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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벽(Writer’s Block: 글을 전혀 쓰지 못하게 되는 증상)을 넘는 법(1/2)

1920년, 열여섯 살 난 그레이엄 그린은 “104주 동안의 단조로움, 부끄러움, 정신적 고통” 끝에 자신이 다니던 프렙스쿨인 버크햄스테드를 떠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부모님 앞으로 된 자퇴사유서를 남기고 – 그의 아버지가 학교의 교장이었기에 – 학교로부터 도망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견되었습니다. 그 탈출은 가족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기에 이들은 그에게 6개월간의 심리 치료를 받게 했습니다. 이는 그린의 남은 인생을 극적으로 바꾸게 됩니다. 그는 지긋지긋했던 학교로부터 해방돼 휴식을 취할 수 있었고 또한 그의 작가로서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습관을 몸에 익혔습니다. 그것은 그린이 자신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보다 생산적인 방향으로 보낼 수 있게 만든 꿈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린이 얼마나 많은 글을 남겼는지 아는 이들이라면, 그도 작가의 벽(writer’s block)으로 고생한 적이 있다는 것을 믿기 힘들겁니다. 그러나 그 역시 50대에, 스스로 “봉쇄(blockage)”라고 부른,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없거나 심지어 시작도 할 수 없는 그런 슬럼프를 겪었습니다. 그린은 꿈 일기가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는 꿈 일기가 매우 특별한 형태의 글쓰기라고 믿었습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꿈을 볼 수 없습니다. 또한 누구도 명예훼손으로 그 내용을 고발할 수 없습니다. 누구도 그 내용이 사실인지 따지지 않으며, 비현실적인 사건 전개를 걸고 넘어지지도 않습니다. 그린의 꿈 일기를 모은 “나만의 세계(A World of My Own)”의 서문에서 그린의 오랜 연인이었던 이본 클로에타는 그린이 친구에게 했던 말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꿈 전체를 기억할 수 있다면, 그는 어떤 다른 세상의 환상으로부터 만들어지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그는 자신에게 박혀있는 의식의 바깥에서 자신을 찾게 된다.” 의식이 만드는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그린은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작가의 벽은 아마 글쓰기가 시작된 이래 존재했겠지만, 그 단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1940년대 정신과 의사 에드문드 버글러였습니다. 버글러는 약 이십년 동안 “생산성의 신경성 억제”로 고생하는 작가들을 연구했습니다. 그는 왜 그들이 창작을 할 수 없는지,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이를 치료할 수 있는지를 찾으려 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겪고 있는 작가들과의 몇 번의 인터뷰 및 수 년간의 연구 끝에 그는 당시 가장 인기있던 이 문제에 대한 해설이 틀렸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벽에 부딪힌 작가들은 당시의 설명처럼 영감을 다 써버리고 “스스로를 다 소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월세를 내고 나면 더 이상 글이 써지지 않는 현상을 일컫는 “집주인(landlord)” 이론에서처럼 외부의 동기가 사라졌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재능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고, 그저 지루해 게으름을 피우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버글러의 답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프로이드 학파로부터 정신분석을 배웠고, 그는 이를 바탕으로 이 문제에 접근했습니다. 프로이드가 1939년 만든 저널인 아메리칸 이마고(American Imago)에 1950년 실린 “작가의 벽은 실재하는가?” 라는 글에서 그는 작가는 정신분석가와 같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작가는 “무의식적으로 자신 내부의 문제를 글 쓰기라는 방법으로 승화(sublimation)시키려 노력하는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즉 벽에 부딪힌 작가는 실제로 심리적으로 벽에 부딪힌 것이며, 따라서 이 벽을 없애기 위해서는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이 벽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이런 방법도 통하기만 한다면 괜찮겠지요. 문제는 이 논리가 그저 좌절스러울 정도로 모호하며 수많은 다른 사실들을 가정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작가에게 글쓰기가 승화의 과정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작가가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이 순전히 심리적 으로 벽에 부딪혔기 때문이라는 증거는요? 무엇보다도, 심리적으로 벽에 부딪혔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그러나 버글러의 결론은 정답에서 멀리 떨어진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70년대에서 80년대에 걸쳐 예일대학의 심리학자 제롬 싱어와 마이클 배리오스는 작가의 벽이 어떤 것인지를 보다 실험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들은 소설과 비소설, 시와 산문, 연극과 영화 시나리오 등을 쓰는 다양한 작가들을 뽑았습니다. 그 중에는 작가의 벽에 부딪힌 이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이도 있었습니다. 일련의 기준을 만족하는 이만이 작가의 벽에 부딪힌 이로 분류되었습니다. 곧, 현재 자신의 작업을 전혀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객관적인 증거를 내어야 했으며 글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제대로 증언해야 했습니다. 이런 증상이 3개월 이상 지속된 이들만이 기준을 통과했습니다.

배리오스와 싱어는 한 달 동안 이들의 변화를 추적했습니다. 그들을 인터뷰 하면서 거의 60개의 다른 심리 테스트를 받게 했습니다. 그들이 먼저 발견한 것은, 전혀 놀랍지 않게도, 벽에 부딪힌 작가들은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자아비판을 포함한 우울증과 불안증이 있었고 일에 대한 자부심이 줄어들어 있었습니다. 반복, 자기 의심, 미루기, 완벽주의 등의 강박증을 보였습니다. 무력감과 함께 ‘고독 회피(aversion to solitude)’ 증상을 보였으며 마지막 문제는 글쓰기가 혼자 있는 시간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불행한 작가들이 다 똑같은 방식으로 불행하지는 않았습니다. 배리오스와 싱어는 이들은 네 종류의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불안과 스트레스를 가장 큰 요인으로 가진 그룹입니다. 이들이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글쓰기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감정적 고통이었습니다. 두 번째 그룹은 분노와 짜증으로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불행을 드러내는 이들이었습니다. 세번째 그룹은 모든 일에 무감각해진 이들이었습니다. 네 번째 그룹은 그저 슬퍼하는 것을 넘어 화, 분노, 실망 등의 강한 부정적 감정을 드러내는 이들이었습니다. 배리오스와 싱어는 이러한 차이가 필연적인 것임을 발견했습니다. 곧, 서로 다른 그룹의 작가들은 서로 다른 이유로 글을 쓰지 못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뉴요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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