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드라마에서처럼 재벌 집 도련님이나 젊은 남자 CEO가 회사에서 일하는 여자 비서와 결혼하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요즘은 다릅니다. 이들이 고르는 결혼 상대는 갈수록 비슷한 일을 하는, 즉 동료 CEO나 부유한 집안사람입니다. 남편보다 아내의 벌이가 더 많은 가계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 사회 전반적으로 봤을 때 무척 중대한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의 배경은 갈수록 비슷해지는 반면, 소위 끼리끼리 결혼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부부들 사이의 경제적, 사회적 배경의 격차는 더 벌어진 겁니다.
위스콘신매디슨대학교의 사회학자 크리스틴 슈바르츠(Christine Schwartz) 교수는 여기서 발견되는 역설적인 효과에 관해 말합니다. 여자들이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을 이루는 건 동화 속 신데렐라 이야기부터 동화 같은 일이 현실에서 펼쳐진 케이트 미들턴의 이야기까지 역사상 어렵잖게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자들이 신랑감을 찾으려 대학교에 입학하던 건 옛날, 그것도 아주 먼 옛날이야기가 됐습니다. 오히려 앤 해서웨이가 주연한 영화 <인턴>이나 소설을 원작으로 곧 리즈 위더스푼이 주연한 영화로 개봉할 <오프닝 벨>에서처럼 잘 나가는 여자가 집안의 가장으로 돈을 벌고 남편은 집안일을 맡는 것이 요즘 추세에 더 맞는지도 모릅니다. (스포일러를 말씀드리면, 꼭 그런 집에서는 부부 사이에 갈등이 생기곤 합니다)
사회과학자들이 만들어 낸 개념 가운데 ‘비슷한 사람끼리 같이 사는 것(assortative mating)’이란 개념이 있습니다.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노동시장 참여가 활발해졌으며, 성 역할이 점차 바뀌어 새로운 성 역할이 정착되고 있는 데 더해 이처럼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고 사귀고 결혼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비슷한 점은 비슷한 교육 수준, 미래의 예상 소득, 가치관, 생활 습관 등을 두루 포함한 개념입니다.
돌이켜보면 20세기 초까지는 이런 “끼리끼리 결혼”이 무척 흔했습니다. 20세기 중반에는 이런 경향이 옅어졌다가 최근 들어 다시 잦아졌습니다. 20세기 중반에 안 그러다가 최근 들어 뚜렷해지는 추세 하면 또 뭐가 떠오르시나요? UCLA의 사회학자 로버트 메어(Robert Mare)는 미국 사회의 소득 불평등과 배우자를 고르는 추세 사이에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남녀 간 대학 진학률의 차이를 통제하고 살펴봐도 사람들은 갈수록 교육 수준이 비슷한 상대와 결혼하려 합니다.
여전히 남편이 아내보다 돈을 더 많이 벌긴 하지만 특히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늘어나면서 부부 사이의 소득 격차는 크게 줄었습니다. 오늘날 아내의 평균 소득은 남편의 78%입니다. 1970년에는 52%에 불과했습니다. 노동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맞벌이하는 이성 커플 가운데 29%는 아내가 남편보다 수입이 높습니다. 이 수치는 1980년대에는 18%, 1990년대에는 23%였습니다.
부부간 소득 격차는 교육 수준, 직종, 계층에 따라 달랐습니다. 직종별로 살펴보면 남편이 치과의사면 격차가 가장 컸는데, 아내가 버는 수입은 치과의사 남편이 버는 수입의 평균 47%에 그쳤습니다. 일반적으로 남편이 고소득, 사무직으로 일하는 경우 부부간 소득 격차가 큰 편이었고, 아내보다 수입이 낮은 남편들 가운데는 바텐더나 보육원 등 서비스업 종사자가 많은 편이었습니다.
업무의 특성에 따라 자연스레 발생할 수밖에 없는 소득 격차도 있습니다. 즉, 임금 자체가 높지 않은 시간제로 일하는 부부 사이에는 수입 차이가 크지 않습니다. 반대로 임금이 높은 직업은 대개 평균 이상의 긴 노동 시간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남들이 쉴 때도 일에 매여 있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누군가 이렇게 일을 많이 하려면 배우자가 집안일을 더 많이 맡아주는 등의 지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지원 없이는 오랫동안 유지되기 어려운 구조죠.
남녀 간의 구조적인 임금 격차도 간과해선 안 되는 요소입니다. 남성이 버는 1달러당 여성은 평균 79센트를 법니다. 근무시간 등 제반 고려사항을 통제한 뒤에도 좁혀지지 않는 차이입니다. 성 역할이 바뀌고 있다고 해도,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이라는 구시대적인 공식이 어느 정도 남아있다는 뜻입니다. 통계를 보면 결혼을 기점으로 여성의 벌이가 많이 줄어듭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더합니다. 반대로 남성의 벌이는 아이가 태어난 뒤 늘어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는 애 키우느라 일을 제대로 하기 어렵고, 아빠는 가장의 책임을 지고 더 열심히 일한다는 통념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결혼의 본질 자체가 변하고 있습니다. 이전까지 결혼은 노동을 효과적으로 분담하기 위한 결합이었습니다. 즉, 남자는 집안일을 맡아줄 사람을 구했고, 여자는 밖에 나가 돈을 벌어 올 가장을 찾았던 거죠. 하지만 여성의 역할이 점차 바뀌면서 결혼의 목적 자체도 노동의 분담보다는 함께 일상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으로 더불어 바뀌었습니다. 이 분야를 연구해 온 미시간대학의 벳지 스티븐슨(Betsey Stevenson)과 저스틴 울퍼스(Justin Wolfers)는 함께 무언가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을 찾다 보니, 성향이나 지식 등 아무래도 많은 것이 비슷한 사람을 선호하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전에는 남편과 아내가 하는 일부터 주어진 역할이 뚜렷하게 달랐어요. 배우자감으로 나와 다른 사람을 구하는 게 일리가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열정이나 관심사, 인생의 목표, 자녀 교육 철학까지 많은 게 일치하거나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게 좋아요. 그 많은 일을 대개 같이 계획하고 같이하니까요.”
