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샌버나디노(San Bernardino)에서 일어난 테러 이후 <뉴욕타임스>가 종이신문 1면에 사설을 실었습니다. 지난 1920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워렌 하딩을 선출한 것을 비판했던 사설을 1면에 실은 후 95년 만에 처음 있는 일로, 총기 문제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으며, 대량 살상이 가능한 무기의 유통은 전면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설 전문을 소개합니다. (사설을 쓴 시점은 범인들이 ISIS를 추종했던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밝혀지기 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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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얼마 전 캘리포니아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잔혹하게 살해된 사건에 비통함을 느꼈을 것이고 당연히 범인들이 저지른 끔찍한 범행에 분노했을 것이다. 사법 당국이 범행 동기를 수사하고 있는 가운데, 범인들이 국제 테러 조직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밝혀내는 것은 당연하고도 올바른 순서다.
다만 콜로라도, 오레곤, 사우스캐롤라이나, 버지니아, 코네티컷, 그리고 미국의 수많은 곳에서 일어났던 총기 난사 사건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범행 동기를 밝히는 게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범행 동기를 낱낱이 밝히는 것만으로 이미 죽은 사람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분노에 찬 시민들의 시선은 그들의 손으로 뽑은 정치인을 향해야 마땅하다.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일은 선출직 정치인이 최우선으로 여겨야 할 임무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지금 우리 손으로 뽑은 정치인들에게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강력한 살상용 무기를 비롯한 총기가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유통되는 사회를 만드는 데 명운을 건 총기 업체들의 지원 혹은 압력이 정치인들에게는 시민의 안전보다 더 중요해 보인다.
다른 사람을 순식간에, 무차별적으로, 확실하게 살해할 수 있는 끔찍한 무기의 판매와 유통이 법적으로 자유롭게 허용되었다는 건 도덕적으로 참을 수 없는 일이자 국가적인 수치다. 지금 미국에서 유통되는 무기들의 성능, 사양은 실제 전쟁에서 쓰이는 최신식 살상용 총기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을 정도다. 대단히 폭력적인 형태의 자경 조직이나 내란을 일으키는 데 쓰기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제작된 무기가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 정치인들은 앞다퉈 희생자들에게 조의를 표했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바로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대량살상이 가능한 무기를 규제하자는 최소한의 움직임조차 법제화되지 못하도록 태연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지난 목요일에도 또 그런 표결이 반복됐다. 정치인들은 누구나 다 테러리즘을 분쇄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여기서 하나만 분명히 해두겠다. 총기 때문에 무고한 시민들이 하루가 멀다고 목숨을 잃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테러리즘이다.
총기 규제에 반대하는 이들의 뻔한 레퍼토리는 오늘도 반복된다. “어떤 법으로도 특정 범죄를 완벽히 예방하는 건 불가능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수정헌법 2조에서 명시한 권리가 있으므로 총기 규제는 위헌이라는 말도 당연히 나올 것이다. 진심으로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총기 소유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는 프랑스, 영국, 노르웨이에서도 범인이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든 총기를 손에 넣어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다. 이 또한 일리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 나라들은 노력이라도 한다. 미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지금 정치인들은 마음만 먹으면 총기를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간접적으로 총기 사건을 부추기는 꼴이나 다름없고, 유권자들은 그런 정치인들을 계속 뽑아주고 있는 셈이다. 총기 소유를 더 자유롭게 해서는 안 된다는 논의에 허비할 시간도 우리에겐 없다. 지금 당장 시민들이 가진 총기의 숫자를 줄여야 한다. 특히 특정 종류의 탄약, 총기류는 시민들로부터 당장 수거하고 유통을 금지해야 한다.
수정헌법 2조의 해석을 둘러싼 논쟁은 할 필요조차 없다. 합리적인 규제 앞에 끝까지 예외를 부르짖을 수 있는 권리라는 건 이 세상에 없다.
이번 캘리포니아 범행에 쓰인 전투용 소총을 개조한 총기류나 특정 탄약이 시민들에게 판매되는 건 당장 중지되어야 한다. 문제가 되는 총기류, 탄약류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효과적으로 규제하는 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는 물론 지금 해당 무기를 소지하고 있는 이들이 동료 시민들의 안전과 공공의 복리를 위하여 무기를 내놓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상식적으로 굴러가는 품위를 갖춘 나라임을 보여주기에 마침 내년으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기간만큼 적절한 호기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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