒤집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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