결혼하는 시기가 점점 늦춰지는 것도 비슷한 사람끼리 결혼하게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일터에서 만난 사람과 결혼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상대방에 대해 더 자세히 많은 걸 알아보고 판단한 뒤에 결혼하게 됩니다. 메어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1950년대에는 사람들이 교육 수준이 비슷한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배우자를 고르는 데 비슷한 교육 수준이 요건 자체가 되질 않았습니다. 지금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면,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젊은 나이에 결혼했고, 그때는 오히려 가족의 선호도, 종교적 요인이 배우자를 고르는 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점점 배우자를 고르는 건 개인의 선택이 됐습니다.
미국 사회가 지역적으로 격차가 벌어진 것도 원인입니다. 교육 수준이나 소득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점점 모여 살기 시작했습니다.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 대개 대도시에서 일자리를 잡고 살게 되면서 서로 마주칠 기회가 늘어나자 (배우자 모두 대학 이상의 학위를 소지한) 소위 파워 커플이 많아졌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데이팅 앱이나 사이트를 통해 요즘은 아예 상대방을 만나기도 전에 입력한 조건에 맞는 데이트 상대를 찾습니다.
이는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닙니다. OECD 34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1년 데이터를 보면, 맞벌이 부부의 40%가 각자의 벌이로 따져봤을 때 소득수준이 같거나 비슷했습니다. 20년 전에는 이 수치가 33%였습니다. 또한 부부의 2/3는 교육 수준이 같았습니다.
소위 끼리끼리 결혼이 증가하면서 나타난 문제도 있습니다. 시카고 대학의 마리안 베르트랑(Marianne Bertrand)과 에미르 카메니카(Emir Kamenica), 그리고 국립 싱가포르대학의 제시카 팬(Jessica Pan)은 1970년부터 2000년까지의 센서스 데이터를 토대로 사람들이 나이, 교육 수준, 인종, 주거 지역 등에 따라 이른바 결혼 시장(marriage market)에서 어떤 배우자를 고르는지를 분석했습니다. 이들이 내놓은 연구 결과를 보면, 처음 결혼을 하는 시점에서부터 여성이 남성보다 수입이 더 많은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돈을 잘 버는 것이 1970년부터 혼인율이 낮아진 것의 23%를 설명한다고 이들은 분석했습니다.
이런 결혼, 즉 아내가 남편보다 돈을 더 잘 벌거나 많이 벌 가능성이 큰 상태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하더라도 여성은 자신의 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는 일자리를 구하거나 아예 일을 그만두고 집안일을 맡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런 커플들 사이에서 이혼율도 높았습니다. 역설적으로 수입이 더 높은 아내들은 대개 집안일도 도맡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돈도 더 많이 벌어오면서 가사에 육아까지 부담하는 아내들을 두고, 논문을 발표한 경제학자들은 아마 남편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게 아닐까 분석했습니다.
미네소타 대학의 결혼생활 전문가 빌 도허티(Bill Doherty)는 직업적으로 남편보다 더 큰 성공을 거뒀고 수입도 더 높은 아내들이 남편이 하는 일을 치켜세우고 자신이 하는 일은 반대로 깎아내리는 경우를 종종 봤다고 말합니다.
“키 작은 남편을 배려해서 하이힐을 신지 않는 아내 같다고 할까요? 더 크고, 더 부유하고, 더 잘 난 사람은 남자여야 한다는 선입견이 일종의 문화적 DNA에 내재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도허티는 이런 부부에게는 주로 성적 욕구 혹은 가사나 육아 분담 등과 관련한 문제가 나타나곤 한다며, 아내가 남편을 더는 존중하지 않게 되거나 남편이 가족 내에서 자신의 역할에 회의를 품게 될 때가 위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가사를 분담하는 일이나 결혼 자체에서 훨씬 더 평등한 가치관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의 양상 자체도 변하고 있습니다.
경영 컨설턴트인 28살 알레나 테일러(Alena Taylor)는 비영리단체 대표인 31살 남편 맷(Matt)보다 수입이 40% 더 높습니다. 하지만 맷은 결혼 생활에 있어 수입의 차이가 문제가 된 적은 없다고 말합니다. 테일러 부부도 아이가 생기면, 컨설턴트의 업무 특성상 출장이 잦고 반대로 남편은 근무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으므로 육아 분담을 놓고 이견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을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같이 사는 추세와 소득 불평등 문제를 마지막으로 짚어보겠습니다. 슈바르츠 교수는 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우선 결혼하는 사람들이 결혼을 못 하는 사람들보다 기본적으로 혜택을 받는 계층이라는 사실이 있고요, 여기에 더해 부유하고,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 비슷한 짝을 찾아 결혼하게 되니 이 부부의 미래는 두 배로 탄탄해지는 거죠.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의 격차도 커지는 것이고요.”
부모의 소득과 교육 수준이 아이의 학업 성취도나 소득에 미치는 영향이 무척 크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나오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미래 세대에서는 이 효과가 더욱 눈에 띄게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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