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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세계지리 교과서 논란: “일꾼”인가 “노예”인가

얼마 전 텍사스 주에 사는 로니 딘-버렌(Roni Dean-Burren) 씨는 15세 아들로부터 사진 파일이 첨부된 문자를 받았습니다. 아들이 세계지리 교과서의 한 페이지를 찍어 보낸 것이었습니다. “이민의 패턴”이라는 챕터 내 미국 지도 위에 “1500년대~1800년대 사이 대서양 노예 무역으로 인해 수백만 명의 일꾼들(workers)이 아프리카에서 미국 남부로 건너와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써있는 페이지였습니다. 아들이 다니는 고등학교의 영어 선생님이자 언어의 뉘앙스 문제에 관심이 많은 박사과정생인 딘-버렌 씨는 크게 놀랐습니다. “이건 승자의 입장에서 원하는대로 적은 수정주의 역사입니다.”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노예를 “일꾼”이라 적고 이 문제를 “이민”이라는 주제 하에 다루어, 마치 이들이 자발적으로 미국에 건너왔고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았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는 교과서에 문제의식을 느낀 딘-버렌 씨는 페이스북에 이 내용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포스팅은 곧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곧 교과서를 출간한 맥그루-힐 에듀케이션(McGraw-Hill Education) 측은 페이스북에 성명을 올렸습니다. “해당 문구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아프리카인들이 강제로 이주해왔고 노예로 강제 노동을 하게 되었다는 역사를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출판사는 다음 개정판에서 해당 문구를 수정하고, 디지털 버전 교과서에서는 즉시 수정하기로 했습니다.

교과서 출판사 측의 발빠른 대처에도 불구하고 소셜미디어 상에서 분노의 목소리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습니다. 문제를 제기한 딘-버렌 씨 역시 큰 출판사가 즉시 조치를 취했다는 점을 고맙게 생각하지만,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일단 디지털 버전을 사용하는 학생들이 별로 없고, 아들이 쓰는 교과서는 저작권 날짜가 2016년으로 찍힌 최신판이기 때문에 다음 개정판이 나오기까지는 10년이나 걸릴 것이기 때문이죠. 그녀는 출판사가 보조 자료를 찍어내거나, 기존 교과서를 리콜하는 등 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좌편향인 사람이나 우편향인 사람이나 노예제의 진실이 그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을 거예요.”

맥그루-힐 에듀케이션이 교과서 문제로 논란이 된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2010년 텍사스 주 교육 위원회가 사회 과목 교과 과정을 새로 짰을 때도 역사 교육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고, 맥그루-힐의 교과서는 당시에도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는 “교육 과정 개정안이 건국 과정에서 토머스 제퍼슨의 역할을 축소하고, 정교 분리 정책을 비판적으로 보고 있으며, 냉전 시기에 미국 정부에 공산주의자들이 침투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작년에도 텍사스 주의 교육 과정 가이드라인을 검토한 학자들은 역사 교육 부분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무슬림식 복장이 여권을 침해한다고 단정적으로 기술하고, 인종 차별 문제를 축소해 다루며, 노예제를 남북전쟁 발발의 부수적인 원인으로 꼽고 있어 문제라는 것이었죠. 하지만 문제가 되었던 교과서들은 대부분 검정을 통과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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